1967년 어느날 낮 연습을 하던중 훤칠한 키의 박인수가 자기를 한번 테스트 해달려며 찾아왔다. 뭐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니 "소울(Soul)음악을 부르는 사람" 이라는 답이 금방 돌아오는데, 자신감이 느껴졌다.테스트를 해보았다. 템프테이션스의 "My girl"과 오티스레딩의 "Duck of the Bay"같은곡은 한번 불렀다하면 그야말로 흑인이 울고 갈 정도였다.
거기에다 플레터스, 샘쿡, 레이찰스등 흑인가수의 노래라면 못하는게 없었다. 바로 그날 저녁 무대에 세웠다.
그런데 그 클럽은 원래가 백인클럽이어서 흑인들은 문간에 기대어 음악을 훔쳐들을수 밖에 없는 곳이었는데도 흑인들이 새까맣게 몰려 들었다.
박인수의 모션 하나하나에 박수를 치고 난리들이었다.. 나는 박인수를 연세대앞 내 사무실에서 봄비만 가지고 1주일을 연습시켰다.
후렴부분에서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뽑아 올리는 절창에 공연장은 항상 떠나갔다. 그게 국내 최초의 소울 무대였던것이다.
아마 어릴적 기지촌에서 자라 그곳 무대에서 봐 둔 것인듯 여겨졌다.
지금도 사람들에게는 "봄비" 하면 박인수 이다. 이렇게 신중현은 박인수를 회상합니다...
한국 전쟁때 고아가돼 미국으로 입양된 후 귀국했으나 어디에도 정을 붙일곳이 없었던 그는 이후 두번의결혼실패..
(나는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어떤일도 서슴치 않는 여자들을 실제로 보고서 많이 놀랐다)
그렇게 그는 망가지고 있었다. 지금 소식이 끊긴 상태이지만 박인수 그는 천성적으로 슬픈 영혼을 가진 가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