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에서는, 사회 평균에 비해 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골드버그(Goldbug)적인 관점이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우리 외환보유고에 금 비중이 현격하게 부족하다는 사실, 사회 평균적으로 볼 때, 경제에서 금이 차지하는 의미와 비중에 대한 적절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고라의 금에 대한 관심은 조금 지나친 면이 있어 보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저는 앞선 글, 인플레인가, 디플레인가? 에서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에 대해 설명드린 적이 있습니다. 통화량 = 본원통화 + 신용(통화), 라고 간단히 설명드렸습니다.
현대 경제가 기반하고 있는 통화제도는 이처럼 은행의 신용창조기능(신용 팽창)에 기반한 신용통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용통화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속성상 신용 팽창이 지속되고 결국 경기의 과열(버블) 국면으로까지 치닫게 되고 그 결과 버블의 붕괴(공황)가 나타납니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지난 역사를 보면 주기적으로 공황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본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신용통화 시스템을 고치자는 통화개혁론이 존재합니다.
통화개혁론 진영에는, 골드버그라고 불리는 그룹과 법정통화 시스템을 주장하는 두 그룹이 있는데, 아고라에서는 상대적으로 골드버그의 영향력이 너무 강한 것으로 보입니다.
前 FRB의장인 그린스펀도 한 때는 골드버그였습니다.
“금본위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도 국민의 재산이 인플레이션에 먹히는 것을 막지 못한다. … 적자재정은 간단히 말해 국민의 재산을 몰수하려는 음모다.”
40대의 그린스펀이 했던 말입니다. 그 이후 금융계에서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면서 그린스펀은 자신의 신념을 수정했습니다.
경제학파 중에는 제가 전에 언급한 적이 있던 오스트리아 학파가 대표적으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골드버그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금본위제만이 유일한 통화시스템의 개선책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스트리아 학파 중에서도 앞장서서 금본위제로의 복귀를 설파했던 미제스 조차,
금이 통화시스템의 이상적인 기반은 아님을 인정합니다.
금본위 제도에 약점이 없지 않다고 인정하지만, 통화시스템을 일체의 인위적인 간섭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한 차선책으로 주장하는 것입니다.
신용팽창의 부작용이 나타나게 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부분지불준비금 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금본위제 하에서도 부분지불준비금 제도를 용인하면, 마찬가지로 신용의 팽창이 나타나게 됩니다.
실제로 이렇게 하여 금본위제 하에서도 여러 번 공황이 벌어졌습니다.
(은행의 신용창조 기능, 부분 지불준비금 제도의 본질적인 취약성에 대해서는 저의 책에 좀 더 자세한 내용이 있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참고하십시오.)
법정통화파는 이 부분에 주목하여, 부분지불준비금 제도를 견제하면(신용창조를 은행의 자유재량에 맡기지 않고) 법정통화시스템이 금본위제도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골드버그의 주장만이 올바른 대안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는 것으로 하고, 더욱 상세한 논의는 이 글의 목적을 넘어서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금은 인류 역사와 더불어 가치의 보존수단으로 공인 받은 대상임은 분명합니다.
금은 경제가 무너질 때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훌륭한 투자 대상이 됩니다.
나이드신 분들 중에는, 과거 6.25 전쟁 통에 금이 어떤 위상을 차지했는지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세계의 기축통화인 달러도 비슷한 위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특히나 물리적인 전쟁이 아니라 총성없는 전쟁, ‘경제’전쟁의 와중에는 달러가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지난 수 개월간 국내의 금값이 급등하면서 금 투자가 짭짤하다(?)는 인식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지난 수 개월간 국내에서 금 투자로부터 생겨난 투자수익은 금 가격상승(국제시세)보다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인해 생겨난 수익이 더 크다는 사실입니다.
즉 투자대상으로서 금을 바라볼 때는, 금가격의 상승과 환율 상승 효과를 구분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원달러 환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고 보면 금에 대한 투자가 국내의 부동산이나 주식보다는 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논리라면 차라리 가계 내에 외환보유고를 축적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반대로 향후 경제가 디플레이션(급격한 디플레이션이 공황)으로 진행된다면 금 매입은 손실을 초래할 수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꽤 많은 분들이 금이 디플레이션에 대한 헷지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를 봅니다. 이 부분은 분명한 오해일 뿐이라는 점을 밝혀둡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분은 저의 책을 참고하십시오)
금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헷지가 되지도 못한다는 사실을 또한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 역시 오해가 많습니다.
다음은 최근 몇 달간의 금 가격 동향을 나타내는 일간 차트입니다.
일간 차트만을 보면 2008년 10월 말 경부터 금 가격이 오르고 있습니다.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므로 이 차트만을 본다면 영락없이 인플레이션 흐름을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일간 차트만으로 속단해서는 안 됩니다.
다음은 주간 차트입니다.
주간 차트를 보면 최근의 상승세가 돋보이기는 하지만, 2008년 3월경에 형성된 전 고점 온스당 1033.90달러를 돌파하지 못하고 꺾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도 2006년 3월 이후 상승추세상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차트입니다.
다음으로는 1980년부터 기록된 금 가격 장기 차트를 보겠습니다.
차트상에서 윗부분은 같은 기간 동안의 다우존스 차트이고 아래가 금 가격 차트입니다. 이 월간 차트를 보면 금 가격 동향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됩니다(최고점의 가격이 앞에서 본 주간 차트의 가격과 차이가 조금 나는 것은 고정거래 가격 여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일단 2001년 이후의 움직임을 보면 금 가격이 눈에 띌 정도로 지속적으로 상승해왔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더 넓혀서 1980년부터의 가격동향을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1980년의 가격이 온스당 681.50달러였는데 2007년이 되어서야 간신히 그 가격을 회복한 것입니다.
27년 만에 겨우 옛날 가격을 회복한 것입니다. 같은 기간 동안의 평균 물가상승률만 계산해도 오히려 엄청난 손해입니다. 같은 기간 동안 다우존스 지수가 1,000 미만에서 1만 4,000 가까이 14배 이상 상승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금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비책으로 좋다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은, 2001년 이후에 형성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시야를 넓혀서 장기 동향을 살펴보면, 전혀 인플레이션 대비책으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평균 물가상승률에도 턱없이 못 미치고 있으니까요.
금은 분명 인류의 보편적 선호대상입니다. 귀금속이며 최고의 안전자산입니다. 또한 역사 이래로 탐욕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런 상품은 분명 평균 이상의 가격 상승률을 보이는 것이 정상입니다. 평균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친다는 것은 지나치게 못 올랐다고 봐야 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금이 미국 중앙은행인 FRB를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에 의해, 일종의 정치적 연금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치적 연금상태를 고려하면 향후 금 가격 동향도 낙관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저의 책을 참고해주십시오)
실물 금에 투자할 경우는 공인된 골드바가 아닐 경우에는 나중에 되팔 때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물론 손쉽게 금에 투자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개발된 금 통장(골드뱅킹이라 불리웁니다)도 있습니다.
수수료나 부가가치세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점들을 고려해보면 금보다는 외화예금통장이 좀 더 손쉽게 비슷한 목적(헷지)을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플레이션 헷지 수단으로 귀금속에 투자한다면 차라리 금보다는 은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상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생각들일 뿐이므로 그냥 참고만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