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미스터 존스>
1. 역사의 참혹한 진실을 확인하는 일은 흥미롭지만 고통스러운 순간이다. 수많은 비극이 권력과 이익을 위해 은폐된 채 진행되었다. 전쟁의 효율적인 무기 사용을 위해, 특정 집단에 대한 광기 때문에, 때론 엄청난 이익을 위해, 인간들은 죽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은 많은 경우 드러나지 않은 채로 이루어졌고 숨겨진 장막 속에 갇힌 사람들은 소리없이 죽어가야만 했다. 인간의 추악한 현실은 ‘진실’을 파헤치고 인간의 양심을 지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을 통해서 드러난다. 영화 <미스터 존스>도 20세기 최대의 비극 중 하나였던 소련의 ‘우크라이나 기근’ 사태를 고발한 영국의 프리랜서 언론인 ‘가레스 존스’에 관한 이야기이다.
2.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1930년대 중반 유럽은 전쟁의 불안에 휩싸여있었다. 독일의 나치 집권은 전쟁의 두려움을 가중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새롭게 탄생한 소련이 독일의 야욕을 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존스 또한 소련이 전쟁 억제를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 소련으로 달려간 존스는 스탈린과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대신 소련이 집단 농장의 완벽한 실현이라고 선전하는 우크라이나의 성공을 보기위해 당 간부와 동행한다. 하지만 존스는 무언가 석연치 않은 정보와 분위기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몰래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삶 속으로 잠입한다.
3. 존스가 직접적으로 대면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우크라이나에서 생산된 식량은 모두 모스크바로 옮겨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근과 추위로 죽어나갔다. 빵 한쪽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다투었고, 살아남기 위해 인육을 먹기도 하였다. 우연하게 방문한 가정에서 먹게 된 ‘고기’가 죽은 가족의 살이었음을 알게 된 존스의 구역질은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련은 사회주의 성공을 선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지역을 희생양으로 처리하며 수백만의 죽음을 방치하였던 것이다.
4. 영국으로 다시 돌아온 존스는 딜레마에 빠진다. 존스는 석방 조건으로 소련의 진실에 침묵하고 소련의 선전에 동조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당시 ‘산업 스파이’라는 이유로 소련에 체포된 영국의 기술자들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더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희생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존스는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린다. 그렇지만 진실은 무력했다. 소련과의 경제적 협력이 필요했던 영국 정부는 이 사실을 묵살했고 소련의 사회주의적 성공을 확신하고 있던 지식인들은 조소했다. 존스는 미치광이 취급까지 받았다. 더구나 소련에 주재하고 있는 퓰리처 상 수상자인 미국의 ‘뉴욕타임스’ 특파원은 존스의 폭로를 부인하고 조롱했다. 진실은 ‘진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 폐기되고 있었다.
5. 존스는 마지막 수단으로 영국의 저명한 언론 재벌 ‘허스트’를 찾아가 진실을 밝히고 이 내용은 허스트가 운영하는 ‘언론’에 특종으로 실리게 된다. 허스트 측근의 죽음과도 연결된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영화 속에서 혁명의 완성을 위해서는 때론 원치 않은 희생이 생길 수 있다고 옹호하는 사람에게 존스는 말한다. ‘진실은 오직 하나이다.’ 이념적 허위에 사로잡혀 인간의 희생에 무감각했던 사람들에게 존스는 ‘진실’의 실체를 증명한 것이다. 어떤 이유로 인간은 도구로 사용될 수 없고, 인간의 죽음은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6. 뉴욕 타임스의 노회한 특파원은 존스의 순수함을 비난한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타협은 필연적이며 모스코바에서 필요한 진실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실을 은폐하고 권력과 탐욕에 결탁하여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실 그 자체이다. 인간은 ‘진실’을 포기하면서도 수많은 이유를 들어 그것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한다. 영화는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과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과의 투쟁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기근으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함에도 사람들은 혁명을, 국가 간의 협력을, 사소한 희생의 불가피함을 이야기할 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잘 차려진 식탁에서 술과 고기를 탐욕스럽게 섭취한다. 반대쪽 굶어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로.
7.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때론 쾌감을, 때론 무력감을 전달한다. <미스터 존스>는 후자이다. 결국 나치는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유럽은 최악의 상태로 치닫는다. 존스 또한 내몽고 여행 중 소련이 보낸 암살자에게 죽음을 당한다. 30세가 되던 해의 일이다. ‘진실’을 위해 투쟁하고 산화한 사람들의 희생 속에서 진실은 살아남는다. 비록 개인적으로 비극이었지만 모두에게 ‘진실’의 중요함을 알려주는 투쟁이었다. 허위의 명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닌, 진정한 인간 그 자체를 위한 순교였던 것이다.
첫댓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때론 쾌감을, 때론 무력감을 전달한다."
ㅡ 들리는 우리 인간들 삶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