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보존을 잘못 이해한 사상 가운데 하나는 이신론(deism)이다. 이신론은 17세기부터 자연과학이 발전하면서 “자기규제적인 기계장치로서의 자연” 개념의 등장과 함께 나타난 것으로써, 하나님은 단순히 자연의 “최초의 운동”만 제공할 뿐 “자연의 과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상이다. 에릭슨은 이신론을 하나님의 사역을 마치 자동차의 속도조절 장치로 비유했다. 일정한 속도를 자동으로 유지하면서 달릴 수 있도록 만든 속도조절장치는 더 이상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지 않아도 자동차가 자동으로 가게 만드는 장치다. 이신론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뒤 법칙을 만들어서 이 세상이 자동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사상이다. 그래서 더 이상 하나님은 이 세상의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상은 이 세상의 일반법칙만 인정할 뿐 기적이나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사역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보존방식은 소형전동드릴로 비유되기도 한다. 소형전동드릴은 사용자가 버튼에서 손을 떼면 저절로 멈춘다. 만일 하나님이 이 세상에 관여하지 않거나 손을 떼면 이 세상은 더 이상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보존은 이 세상이 존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전동드릴로 비유하는 것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한시도 멈추거나 관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매사에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과 적극적 섭리의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는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사건이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발생하는 일들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세상이 돌아가도록 바라보고 계실 때도 있는 것 같다. 만일 전동드릴처럼 하나님이 이 세상과 관계를 맺으신다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적극적 의지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전기드릴로 하나님의 섭리를 비유하는 것은 세상과 하나님의 섭리를 지나치게 이원화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제가 있다. 이 세상에서 발생하는 일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거나 반대되는 악(惡)도 있다는 점에서 더욱 더 그렇다. 그러므로 악고론(惡苦論)은 바로 이 섭리문제와 함께 풀어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회중주체적 조직신학], 191-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