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노인들의 시대
최근 대한민국 노인들에 대한 비하가 뉴스에 화제로 등장했다.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틀딱충’, ‘연금충’ 등으로 부르며 부정적인 감정을 표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한민국 산업 발전을 이끈 세대에 대한 모욕이며 세대 간의 단절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더욱 확산되거나 심화되기 이전 해결이 필요하다는 진단이었다. 노인 비하는 노인들이 더 이상 생산적인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교적 질서를 강요하는 몇몇 노인들의 행동에 대한 반발적 성격이 강하다. 더구나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노인들에게 부여되는 혜택을 불평하는 심리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노인 비하’의 근본적 원인은 바로 노인의 ‘무력감’이다. 사회와 관련된 힘을 갖추지 못하고 의존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인에 대한 인식은 변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오히려 노인이 사회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일본의 변화가 그것을 예증한다. 일본의 베이비 부머인 ‘단카이 세대’(1947-49년생)는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고령 신인류라 불린다. 건강과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이들은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일본의 경제연구소는 2030년에는 고령자가 일본 전체 소비의 절반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단카이 세대를 비롯한 새로운 고령층의 힘과 영향력은 일본 기업의 판매 전략을 변화시키고 있다. 일명 ‘시니어 시프트’이다. 기업의 비스니스 타킷이 기존 젊은 세대 위주에서 고령자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고령자들을 전문으로 하는 쇼핑몰과 백화점이 생기고 있으며, 노인특화 사업이 만들어지고 있다. 단카이 세대로 대표되는 일본의 노인들은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일종의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기업들은 그들의 풍부한 자금을 확보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중심이 ‘고령자’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노인 친화 상품(예: 노인 대상 기저귀),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여행 상품(‘1인 한정 투어’, 트레블 헬퍼), 노인 대상 성서비스(대한민국과 다른 점이다), 노인 대상 디스코장과 다방, 동창회 만남에서 발전되는 ‘시니어 결혼’ 등 수많은 노인 관련 상품들이 만들어지고 이러한 변화가 경제의 활력이 되고 있다. 젊은층들의 어려운 경제상황과 맞물려 노인들의 지갑을 열게 하려는 비즈니스가 한창이다. 최근 상품을 구입할 때 부가되는 ‘소비세’ 인상을 추진할 때 부자만 유리한 간접세라는 비판은 일본 사회에서 등장하지 않았다. 연금을 받는 노인들의 소비를 끌어내는 것이 우선적으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노인들도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존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더 이상 가족들에게 자신의 노후와 죽음에 대한 부담을 지우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노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살아서 계획하고 미리 서비스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는 ‘생전계약’을 수립하고, 또 같은 무덤을 사용할 ‘무덤친구’를 만들어 생의 마지막을 이들과 함께 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부부관계가 삶에 부담이 되면서 이혼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한 ‘졸혼’이라는 방식이 나타나고 있으며 죽음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데스 카페’가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본에 등장한 움직임 중에서 의미있는 것 중 하나는 학문적으로 죽음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추구하는 ‘향노학(向老學)’의 등장이다. 과거의 노년학이 늙음과 죽음을 객체로서 취급하는 학자들의 연구인 반면에 “향노학은 늙음을 수용하고 긍정하며 현명하게 맞이하기 위한 방법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즉 향노학의 주체는 학자들이 아니라 늙어가고 있는 노인들이다. 향노학은 늙음과 죽음을 부정적인 공포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자체를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삶의 존엄을 높이고 인간의 가치를 고양하는 자세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의 고령자 문화의 변화를 살펴 보면 대한민국 고령자들의 삶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 세대(1955 - 1963)도 은퇴가 진행되고 있고 일본과는 약 10년 정도의 차이로 연령적 변화의 수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 부머가 완전 은퇴가 이루어지는 2023년이 주목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베이비 부머가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초고령자인 부모세대와 안정적 직업을 얻지 못하는 자녀 세대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이것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부정적 예측도 있지만 또한 이들이 갖고 정신적 의식과 물질적 부의 크기가 새로운 노년 세대의 탄생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긍정적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일본 노인들의 노후 선택은 일본 사회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가치인 ‘타인에게 폐를 주지 말자’에 충실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재력과 건강이 충분한 사람들은 충분하게 자신의 삶을 즐기려는 것을 목표로 하고(1인 한정 여행에는 대부분 장년층 이상의 여성이 참여), 마무리 또한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끝내려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일본이 ‘유교적 전통’에서 자유롭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전통적인 가족 중심의 유교적 특성과 개인적 특성 사이의 갈등 때문에 많은 혼란이 생겼고 그것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사회의 현재적 이념 갈등을 대표하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판단은 매우 분명한 관점에 근거하고 있고 서로가 명확한 신념에 기초하기 때문에 간극을 메우기는 쉽지 않다. 이념적 갈등은 자칫 노인들에 대한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전환될 수 있다. 현재 거리를 메우는 노년층의 ‘태극기 집회’을 걱정하는 것은 ‘박근혜’로 상징되는 노년층의 신념이 젊은 층에게 모욕과 차별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은 많은 점에서 유사하고 변화의 방향과 진행과정이 비슷하지만 근본적인 차이 또한 분명하다. 최근 일본 노인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 노인들은 철저하게 개인적 형태로 노년을 준비한다는 것이며,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듯이, ‘타인의 고통’에도 무관심하다는 점이다. 거리를 나오는 한국 노인들의 열성적인 모습을 보면 개인을 넘어 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대한민국의 특징적인 모습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오랜 유교적 관념은 어떤 형태로든 ‘개인’을 넘어서는 관계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었을 개연성이 크다.
일본의 고령자 문화를 ‘단카이 세대’가 변화시켰듯이, 대한민국의 고령자 문화 또한 ‘베이비 부머 세대’가 변화시킬 것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를 양분하는 산업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감성을 중첩적으로 함유하고 있는 집단이다.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은 외부의 허위 조작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고, 상대적으로 높은 부는 사회에 의존성을 극복하고 독립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재력과 부와 건강, 이것은 이중의 칼날이다. 삶의 여유는 노년의 삶을 지극히 개인적인 것을 중시하는 일본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으며, 반대로 공동체로의 반환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지향할 수도 있다.
힘 있는 세대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은 행복이자 자부심이기도 하다. 그것은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에 몰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며, 사회적 변화를 이끌 역사적 자격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향후 30년 ‘베이비 부머’가 주목받은 이유는 바로 이들이 새로운 노년 문화를 만들어 갈 것이며 그것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의 첫 번째 전례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베이비 부머’ 세대의 노년은 정리의 시간의 아니라 창조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신인류 노인’이라는 세대가 새로운 세계를 규정지을 것이다.
첫댓글 내가 신인류? 그래! 새롭게 또 새롭게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