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맹자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어림도 없는 소리다. 하늘은 황제였고 사람은 하늘을 우러러보는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民)이 곧 하늘(天)이다'는 말은 '홍익인간'과 함께 동양의 천부인권의 시발로 보고 있다.
서양에서는 계몽사상가들의 천부인권설을 영국의 명예혁명과 권리장전(1689년)에서 반영했으며 미국의 독립선언서(1776년)를 천부인권사상을 최초로 문서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존 로크의 계약이론을 바탕으로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이 독립선언서는,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하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의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이 진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 양도할 수 없는 천부인권 속에 인디언들의 생명의 자유가 있었는가, 혹여 흑인노예들의 행복 추구권이 있었겠는가.
어쨌거나 이렇게 시작된 천부인권은 사람을 사람일 수 있게 하는 기본 조건으로써 각국 헌법의 모태가 되어 민주주의의 성립 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
대한민국 헌법에도 이와 같은 천부인권은 나타나 있는데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가 있다. 그리고 제 14조에는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조항도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국민이면서도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장애인이다. 장애인이기에 살고 싶은 곳 아니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헌법에서 보장 한 거주·이전의 자유 즉 국민의 기본권마저 제한받고 있기 때문이다.
1984년 한 장애인은 거주 이전의 제한으로 인해 마음대로 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식당의 문턱이 너무 높아서 배가 고파도 밥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음을 한탄하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였다. 그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 사회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2001년 오이도역에서 장애인리프트 추락참사가 있었고, 2002년 발산역의 리프트 추락으로 장애인 참사가 있었으며, 2003년에는 송내역에서 장애인이 승강장에 추락하는 참사가 있었다.
잇따른 장애인들의 참사가 일어나자 장애인들은 이동권 투쟁에 나섰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장애인들이 목숨을 내걸고 이동하고 있지만 장애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이동권에 대해서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장애인이동권투쟁을위한연대회의(이하 장애인이동권연대)'에서는 '버스를 타자'라는 행사를 정기적으로 가지면서 장애인의 추락 참사에 대한 서울시장의 공개사과를 촉구하기 위해 중증장애인 이광섭씨가 선로 점거를 시도하였다. 이광섭씨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서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이다. 이에 김도현(장애인이동권연대 운영위원)씨가 도와주었는데 김도현씨만 구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2월 10일 이들에 대한 재판이 있었다. 사법부에서는 김도현씨에게는 징역 8개월, 박경석(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박경희(장애인이동권연대 회원) 벌금 70만원의 판결을 각각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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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다. 누구나 법을 어겼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박경희씨는 벌금 70만원이고, 박경석씨는 집행유예인데 김도현씨는 실형 8개월을 선고받은 것이다. 김도현씨에게 이렇게 실형이 내린 것은 집행유예기간이었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이 집행유예 역시 장애인의 인권과 관련된 에바다 사태에 연루된 것이다.
그렇다면 김도현씨에게 진짜 실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그가 비장애인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가 장애인이동권 투쟁 문제로 처음 구속되었을 당시에도 검찰은 '자기 결정권이 없는 장애인을 사주하여…'라는 이해하지 못할 이유를 내세워 장애인들을 분노케 했다.
이 땅에 장애인 복지가 시작 된 이래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수많은 투쟁이 있었고 현재 한국 장애인복지의 현황도 이들 투쟁의 산물이다. 10여년 전 장애인 1종 운전면허를 위한 투쟁 때에는 중증장애인들이 부산의 간선도로를 점거하기도 했고 과천 정부청사 앞에 드러눕기도 했다. 경찰이 겹겹으로 둘러싸기는 했지만 대화와 타협으로 자진 해산했다.
또 안산시의회 의원들이 장애인복지관 건립을 반대하는 바람에 안산시의회에 불을 지른 장애인도 있었으나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부산차량등록사업소 입구 계단을 망치로 깨부수기도 했는데 오히려 미안해하며 즉시 경사로를 설치해 주었다.
'맹인침사 합법화' 투쟁은 서울 부산 등 전국에서 참 많이도 했다. 그럴 때마다 비장애인 활동가는 물론이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참여했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시위에는 오히려 경찰이 안내자가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많은 투쟁과 시위에서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활동가들이 실형은 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김도현씨는 강도, 강간, 절도 등의 파렴치한도 아니고 요즘같이 흔해 빠진 불법자금을 받은 정치인도 아니다. 김도현씨의 죄명은 '집회 사회, 철로 무단 침입, 전철 방해'라고 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을 확보하고 헌법에 보장된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적이고 으뜸가는 법으로서 모든 하위 법령, 즉 법률·명령·규칙 등의 내용은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아니 되며, 대통령, 법률을 만드는 입법부(국회), 법률이 정한 권한과 기능에 따라 일을 행하는 행정부, 일반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사법부(법원) 등 모든 국가기관은 그들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당연히 헌법을 준수하여야 한다.'(헌법재판소 홈페이지에서 발췌)
사법부는 김도현씨를 판결함에 있어 과연 헌법을 준수하였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정작 실형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지 않고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을 시행하지 않는 정부와 서울특별시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장애인이동권연대 박경석 대표는 항소를 준비하면서 '장애인들의 투쟁을 무력화시키기 위함이 아니겠느냐'며 울분을 토로했다.
우리 사회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이다. 더구나 혼자서 이동할 수도 없는 장애인일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한편에서는 사랑과 나눔을 강조하면서 장애인의 권익을 위한 투쟁을 도와 준 비장애인 활동가에게 실형을 내린 것은 우리 사회를 동서, 남북으로 가르다 못해 이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까지 갈라놓으려는 처사는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