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사고팔거나 임대차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계약내용이다. 계약에는 '갑'과 '을'이 있다. 매도자와 매수자, 분양자와 수분양자, 임대인과 임차인 등이다. 상반된 처지에 따라 내세우는 계약조건과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보편적으로 계약관계에서 '을'이 약자이다. 그렇다 보니 서로 대등한 조건이 아닌 불공정한 계약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다. 내가 손해를 보는 것 같은 데 이게 이치에 맞는지 틀린 것인지 잘 헤아리기도 어렵다.
이와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을 참고하면 어떤 것이 불공정한 것인지 훤히 보인다. 최근 공정위는 지난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어긴 291건의 불공정약관 심결례를 공개했다.
이중 부동산매매(15건)와 부동산임대(9건)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
◇사후관리업체와 관리 기간 결정 = 사업자가 건물 준공 후 관리에 대해 지정한 업체와 기간을 10년으로 정한 약관은 무효다.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구분소유주(개별소유자)가 입점 후 관리단을 구성해 관리업체를 지정해야 한다. 입점 이전에 관리회사가 필요하면 구분소유자의 개별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관리업체를 정하고 관리 기간을 정해놓고 이를 강요할 수 없다.
◇건축물의 설계변경, 면적 증감 이의제기 금지 = 분양회사가 공부정리 상 공급면적이 계약면적과 차이가 생길 때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는 약관도 무효다. 분양면적이 애초 계약면적과 달리 증감하면 민법상 담보책임으로 대금감액청구권, 손해배상청구권, 계약해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지지분이나 분양면적의 증감이 있는데도 분양가격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약관도 시정권고를 받았다.
◇일방적 계약내용, 홍보물 내용 변경 =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계약내용(분양물의 위치, 면적, 구조 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과 사업자가 제작한 홍보물 등의 내용이 사정에 따라 실제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약관도 무효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고객은 사업자가 제공한 홍보물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상가를 선택하는 것이 통상"이라며 "고객의 권리·의무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사항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고 정한 것은 고객에게 예측하지 못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불리한 조항"이라고 설명했다.
◇계약해제에 따른 과다한 위약금 = 분양받은 이가 계약을 해제할 때 통상적인 거래 관행과 판례상 거래대금의 10%를 초과한 위약금을 물리는 약관은 무효다. 공정위는 "고객의 사유로 계약 해제 때 위약금을 분양대금의 20%로 한다는 규정은 고객에게 과중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하거나 분양받은 이가 이의제기를 할 수 없게 한 조항도 무효다.
◇상가의 업종과 영업 종목 변경 때 이의제기 금지 = 사업자가 상가의 분양과 영업의 활성화를 위해 분양계획, 광고나 건축허가 상 건축 층별 상가용도 등을 임의로 설계변경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분양받은 이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정한 것도 무효다. 공정위는 "상가분양계약에서 건물의 층별 상가용도는 고객의 선택과 계약체결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변경이 불가피할 때는 동의를 얻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입주지정일 정하지 않은 계약 = 분양계약서에는 잔금납부와 입주예정일을 정하고 그 기간이 넘어설 때에는 사업자가 지체 상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도 입주예정일을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고 사업자가 멋대로 지정하거나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결정, 변경할 수 있게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입주일이 예정일보다 일정 기간 미뤄져도 이의제기를 못 하게 한 것도 불공정 계약이다. 또 입점일이 예정일보다 앞당겨졌을 때 사업자가 잔금을 빨리 내지 않으면 추첨에 참여할 수 없어 입점할 수 없다는 약관도 무효다.
◇건물내장공사 비용을 분양받은 이에게 부담 = 건물 전체 시설과 내장계획에 대해 별도 약정이 없더라도 입주자의 동의를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사업자가 피분양자에게 비용을 부과하는 조항도 무효다.
또 입주지정 기간 미입점에 따른 시설물의 훼손은 피분양자의 책임이라고 정한 것도 "사업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따른 법률상의 책임을 배제한 조항"으로 꼽혔다.
◇화재보험 가입의무조항 = 사업자가 정한 보험회사와 화재보험 계약을 분양받은 이에게 강제하는 약관도 무효다. 공정위는 "'화재로 인한 재해보상과 보험가입 등에 관한 법률'상 건물소유자는 의무적으로 건물화재보험에 가입하여야 하므로 분양받은 이는 보험회사별 상품, 요율 등을 비교해 자신에게 유리한 보험상품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인상 1년 이내 =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서 차임 또는 보증금의 증액청구는 임대차 계약이나 약정한 임대료 등의 증액이 있은 후 1년 이내에는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임대보증금과 임대료의 증액이 있은 1년 내에 또 인상분을 부과할 수 있게 한 계약도 무효다. 이와 함께, 시설물 소유자가 내야 할 교통유발부담금을 임차인에게 전가하는 것도 부당하다. 이와 함께 임대차 계약이 끝난 후 재계약을 할 때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률을 정한 계약도 무효다.
◇임대인의 공유면적 임의 사용 = 사업자가 임차인의 전용면적을 제외한 각 층의 공유면적에 멋대로 매장을 개설하거나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고 임차인은 이를 이유로 임대료, 관리비의 감액, 수익 반환, 손해배상, 손실보상 등의 청구와 이의를 못하게 하는 계약도 불공정하다.
◇분양면적 불명확 = '상가 분양면적은 공유면적을 포함해 약 3.3㎡로 한다'는 약관은 문제가 있다. 분양면적 중 전용면적은 분양받은 이의 재산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계약사항이므로 명확히 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