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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장에 나온 갖가지 농산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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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용문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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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을 파는 할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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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 입구에 선 민속장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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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일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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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로 오르는 오솔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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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땅은 볼거리가 참 많은 고장이다. 서울에서 1시간 거리로 큰 부담 없이 일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강, 호수, 들, 산이 보여 주는 천혜의 자연 환경은 언제 찾아도 포근하고 매력이 넘친다. 여기에 팔당호와 남한강, 북한강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 길과 길가의 카페, 격조 높은 예술품들이 전시된 화랑은 다목적 여행지로 제격이다. 가족과 함께 1박 정도의 주말 나들이나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는 데 무리가 없다.
예로부터 물의 고장, 산나물의 고장으로 유명한 양평은 산이 깊고 물이 맑아 산채(山菜)가 자라는 데 최적의 조건을 갖고 있다. 해발 1,157m로 주변에 우뚝한 산들을 거느리고 있는 용문산은 해마다 봄철이면 그야말로 나물밭이 된다. 돌나물, 얼레지, 곰취, 원추리, 더덕, 미나리싹, 고비, 취나물, 참나물….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런 나물들은 양평군 일대의 재래시장(용문장, 양평장)에서 인기를 독차지한다. 이즈음에 나오는 산나물은 대부분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것들이다. 나물은 이제 사철 맛볼 수 있는 먹을거리인 셈이다. 끝자리가 3일과 8일에 서는 양평 오일장에 가면 용문산에서 캐온 갖가지 마른 산나물을 구경할 수 있다. 장터 풍경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현대식 시설에 밀려 장세가 예전만 못한 게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물건값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사꾼과 손님들, 하얀 김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밥집에는 시골 사람들이 모여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재래시장이 으레 그렇듯이 이곳에서 거래되는 품목은 산나물류를 비롯해 농산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값도 적당하고 무엇보다 무공해 농산물이어서 도시민들의 발길이 잦은 편이다. 양평장은 양평역 부근 철길 아래 공터와 그 안쪽 도로변에 선다. 공터에는 옷전, 어물전, 채소전, 잡화전 등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다. 공터 가장자리에는 대폿집을 비롯해 밥집이 자리잡고 있다. 읍내 중심부인 큰길가와 좁은 골목길에도 장날이면 어김없이 장꾼들이 들어앉는다. 사람이 뜸한 양평역에서 장터로 가는 조그만 다리인 관문교 앞과 철길이 양평읍을 통과하면서 만들어 놓은 굴다리 아래에도 난전을 벌인 장꾼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럭에 배추와 무를 가득 싣고 나온 나이 지긋한 아저씨는 장이 파할 시간인데도 다 팔리지 않아 누가 헐값에라도 사갔으면 좋겠다고 씩 웃음을 흘린다. 김장철이 지나선지 배추와 무를 찾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자, 어서 오세요. 속초산 마른 오징어 한 축에 2만 원, 이 오징어는 보통 오징어와는 다릅니다. 낚시를 이용해 한 마리 한 마리 끌어올려 맛도 기가 막힙니다.” 때가 때인지라 요즘 양평장은 장터 특유의 들썩거림이 덜하다. 추운 날씨 때문에 장터를 찾는 사람들이나 장꾼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양평장 하면 뭐니 뭐니 해도 나물류가 주종을 이루는데 취, 머위, 원추리, 질경이, 참죽순 같은 나물류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나와 인기가 좋다. 이러한 나물들은 오래전부터 농민들이 땅에서 직접 채취하여 시설 하우스에서 재배를 함으로써 사철 맛볼 수 있게 된 것들이다. 여기서 봄철의 대표적인 나물 몇 가지를 살펴보자. 좀 이른 철이긴 하지만 달래와 함께 봄철의 대표적인 나물로 냉이를 들 수 있다. 남녘에서는 보통 2월경이면 봄나물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냉이는 맛과 향이 독특해 국거리로도 좋고 데쳐서 무쳐 먹기도 한다. 냉이국을 끓일 때는 깨끗이 씻은 냉이를 그대로 끓이기도 하고, 파랗게 데쳐 씁씁한 맛을 우려낸 뒤 건져 놓았다가 장국이 끓을 때 넣기도 한다. 이렇게 해야 맛이 나고 은은한 향이 감돈다고 한다. 알맞게 데쳐 낸 냉이는 참기름과 볶은 깨, 식초와 다진 마늘 등을 넣고 고추장에 무쳐 먹기도 하는데, 이 역시 일미(一味)다. 봄나물 중에 가장 쓰임새가 많은 것이 쑥이다. 그 종류가 무려 30여 종에 이른다던가. 쑥은 우리 겨레와도 인연이 깊은데, 『단군신화』에는 신령스러운 먹을거리로 나와 있고, 『동국세시기』에는 액막이로 등장하는 걸 볼 수 있다. 쑥을 깨끗이 씻어 물기가 다 빠진 다음 멥쌀가루에 비벼 찜통이나 시루에 쪄낸 쑥범벅, 쑥과 쌀을 함께 반죽해 손바닥만하게 빚어 삶아 내거나 쪄낸 쑥개떡, 찹쌀가루에 비벼 절구에 쳐내면 쑥인절미, 된장을 풀어 끓이면 쑥국이 되었다. 녹즙이나 술을 담가 먹기도 했으며 차로도 즐겨 마셨다. 위장병, 냉증, 지혈을 위한 약재로도 그만이라고 한다. 한방에서는 참쑥이라 해서 뜸을 뜰 때 쓰기도 했다. 참쑥은 다른 쑥과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잎 뒤에 하얀 솜털이 박혀 있다. 두릅나무의 어린순인 두릅은 살짝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제일이다. 고기를 곁들여서 지진 두릅적은 봄철 입맛을 잃은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두릅보다 가냘픈 참죽순은 그 옛날 소금으로 절였다가 해산물과 함께 중국으로 수출했던 품목이었다. 일명 향채라고도 하는데, 중국에서는 참죽순 튀김을 봄철 요리의 으뜸으로 치고 있다던가. 용문산 들머리에서는 민속장터도 들러 봄직하다. 매일 문을 여는 10여 개의 가게마다 양평산 곡물과 엿, 은행, 약초, 고사리, 도라지, 더덕, 참나물, 버섯 등이 그득하다. 하나같이 품질이 믿을 만한 것도 이곳의 매력이다. 5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한 장꾼은 입소문이 퍼져 일부러 사러 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귀띔해 준다. 요즘 대도시의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보면 나물류가 많이 나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대부분 재배한 것들로 야생나물과는 차이가 있다. 케일, 앨팰퍼, 브로콜리, 셀러리, 파슬리, 아스파라거스, 꽃양배추, 치커리, 레티스 등 이름도 낯설은 서양 채소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현실이고 보면 이제 토종 나물이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든다. 우리 나라 음식에 나물 요리가 발달한 까닭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보릿고개 시절, 마땅한 먹을거리를 찾아 들녘을 헤매다 지천으로 널린 풀을 뜯어먹었는데, 그게 나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곡물이나 고기류를 섭취하기가 어려웠던 그 당시 나물은 생명을 잇게 해준 것이었다. 한때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음식으로 생각했던 나물이 최근 들어 과학적인 연구로 그 신비한 힘이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특히, 육식을 즐겨 먹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음식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물에 함유된 단백질, 무기질, 필수지방산은 일반 채소류(배추, 시금치, 상추 따위)보다 우수하다고 한다. 또한 나물은 산성 체질을 개선해 알칼리성으로 만들어 주고 노화를 방지해 줄 뿐만 아니라 모든 장기의 기능을 강화해 준다. 이렇게 볼 때 나물은 누구나 챙겨 먹어야 할 보약이나 다름없다. 양평 땅은 어디를 가나 볼거리가 널려 있다. 용문산 입구에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서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은행나무는 신라 최후의 왕 경순왕의 세자 마의태자가 망국의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은행나무를 품고 있는 용문사는 그 유래가 깊은 절이다. 큰 전란이 있을 때마다 불에 타는 불운을 겪은 용문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절이다. 대웅전에서 오른쪽 산길을 따라 500m쯤 가면 보물 531호로 지정된 정지국사의 부도와 탑을 만날 수 있다.
여행 메모
서울에서 갈 경우 한강을 따라 이어진 6번 국도를 타는 것이 가장 좋다. 구리-양수리-양평을 지나 용문에서 331번 지방도로를 타고 6.6km를 달리면 용문사 주차장에 닿는다. 서울 상봉터미널에서 양평행 직행버스가 수시로 있다(1시간 10분 소요). 양평터미널에서 용문사행 버스를 하루 6회 운행한다. 중앙선 열차를 타고 용문역(031-773-7788)에서 내리면 용문사 가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글ㆍ사진/김동정(여행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