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3)에서 계속 이어지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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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에 지게된 1억3천의 빚
욕심을 크게 내지 않았어도 게 중 마음에 드는 자리에 30평 규모의 치과를 꾸미는데 어림잡은 계산으로 1억8천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다. 서울 언저리이긴 해도 가로변에 접해 있는데다 배후에 아파트단지를 지고 있어 탐이 나는 자리였는데, 흠이라면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이었다.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하고 장비까지 모두 들여놓자니 그 돈으로도 몇 달 운용자금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장비든 인테리어든 리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들어서 알지만 성격상 내키지가 않았다. 대부분 집사람의 것이긴 해도 둘이서 마련한 돈이 5천 정도는 됐다. 본가든 처가든 빤한 살림에 마음고생이나 시키게 될까 어른들 도움을 먼저 청하진 않기로 마음먹은 터여서 나머지는 은행신세를 지는 수밖에 없었다.
신용대출로 3천만원, 나머지는 담보 대출이었다. 일단 자금길이 터이고 나니 일은 순조로웠다.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해서 공사에 들어갔고 유니트체어 3대에 기본 장비들도 기종을 정해 계약을 맺었다. 나름대로 준비하느라 했지만 작업을 진행시키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부분은 치과의사임에도 정작 개원에 필요한 정보들엔 너무 어두웠다는 점이었다. 무엇하나 선 듯 혼자서는 결정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성가시고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선배니 동기니 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그들의 경험을 물었지만 내가 현재 처한 경우에 딱 들어맞아 ‘아 이런 방법이 있었구나’ 싶은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 쪽이야 그랬지만 지금 상황은 다른 문제를 함께 안고 있어 그게 안 되는데 싶었고, 말로야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면서도 별 도움이 될 성싶지 않은 설명이 길어지면 어느새 딴 생각에 빠져 건성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12월 중순 설계에 들어가 몇 번의 수정을 거친 최종도면이 나온 건 해를 넘긴 1월 초순이었다. 곧 공사가 시작됐고 나는 현장에 나가 인부들이 작업하는 모습이라도 지켜봐야 마음이 편했다. 가끔씩 참견할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난 그럴 때마다 미리 정해둔 원칙에서 비켜가지 않도록 가능한 한 욕심을 줄였고 때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공사를 하는 입장에서야 4천만원도 채 못되는 일이 대단찮게 보일 수 있을지 몰라도 나는 달랐다. 지금껏 쏟아 붓기만 해온 한 사람의 치과의사가 이제 큰 빚을 내어 무리한 배팅에 나선 것이다. 본전 생각을 내서가 아니라 이 한판의 성패에 온통 마음이 쏠려 예수님이건 부처님이건 바지자락에 매달려 애원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인데 대충 대충 이라니….
공사가 끝나 장비가 들어오고 함께 일할 직원도 뽑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진인사 대천명이라 했으니 이젠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체념에서 였다. 계산서를 뽑아보니 인테리어에 4천만원 가까운 돈이 들었고 장소 보증금으로 3천만원이 나갔다. 유니트체어 3대에 소소한 장비까지 7천만원 정도의 자금이 필요했고 이것저것 필요한 기구와 재료를 구입하는데도 1천만원 가까이를 썼다.
보증금이야 나중에 빼낼 돈이라지만 이제 치과 수익으로 매달 임대료 2백만원과 대출금이자 1백만원, 그리고 치과위생사 1명과 조무사 1명의 급료로 2백만원 정도를 지출해야 한다. 여기에 운영비 1백만원을 잡으면 합이 6백만원, 이 돈은 환자가 있건 없건 수익이 나건 안 나건 재정상태와는 상관없이 내 주머니에서 매달 빠져나가야 하는 고정비용이다. 도대체 얼마를 벌어 얼마를 남겨야 조금씩이나마 대출금을 갚아 나갈 수 있을지 덜컥 겁부터 났다. 전공의 과정을 빼어먹는 대신 1년쯤 선배 치과를 돕다가 곧 바로 개원에 나서 동기들 사이에선 통칭 ‘재벌2세’(술 사고 밥 사는데 통이 크다는 의미)로 통하는 친구녀석은 내 걱정에는 아랑곳없이 ‘골치 아프게 벌써부터 주판알은 왜 튀기냐’고 핀잔이다. ‘다른 생각말고 열심히만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풀릴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야 좋으련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