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선지자와 예언 원문보기 글쓴이: 수잔
성령의 열매(오래 참음)를 맺으라
울드 부부 가정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생기있고 즐거운 삶이 시작 되었습니다. 이 부부는 아들에게 아더 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아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행복감에 젖어 있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은근히 불안하면서 걱정이 되었는데, 아더가 다섯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는 것 때문이었죠.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그 원인을 알아봤대요. 검사를 마친 의사 선생님의 표정이 그리 밝지 않더니 부모에게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이 아이는 정신지체 장애아입니다. 언제 말을 하게 될지 모르겠군요...”
‘설마...’ 하던 염려가 현실로 나타나자 이들 부부의 마음이 무겁고 고민이 되었어요. 하지만 울드 부부는 낙심하지 않고 아들에게 충분한 부모의 사랑을 주면서 정성을 다해서 키웠어요. 평일에는 특수학교에 보내서 활동하게 하고, 가정에서는 정상적인 아이처럼 대하면서 관심을 가졌어요. 주일에는 교회에 데려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했어요. 하지만 20대 후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자기 표현을 못했어요.
보통 청년들은 결혼한 시기인데, 아더는 장애인을 고용한 회사에서 단순 조립하는 일을 배우고 있었어요. 그러던 중에 장애인 작업장 책임자로 캐럴이란 사람이 부임을 했답니다. 캐럴은 언어 장애가 있던 아더를 며칠 동안 관찰하고 나서 아더에게 컴퓨터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답니다. 그런 후에 캐럴이 아더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어요. “저는 아더가 다니는 회사의 작업장 책임자, 캐럴입니다. 부모님께서 아더가 일하는 작업장에 오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울드 부부는 그 전화를 받고 궁금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더래요. ‘무슨 일인가? 아들이 무슨 사고를 쳤는가?’ 울드 부부가 작업장에 들어서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캐럴이 컴퓨터 자판을 치면서 아더에게 컨디션을 물었나 봐요. “오늘 기분이 어때?” 하고 말이죠. 그러자 아더가 손가락을 아주 천천히... 힘들게 움직이면서 글자를 치기 시작했어요. 컴퓨터 화면에 무슨 말이 떴는지 아세요? “이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어 행복합니다...” 아더는 29년간의 침묵 끝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울드 부부는 아들 의 마음을 알고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여러분! 사랑은 오래 참고, 행복은 인내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성취하는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적인 믿음으로 인내하는 사람에게 스릴있는 인생을 경험하게 합니다. 프랭클린은 말하기를 “인내를 지닐 수 있는 사람은 그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가 있다.” 그랬어요. 행동하는 신앙을 강조했던 야고보 사도가 성도들에게 여러 차례 반복했던 말씀이 야고보서 5장 7-10절에 기록되어 있어요.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그랬어요. 과일나무에서 맛있는 열매를 얻으려면 적어도 6개월 동안 가꾸고 기다려야 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왜 오래 참고 기다리게 하실까요? 오래 참음이 곧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에서 떠나 방황하는 인생들이 은혜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오래 참고 기다리는 거예요. 성경 주석가인 버튼(E. D. Burton)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억울한 상황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확고히 신뢰하고 기다리는 삶의 태도가 바로 오래 참음이다.” 그랬어요. 오래 참는 사람, 인내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14절을 보세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부르셨던 아브라함은 수메르 문명의 영향권역인 갈대아 우르였어요. 그때에 아브람의 나이가 75세였는데, 그 나이에도 자식이 없었어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두 가지 약속을 받았는데, 그 하나가 “너에게 하늘의 뭇별처럼 많은 후손을 줄 것이다.”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너와 너의 후손에게 땅을 줄 것이다.” 그랬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인간의 시간과 공간 속에 개입하셨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그 약속에 “예” 하고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 약속을 이루십니다.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의 삶을 통해서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몇 년, 몇 월, 몇 일이란 시간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믿음이 좋고, 믿음으로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 적잖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실수하고 실패를 합니다. 아브라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니까요. 아브라함이 후손에 대한 약속을 받은 지 10년 후에도 자식이 없자, 그는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후손을 얻으려고 시도했어요. 사라의 몸종이었던 하갈을 대리모로 이용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부부의 판단과 선택은 후회와 고통을 안겨 주었어요.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삶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해 준 사건입니다. 이스마엘이 태어난 후에 아브라함의 가정은 평안이 없었어요. 불신과 갈등, 반목으로 불행한 삶이 계속 되었어요.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갈 4:29) 그랬어요. 육신의 생각을 따라 태어났던 이스마엘은 성령을 따라 태어났던 이삭을 괴롭혔고, 이들 후손들(유대인과 모슬렘) 간에 분쟁하는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선택한 일들은 결국에 갈등과 고통을 안겨주고 불행하게 만듭니다.
마틴 셀리그먼 이란 심리학자가 있는 데, 그가 행복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를 말했습니다. 행복은 첫째로 삶이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운 삶이어야 행복해요. 둘째는 만족스러움 가운데 행복이 있어요. 셋째는 의미있는 삶 속에 행복이 있어요. 그런데 이 세 가지 요소 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행복을 간직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의미있는 삶입니다. 왜 의미있는 삶이 행복을 오래도록 간직하는지 아세요?
즐거운 삶 속에는 쾌락적인 요소가 있는데, 쾌락적인 요소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것을 추구하려고 해요. ‘이것 말고 다른 것은 없을까? 더 좋은 것이 있을 텐데... 이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났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즐거움이 사라지더라는 것이죠. 두 번째, 만족스러움이란 것도 그래요. 해 아래 새것이 없고, 해 아래 사는 사람에게 만족이 없더라는 거예요. 오늘 맛있게 잘 먹었던 것, 그것을 계속해서 먹으라고 하면 만족하지 않아요. 멋있는 옷을 입을 때 기분이 좋은데, 그 옷을 계속 입고 다니면 만족하던가요? 자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풍족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삶의 의미를 알고, 느낀 사람은 가장 낮은 곳에서도, 가장 빈약하고 빈궁한 삶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행복을 느낍니다. 최빈국에서 사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의미있는 삶은 즐거운 삶이나 만족하는 삶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행복을 지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믿음으로 사는 삶이 행복하십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의미있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다렸어요.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그랬어요. 여기서 “복을 준다” 하는 말은 헬라어로 “율로게소(eulogeso)” 인데, “내가 복을 줄 것이다” 하는 미래형입니다.
우리말로는 “칭찬하다, 종교적으로 축복하다, 축복을 빌다, 번영을 빌다, 찬양하다” 라는 뜻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누구를 칭찬하고, 무엇을 칭찬하실까요? 누구에게 복을 주고, 번영하게 하실까요? 믿음으로 약속을 붙들고 오래 참고 기다리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사람에게 번영하는 삶을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약속을 붙들고 오래 참고 믿음으로 산다면 이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또한 “번성케 하다” 하는 말은 헬라어로 “플레뒤논(plethynon)”입니다. 우리말로는 “증가하다, 배가하다, 많아지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에게 약속하신 복을 언제 받습니까?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타이밍에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그 약속이 복으로 현실화 되려면 하나님의 타이밍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고 그릇을 준비할 때, 복을 주시고, 번성케 하실 것입니다.
미국 콜로라도주 스프링스에 있는 스프링스 하비스트(Springs Harvest Fellowship) 교회를 섬기고 있는 더치 쉬츠 목사님이 <하나님의 타이밍을 포착하라> 라는 책을 썼는데, 그 책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어느 날 아침에 한 남자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철도역 안으로 급하게 뛰어들어 왔답니다. 그는 겨우 숨을 몰아 쉬면서 매표원에게 묻더래요. “8시 1분 기차가 언제 떠납니까?” “8시 1분에요.” “내 시계로 지금이 7시 59분이고, 시청 시계로는 7시 57분이고, 철도역 시계로는 8시 4분인데, 나는 어떤 시계에 맞추어야 하죠?” “어떤 시계에 맞추든지 그것은 당신 마음대로지만 당신은 8시 1분 기차를 탈 수 없어요. 그 기차는 이미 떠나 버렸거든요.” 그러더래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예고 되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지 못하면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약속을 받은 후에 불행을 경험했던 사건도 하나님의 타이임을 포착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약속을 누구의 타이밍에 맞추고 있나요?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타이밍에 맞추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타이밍을 이해하면 스트레스를 전혀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약속이 더디다고 불평할 필요도 없고, 지금 내 삶이 초라하다고 고민할 필요도 없어요.
왜 그럽니까? 하나님께서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령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3-4) 그랬어요.
여기서 한 가지 깊이 살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나에게 왜 이렇게 더디게 이루어질까?’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내가 하나님의 타이밍에 맞추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내 시간에 맞출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실망하고 원망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교만하여 정직하지 못할 때 약속에 대한 의심이 생깁니다. 믿음으로 오래 참고 기다리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거짓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복은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곧바로 현금을 내놓는 자동예금출납기가 아닙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약속은 약속어음과 같아요. 약속어음은 현찰보다 더 많은 액수를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약속어음은 정해진 기한(시간)이 도래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복은 때로 오래 참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오래 참는 것 역시 믿음의 한 부분이요, 성령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게 하신 것일까요? 약속에 대한 온전한 믿음으로, 믿음의 증거자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든지, 불평이 없어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을 훈련시키시는 거예요. 내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대한 뜻을 이루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속상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전적으로 하나님의 타이밍에 약속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자손에 대한 약속을 받고 나서 10년 후에 왜 마음이 흔들렸어요? 아내 사라의 나이가 점점 늙어져서 생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초조하고 의심이 생긴 거예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 중에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왜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지? 아무리 봐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지금이 이전보다 훨씬 더 상황이 좋지 않아...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은 아닐까?’ 성공을 바로 앞에 두고 포기하고, 오래 참지 못하고 일을 그만 둬버리거든요.
하지만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은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해도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든 조각을 맞추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오면 모든 일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온 모세를 보세요. 모세는 수많은 히브리 어린 아이들이 바로의 칼에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건져서 바로 궁으로 들여 보내시고 40년 동안 키우셨어요. 애굽의 최고 교육을 받게 하셨는데, 그런 모세를 바로 사용했습니까? 아니예요. 모세를 광야로 내 보내서 40년 동안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게 하셨어요. 그 기간 동안 모세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교육시켜 놓으시고 써주지도 않으신다... 광야에서 40년 동안 나를 썩게 하신 겁니까?’ 처음에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광야훈련 기간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타이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체를 보시고 그림을 그리시고 계신다면 우리는 일부분을 보고, 나의 시각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그랬어요.
미국 레이크우드 교회에서 사역하는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쓴 <긍정의 힘> 이란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원래 자기 아버지의 설교가 전 세계에 방송을 타기 바랐대요.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인생의 황혼기를 훌쩍 넘기신 때여서 방송에 별로 관심이 없고, 편안한 마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싶었답니다. “아버지, 일주일에 한 시간만 스튜디오에 나오시면 저희가 모든 프로그램을 다 알아서 만들께요.”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내 나이가 벌써 일흔 다섯이 아니냐? 다른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조엘은 속으로 ‘하나님, 저는 젊어요. 제 꿈은 전 세계를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저에게는 에너지가 넘쳐요. 현재에서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데, 마음 깊은 곳에 다른 목소리가 들리더래요. ‘참고 기다려라. 지금은 때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표와 힘 대로 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기다렸죠. 시간이 점점 흘러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주님의 품으로 가셨어요.
그후로 하나님께서 아들 조엘을 목사가 되게 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상황을 조정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느끼거나 보지 못해도, 10년 전의 상황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순식간에 상황이 바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순식간에 사업이 번창하고, 순식간에 믿지 않는 남편이 예수 믿고, 순식간에 방황하던 자녀들이 돌아오고, 우리의 꿈과 소망이 항구에 다다릅니다.
그 예를 하나 들어 보죠. 30대 중반이 된 셀비 라는 여인은 아름답고 사랑스런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결혼하기를 바라며 쉬지 않고 기도했는데, 한 번도 이상적인 남자를 만나지 못했죠. 2-3년 동안 데이트도 못해 보고... 절망감이 밀려오더래요. ‘평생 혼자 살아야 하는가 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어느 날 차를 몰고 퇴근 하는 길에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도로가에 차를 세워놓고 있었어요. 몇 초 후에 다른 차가 다가오더니 젊고 잘 생긴 한 남자가 내려서 타이어를 갈아 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가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요청하고, 1년 후에 두 사람이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않음을 충분히 보여 주십니다. 비록 지금 이 순간에 아무 것이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은 계획을 하나씩 실행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방법에 맡기며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에 따르면 아무리 큰 고난이 와도 낙심하지 않아요. 왜 그래요? 고난을 통해서 더 큰 사람이 되고, 더 큰 그릇을 준비하니까요. 본문 18절에서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신다” 그랬어요.
윌리엄 워드는 말하기를 “당신이 믿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얻을 수 있고 당신이 꿈꿀 수 있다면 당신은 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랬어요. 여러분! 인내는 사랑의 필수요소이고, 성령의 네 번째 열매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환경에 좌우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꿈이 이루어지도록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성령의 열매,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유백선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