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우연 안개 사이로 산새가 날아 오른다. 창밖에 보이는 시냇가엔 잔잔한 물이 흐르고 버들가지에 연한 새순이 돋아나고 있다. 어제가 청명이고 오늘이 한식이자 식목일이고 내 생일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날이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적은 별로 없건만 어느새 지천명을 넘어선 탓인지 조금 서글픈 생각이 든다. 치형에게 통화하니 밝은 목소리로 아빠 생일 축하한다고 전한다. 그곳 날씨를 물으니 화창하고 꽃피고 새우는 절기란다. 이곳과 절기가 대차 없나 보다. 의례적으로 차려주는 미역국에 간신히 아침을 뜨고 길을 나서보나 갈 곳 또한 마땅치 않다. 내일이 시제인지라 아내는 아침 일찍 큰집에 간단다. 무료히 빈방을 서성이다 길을 나서 목욕탕을 찾는다. 온몸이 나른하고 한 주일의 피로가 몰려온다. 마음은 활기차고 신바람나게 살고픈데 몸이 예전과 같지 않커니 나 혼자만 그런 건 아닐거라 자위해본다. 어디 봄바람따라 여행이나 갈까하고 터미널 전광판을 둘러봐도 선뜻 갈만한 곳이 없다. 하릴없이 집에가 낮잠이라도 싫컷 자려고 발길을 돌린다. 결혼 회관쪽 벚꽃이 꽃망울을 막 터뜨리기 시작한다. 부지런한 꿀벌이 분주히 오간다. 침체한 기분이 조금 상기되어 걷는 데 크락션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드니 기천이가 미소를 지으며 생일 축하한다고 말을 건넨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같은 날 생일인 우린 오십년지기이다. 기천이는 명산동에서 양지당 시계점을 운영한다. 갇혀있는게 답답하다며 취미겸 돈벌이로 평화택시 기사를 자진해서 하고 있다. 늘 열정과 의욕이 넘치고 바쁜 중에서 동창회 총무이자 카페지기로써 친구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고 있다. 한 때는 내가 바둑을 배우기도 했고 학창 시절엔 그의 시골집에서 친구들이 모여 날밤 새우며 숱한 추억을 창출한 뿌리깊은 지기임이다. 자축 커피라도 한잔 하려고 조촌동 법원앞 공원에서 망중한을 즐기는데 양지바른 탓인지 벚꽃과 산수유 만개하고 벌 나비는 윙윙대고 이름 모를 산새들이 우리의 흥을 돋아준다. 젊은 부부 한쌍이 딸아이 둘을 데려와 사진을 찍어주는 정경이 참으로 좋아 보인다. 이렇게 좋은 날 낮잠이나 자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꿩대신 닭이라고 월명 공원이라도 가야겠다고 하니 데려다 준단다. 영업 방해라 조금 미안하지만 차는 금새 해망 터널 근처에 바람을 내려놓는다. 두어시간후 은적사 주차장에서 만나 점심이라도 함께할 것을 약속하고 산에 오르니 봄이 무르 녹는다. 싱그러운 찔레는 새순이 노오랗게 돋아 오르고 개나리 진달래가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절로 흥에 겨워 사월의 노래를 부른다. 꽃 피는 봄 사월 돌아오면 이 마음은 푸른 산 저 넘어 그 어느 산 모퉁길에 어여쁜 님 날 기다리는 듯 철 따라 핀 진달래 산을 덮고 먼 부엉이 울음 끊이잖는 나의 옛 고향은 그 어디런가 나의 사랑은 그 어디멘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 주렴아 그대여 내 맘속에 사는 이 그대여 그대가 있길래 봄도 있고 아득한 고향도 정들 것 일레라 고향 -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 그리워 - 이은상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도 그리운 옛님은 아니뵈네 들국화 애처롭고 갈꽃만 바람에 날리고 마음은 어디고 부칠 곳 없어 먼 하늘만 바라 본다네 눈물도 웃음도 흘러간 세월 부질없이 헤아리지 말자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엔 그대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 그리워 그리워 찾아와서 진종일 언덕길을 헤메다 가네.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 수원지 입구에 다다르니 노오란 수선화가 반겨준다. 아직 철 이른감이 있건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싶음이다. 청아한 모습과 그윽한 향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얽힌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미소년 나르시소스는 어떤 요정의 유혹에도 눈을 돌리지 않았다. 이를 시기한 복수의 여신이 나르시소스를 자기 자신만 사랑하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때부터 그는 샘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고 사랑에 빠졌고, 결국 사랑을 쫓아 샘안에 몸을 던지고 만다. 그가 죽은 후에 샘주변에는 나르시소스의 혼이 한 송이 수선화로 피어났다고 한다. 때문에 '자만', '자존심'등의 꽃말이 붙어 있지만 '고결'한 꽃이다. 금새 터질듯한 벚꽃망울에 오가는 손들의 마음이 마냥 설렌다. 고요한 수심을 가르며 들려오는 클래식의 선율은 주변 풍광과 어울어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사시 장철 물이 가득한 수원지엔 아직 떠나지 못한 물새들이 한가롭기만하다. 백두산 천지나 한라산 백록담에 비견할 군산의 자랑거리다 전방산에 오르니 장항제련소와 고군산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새만금 물막이공사도 끝났으니 머지않아 승용차로 바닷바람을 가르며 섬마을에 오갈길듯 싶다. 자연은 그대로 두고 보는게 순리언만 인간의 거대한 욕망은 바다조차 어찌할 수 없나보다. 기왕 그리 되었으니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고 이 지역 경제활성화에 보탬이 되었음 싶은 소시민들의 바램이다. 새만금 영향 탓인지 조용한 군산 고을에 요즘들어 서서히 투기바람에 술렁인다. 온산을 물들인 연분홍 진달래 꽃 한 웅큼 입에 넣으니 싸아한 향내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어린날 어머니가 부치개에 꽃을 수놓아 만들어 주면 한입에 먹던 진달래임이다. 진달래에 얽한 우리 민족의 시와 전설 그리고 사연들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흔하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봄이면 한라에서 백두 어디에나 피는 꽃인지라 은근과 끈기 그리고 한의 정서를 대변하는 우리 민족의 국화라 부른대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시재가 없는 바람이라 불후의 천재 시인 소월과 미당의 시를 대신 읊조려 본다. 진달래꽃 - 김소월 -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진달래꽃>(1924) - 귀 촉 도 서 정 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염여 염여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혀서 부즐없은 이 머리털 엮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하ㅅ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수원지길은 숱하게 왔건만 결코 물리는 법이 없다. 치형이와 같이 왔더라면 물수제비를 몇 번 날렸을 것이다. 애가 5세 무렵 어항에서 키우던 청거북 다섯 마리를 방생한 적 있다. 어느날 물가에 머리를 내민 커다란 청거북을 보며 한편 반가우면서도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지 않았나 싶어 희비가 교차하던 녀석의 표정이 크로즈업된다. 그 시절엔 카메라 들고 스냅 사진도 괘 많이 찍어두길 잘했다 싶다.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과 포즈를 취하며 추억을 담아내는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양지 바른 곳에 붕어, 단치, 잉어등이 무리지어 분주히 오간다. 공원의 비둘기 마냥 사람들을 겁내는 법이 별로 없다. 가히 물고기들의 낙원이 아닌가! 이따금 어린 아이에 비견될 커다란 잉어도 심심치 않게 눈에 뜨인다, 물가에 수양 버들 노오랗게 새 순이 돋고, 찔레순도 제법 자라 군침이 돈다. 배고픈 어린 시절엔 지천으로 널린 산야초라도 먹을 수 있는것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오월이면 찔레꽃이 온통 이곳을 물 들일 것이다. 어느새 기천과 약속한 은적사 입구에 다다른다. 절간문을 지키는 사천왕에 인사를 건네본다. 몇해전 돌로 조각한 사천왕인데 보통 사찰에서 보기드문 독특한 작품이다. 위엄이 있으면서 멋과 풍류가 넘쳐난다. 잠시 솔그늘아래 땀을 식히는데 기천이가 도착한다. 짧은 시간인데 제법 수입을 올렸다 자랑한다. 이곳엔 ‘솔향기’란 황토집에 자리를 잡았다. 주변엔 소나무와 대나무가 어우러져 풍광과 음식맛 좋기로 소문난 집이다. 낙지 정식에 맛깔스런 찬거리는 이집 주인이 왕년 궁중요리 전문가였음을 새삼 일깨워준다. 주인이 우리 정서를 아는지 섬소년, 이사가던 날 등 감미로운 멜로디로 어린 날 애수를 자극한다. 기천이 큰 딸 은지는 사학도로 고적 답사와 레포트 작성등으로 바쁜 대학 생활을 만끽하고, 막내인 은미는 올해 군여고에 입학해 인기가 상종가를 쳐 실장에 임명되었다 한다. 은지 엄마를 비롯 세 모녀가 군산최고의 명문여고 동문이니 참으로 복 받은 집안이다. 얼마전 하와이 여행을 다녀온 탓인지 더욱 활기가 넘쳐 보인다. 역시 아빠에게는 딸 키우는 재미가 최고일 듯 싶다. 자칫 무료하고 쓸쓸했을 법한 무르녹는 봄날 하루를 이렇게 보내고, 글로나마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새삼 기천의 생일 축하하고, 가정에 늘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마지 않는다. |
첫댓글 친구 생일 축하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