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문신 시인의 시집 <당신은 "서귀포..."라고 부르십시오>가
2007년 11월 도서출판 고요아침에서 나왔습니다.
강문신 시인은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출생하였고,
1990년 서울신문, 199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습니다.
'등단 18년 만의 첫 시집이다.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불러본다.
미안한 사람들 이름을 불러본다.
다만 그리움... '
시집 첫 면에 쓰인
시인의 말, 일부분입니다.
시집 끝에
'온 몸으로 껴안은 서귀포의 파도소리'라는
민병도 시인의 해설이 붙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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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강 문 신
싸락눈 흩뿌리던 날, 자정을 넘긴 목로주점
"긍께 말이여,
암 선고를 받곤 퍼렇게 질려 땅을 치더랑께
중환자실에 누워, 눈 껌뻑껌뻑 뻔히 쳐다보면서도,
살려달란 말을 않더랑께, 사랑헌단 말도 않더랑께,
그냥 암말도 않더란 말이여
고로코롬 죽었는디
저승 옷도 중질로 맞춰 줬재
장례비도 이백만 원은 넘게 들었어
글고는, 춤 배우고 바람도 쪼께 폈재
폈는디, 요새 반반한 놈치고 제대론 것 없더랑께
한나같이 문악만 베려놓는 것이여, 병신 같은 것들!
그럴 적마다 그놈 생각이 징허더란 말이여
영~ 환장하겠더라 이거여
술 따라야, 그래도 딸 아는 조케 키웠재
약속 한나는 지킨 것이여
아야, 언능 마시랑께
인자는 다 부질없어야
가게도 딸한테 줘 버릴거여
취헌 듯 만 듯 살 것이여
노인네 오일장 댕기듯 갈 것이여
가다가 가다가, 그놈 젙에 묻힐 것이여
...용서를 빌 것이여
요샌 통 꿈에도 안 나타난당께, 시벌놈이!"
그 뱃길 어르던 안개 물때 맞춰 포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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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1
-강 문 신
처음, 너는 그냥 작은 생각 하나였다
한 잎 피고 숨 고르는 초가마당 동백꽃 같은
먼 물결 돋는 불빛에 잠 못 이룬다 서귀포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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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3
-강 문 신
북을 쳤으면 꽹과리를 쳤으면
한이라도 빙글빙글 원이라도 덩실덩실
한 인연 남루를 풀어
여인아, 춤을 췄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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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4
-강 문 신
어찌 왔는가
대청마루 흐드러진 잔칫집
어정쩡 수돗가에 물 맞은 닭 한 마리
그 남루 어쩌겠는가
환한 대청 환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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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키워 본 사람은
-강 문 신
생장점 밑돌던 날들의 나이테나 감아놓고
저 혼자 가뭇한 길섶
퇴적된 인고의 발효는 어떤 의미로 뜨느냐
가을나무가 스스로 제 잎을 떨구듯
나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가슴을 비우는 법
한 여름이 다 휩쓸려 내릴 때 우리가 나무였듯이
그 가뭄 석 달 열흘도 묵묵히 나무였듯이
나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아득한 황량에 상 뿌리 내리는 법
반생을 에돌아
사랑도 미움도 고만고만한 이 둘레
생각 하나 그 먼 별빛 오롯이 너를 부르면
들리는가 들리는가
정녕, 해동(解冬)의 물소리
나무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그리움의 색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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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태생 시인께서 전라도 말을 쓰겠다고 하여서
좀 놀랐습니다. 시어가 된 전라도 말은 한 자 한 자 뜯어보자니
광주 토박이인 나에게도 낯설었습니다.
나보다 사투리가 더 심한 편인 옆사람에게 물어가며
몇 자 도와 드렸는데, 시집 내시고는
감귤 한 상자를 보내 오셨군요.
강문신 선생님, 차곡차곡 눌러 보내신 감귤
서귀포 바닷바람을 품고 있는 듯 상큼합니다.
잘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