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아사히나 다카시의 제자가 한 명도 없다. 생전에 아사히나가 인정하는 제자는 지휘자 임원식(83)이 유일하다. 지난 2002년 1월. 그는 미국 여행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스승의 비보를 접했다.
“장례식에 참석 못했죠.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가족들만 참석한 채 밀장을 했다 더군요. 2월 7일에 오사카에서 음악장이 열리는데 거기에서 오사카 필을 지휘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꼭 참석해서 선생님을 떠나보내는 제 마지막 마음을 실어 지휘할 생각입니다.”
< 여름이면 이 계곡물이 얼마나 찬지 쌀을 씻을 수가 없습니다. 손이 시려워... ㅎ>
임원식은 그날 오사카 필을 지휘,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한다. 임원식 외에도 도야마 유조?와카스기 히로시, 그리고 아사히나의 장남이며 역시 지휘자인 아사히나 지다루가 참석, 고인을 추모하는 음악회를 지휘.
임원식이 아사히나를 만난 것은 일제 말기인 1944년. 임원식이 당시 아사히나가 음악감독을 담당하고 있던 하얼빈 심포니를 찾아간 것. 사제간의 정이 더욱 깊어 지게 된 것은 1945년 일본 패망 당시가 계기가 됐다.
당시 패자인 일본인들을 색출하는 삼엄한 분위기 아래서 임원식은 스승을 숨겨 주었고 그 뒤 아사히나는 임원식에게 2평 정도의 작은 방에서 악보에 연필로 표시를 하면서 오케스트라 없이 목소리와 손을 사용한 지휘 교습을 했다.
이 사실은 니혼 게자이 신문에 소개돼 일본에서는 지금까지도 하나의 ‘미담’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하 中略
< 얼음골 계곡... 석남사에서 내려오는 길로 1998년 집사람과 부모님 교통사고 >
1984년 인천 시립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해 1990년까지 재임하면서 악단의 기량과 음악성 향상에 기여했고, 1992년에는 악단으로부터 명예 상임 지휘자 직책을 수여받기도 했다.
생애 말기 KBS 교향악단의 명예 지휘자와 한국 지휘자 협회의 명예 회장으로 활동했고, 2002년 6월 1일 한일 월드컵 기념으로 열린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 트라의 연주회에 출연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주회 직후 위암 선고를 받았고, 서울 아산병원에서 투병 중 타계했다.
지휘와 교육 활동 외에도 작곡가로서 가곡 '아무도 모르라고', '현충일 노래' 같은 작품을 남겼다. KBS 방송문화상, 문교부 5월 문예상, 서울시 문화상, 한국 예술원상, 은관문화훈장, 금호음악상 등을 수상했으며, 구 서독 정부에서 도 문화훈장을 수여했다.
최초의 서사시를 쓴 김동환 우리 나라 신시新詩의 초창기에 활약한 시인으로 그의 등단의 작품이기도한 1924년의 <국경의 밤>은 우리 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남겨져 있다. 당시의 문단에 유행한 신경향파新傾向派에 접근한 민중적民衆的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인 관념觀念으로 작품들을 내어놓았다. 그의 소박하며 진솔한 작품들은 애국애족의 작품들로서 서민적, 야성적, 낭만적이다. 불행하게도 6.25전쟁 때 납북되어 정확한 생사의 소식이 없어 안타까운 일로 남아있고, 또한 일제하의 친일문제, 납북문제 등의 연유에서인지 기념물(詩碑 등)이 없는 상태이다.
첫댓글 이제는 나눠 마십시다요~~
ㅋㅋㅋ..그럴까요? 남성중창으로 할려고요
남성악보 있습니다~~
예 올려놓으신 그 악보로 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