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를 교체할 때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이 벤치 내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구원투수를 호출하지만 한국프로야구에서는 마운드에 올라간 투수코치가 볼펜 쪽을 향해 손짓하며 외친다.
'야~! 너 나와!' ”
‘야구’라는 스포츠 하나로 한국과 미국의 차이점을 재미있게 풍자한 글 ‘메이저리그 vs 한국프로야구’ 라는
제목의 게시물 중 일부분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코칭스텝과 선수와의 관계를 은근히 꼬집고 있다.
요즘 웹상에서는 한국과 일본, 또는
한국과 중국, 또는 한국과 미국을 비교한 게시물들이 유행이다. 도깨비뉴스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 100가지’, ‘한중일 3국의 비슷한 점
다른점’ 등의 기사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이런 게시물들은 보통 한국인들의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거나, 이와는 반대로 한국인들의 우수성을
자랑하는 글로 나뉘게 된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메이저리그 vs 한국프로야구’ 글은 한국 프로야구 및 관중 그리고 tv중계 등 한국
프로야구가 아직은 메이저리그에 비하면 여러 수 아래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분류를 하자면 전자에 가깝다.
‘메이저리그 vs
한국프로야구’ 라는 제목의 글은 한 마디로 요약해서 미국과 한국 프로야구의 차이점을 담고 있는 우스개 글이다. 그러나 'ARS 퀴즈'를 빙자해
통화료나 챙기려 드는 우리의 현실이나 4번 타자가 툭하면 ‘보내기 번트’를 하는 상황등은 웃음 중에서도 쓴 웃음 밖에 나오지 않게
한다.
재미있는 글이지만, 몇 군데에서는 “정말 그래!”라며 쓴웃음을 짓게 하는 글이 바로 ‘메이저리그 vs 한국프로야구’인
것.
네티즌들은 위의 프로야구 게시물을 놓고 “전 야구 잘 모르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동감이 가는 군요”라며 공감을 나타내거나
“상당히 많은 부분에 동감 합니다만 그렇다고 프로야구를 외면하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라며 당부의 글을 올리기도 한다.
또 미국을
싫어하더라도 “배워야 할 점이 있다면 배워야 하는 게 옳다”는 점에는 입을 모은다.
▷ 1. ARS 퀴즈 [메이저리그] : 95시즌 클리블랜드 인디언즈에서 은퇴한 선수로서,
23년의 선수생활 동안 7번의 골든글러브 수상과 12차례 올스타에 선정됐으며, 메이저리그 통산 3110안타/465홈런/223도루/ 통산타율
0.283를 기록한 선수는? 1.데이브 윈필드 2.윌리 메이스 3.조지 브렛 4.커비 퍼킷 [한국프로야구] : 오늘의 승리
예상 팀은? 1.a팀 2.b팀
▷ 2. 관중들 소지품 [메이저리그] : 모자, 썬글라스, 햄버거, 콜라....
[한국프로야구] : 호루라기, 막대풍선, 오징어, 맥주, 소주
▷ 3. 가끔 있는 일 [메이저리그] : 가끔, 투수가
홈런을 친다. [한국프로야구] : 가끔, 4번 타자가 보내기 번트를 한다.
▷ 4. 동점. 무사 1, 2루 상황
해설 [메이저리그] :"어쩌면 "기습번트"를 댈 수도 있습니다." [한국프로야구] :"당연히 "희생번트"를 대겠죠?"
▷ 5. 선발투수 중간 분석 [메이저리그] : 32타자를 상대로 105개의 공을 던졌고, 그중 스트라이크가 68개,
볼이 37개, 직구는 50개, 커브 31개, 슬라이더가 15개. 최고 구속은 96마일. 8개의 안타 허용, 3볼넷, 삼진 5개. 초구
스트라이크는 21개. 허용한 8개의 안타 중 직구가 5개, 커브 2개, 슬라이더 1개 이닝별 평균실점 비교,
,2,3,4,5,6,7,8회......(어쩌구 저쩌구....) 투구수당 방어율 비교,,1~20개, 21~40, 41~60, 61~80,
81~100 (어쩌구 저쩌구.....)" [한국프로야구] :"무척 지쳐 보입니다."
▷ 6. 투수 교체
[메이저리그] : 감독이 벤치 내에 설치된 인터폰으로 구원투수를 호출한다. [한국프로야구] : 마운드에 올라간 투수코치가 볼펜
쪽을 향해 손짓하며 외친다. "야~! 너 나와!"
▷ 7. 9회말 2아웃 주자없는 상황..관중 모습 [메이저리그] : 일제히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한국프로야구] :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다.
▷ 8. tv중계 아나운서의
끝인사 [메이저리그] :"이상,axxx 대 lx의 경기를 시청하셨습니다. 끝으로! 오늘 경기의 주요 장면을 하일라이트로 엮어
보내드리며 중계를 마치겠습니다. 여러 분, 안녕히 계십시요." [한국프로야구] :"정규방송 관계로 중계를 마칩니다. 경기 결과는 스포츠
뉴스 시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여러 분의 양해 바랍니다." |
앞서 말한 '한국과 다른
나라와의 차이점'을 부각 시키는 글도 인기지만 유일하게 공통점을 설명한 글도 있다. 바로, ‘한국, 일본, 미국의 야구 선수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 세 나라의 유명 야구스타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지를 비교 설명하고 있는 이 글은 비록 역정은 다르지만, 어느 곳에서나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현재 이 글은 블로그 게시판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접할 수 있는 인기 게시물이다.
한국, 일본, 미국의 야구 선수 이야기
▶ 1.한국
이야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프로구단과 대학에서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질 않았다.
프로구단의 스카우터의 수도 적었지만,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는 갈 곳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한 프로야구
구단에 연봉 600만원의 "연습생"으로 겨우 입단하게 되지만, 그에게 기대를 거는 관계자들은 거의 없었고, 미래도 불투명하였다.
그는 그때 자신에게 약속을 한다.
"딱 3년만,... 죽을각오로 열심히 뛰어보자!!!, 그래도 실패하면, 그때
포기하자!!!"
남들이 쉴 때, 그는 또 한번 달렸고, 손에 굳은 살이 박힐정도로 배트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이렇게 세상과 담을
쌓고,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 그지만, 시련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렇게 많이 연습을 하였고, 최선을 다했지만, 게임에서 에러를 범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대타로 겨우 출장한 경기에서, 몸이 굳어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3진을 당했을 때는, 자신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참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참고 다시 일어섰다. 다른 사람이라면, 포기했을 시련을, 자신을 책질질하면서, 이겨낸 것이다.
결국 그는 팀의 주전 유격수를 차지하게 되고, 프로에서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바로 이선수가, 홈런하나, 타점한개까지
모두 "신기록"이 되는 한국프로야구의 "역사", 한화의 "장종훈"이다.
▶ 2.일본 이야기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만 하더라도, 그는 완전 "무명"의 선수였다. 물론 팀의
에이스로 좋은 기록을 남겼지만, 그의 고등학교 팀은 너무 약체였고, 일본 프로야구 스타들의 "등용문"이라고 할수 있는 고시엔에 제대로 나와
본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네모토, 다구치, 오치아이같은 고교프로야구 스타들은 스카우터들과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화려하게 프로에
입문하였지만, 그는 부럽게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바로 이때, 단 한명의 스카우터만이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그의 재능을 알게
되었고, 그를 자신의 구단의 입단 시킨다. 프로입단 후 그는 2군리그 타격왕의 오르며, 무한한 "잠재력"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중요한 1군에서는
.253, 0홈런으로 부진하였고 그 다음해에는 .188의 1홈런으로 더욱 안좋았다. 더욱이 그의 팀 감독은 그의 특이한 타격폼마저 싫어하여,
"저런 식으로 뭘 치겠다는 건가?"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는 참고 견디었고, 신임감독이,"타격폼은 이상해도, 잘 치면
된다!!!"라며, 그를 인정해주면서,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결국 그는 94년 최다 안타 기록과 역대 2위에 해당하는 .385의 고타율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한다. 바로 이선수가 일본 최고의 선수로 불리며, ML MVP와 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한 일본의 야구천재
"이치로"다.
▶ 3. 미국 이야기
그의 아버지는 엄청난 "재벌"이었고, 그가 마음만 먹었더라면, 평생 동안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하게 살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자, 그는 멀고도 험한 "프로야구선수"로의 길을 선택하게 되었고, 그가 프로야구선수가 되는 것은
역시 순탄치 못하였다. 그가 프로구단의 입단하려고 했지만, 그에게 관심을 주는 구단은 단 한곳도 없었다.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데이드카운티
커뮤니티칼리지 야구팀의 1루수에게 "러브콜"을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일.
결국 그의 아버지는 ML팀 중 하나를 인수할
생각까지 하다가, 그와 절친한 사이였던 한 구단의 감독에게 아들의 입단을 "간청"하였고, 그 감독의 도움으로 어떤 구단의 62번째로 지명받게
된다. 1,433명의 선수 중에 1,390번째, 거의 "꼴찌"로 겨우 입단했지만, "실력"도 없는데, 아버지덕에 입단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에게 "부정적"인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부유한 집에서 자랐고, 중도에 그만 둔다면, 다시 호화로운 생활을
할수도 있었지만, 마이너에서 햄버거를 먹으며 야구에만 전념한다.
원래는 1루수였던 포지션도, 그나마 경쟁이 덜해, ML에서
살아남을수 있는 포수로 변경한다. 그의 노력 때문인지 수년 또한 마이너를 전전하다, 92년 빅리그의 "맛"을 보기 시작하였고, 93년
149게임에 출전, 0.318의 타율에 35홈런, 112 타점을 기록하면서 NL 신인왕의 오른다.
바로 이선수가 ML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 불리며, 연간 130억이 넘는 고액의 연봉을 받는 ML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인 "마이크 피아자"다.
첫댓글 재미있고 글구 배울점도 많으네요 잘읽었습니다
사실 전 읽지않았구요,암튼 수고함다 담에 또 두류산으로 갑시다
두류산 갈때 나도........언제라도 애니콜입니다..........저도 회사 외근나간다면서 나올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