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목포에 대학생인 큰 딸이 내려왔다
방학동안 아빠의 갈비집에서 알바(?)를 하며 아빠를 돕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딸과 나는 한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우린 둘 다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편인데, 근처에 도서 대여점이 없다는 것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는것이다.
물론 서점이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긴 하지만,
딸과 나는 집에 놔두고 필요할때마다 꺼내 읽는 그런 전문서적같은 사유를 위한
책보다는 ....재미삼아 읽는 부담없는 소설이나 이야기 위주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이라,
가볍게 읽고 되돌려주는 그런 도서 대여점이 가까이 있었으면 싶었는데 없으니
아쉬움이 클 수밖에...
큰딸과 나는 매일오전이나 오후에 두시간정도 산책(살빼기 운동임..)을 하는데
새로운 산책길을 개척하는 중에 도서 대여점 하나를 찾고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손을 잡고 들러보았는데, 그 대여점에는 이미 우리가 읽은 책들만 소복해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과 나의 어깨는 볼품없이 축 처지고 말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훌륭한 담임 선생님을 만나 책읽기에 재미를 붙인 나는 늘 책읽기에 목말라했었다.
솔직히...책읽기보다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이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왜냐면 만화책을 주로 읽었으니깐...
언젠가 이야기 했듯 영화 보는것을 책읽기보다 더 좋아했으니...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용돈으로는 보고싶은 영화를 보기에도 부족한 형편이라
책을 사볼 엄두는 꿈에서도 내보질 못했고, 형이 읽고 둔 책을 읽다보니
우습게도 펄벅의 '대지' 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무 의미도 모르면서 읽은 기억도 난다.
<새소년>이란 월간 아동 잡지를 정기 구독하던 이모 집을 들릴 때면
과월호들을 보자기에 가득 싸서는 무거운 줄도 모르고 들고 왔었고,
빨간 장정의 50권 짜리 아동문고를 가지고 있던 친구 집에 가서는
그 친구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놀아주면서 책 하나를 빌리면 날 듯이 기뻤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2층엔 60여평의 도서실이 있었다.
도서실에 처음 갔던 그날의 감격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눈치 안 보고 공짜로 읽어도 되는 책들이 책장에 무진장 꽂혀있는 그곳은 바로 노다지였다.
한참을 입을 쩍 벌린 채 서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나는 책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읽고 싶은 책들을 점찍어 두기에 바빴는데, 책 하나를 끄집어낼 때마다 느껴지던
그 손 떨리는 흥분과 전율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다음날부터 그 도서실은 나의 도서실이 되었다.
수업이 파하기 무섭게 도서실로 올라갔고, 읽다만 책은 집으로 빌려와서 마저 읽었다.
학교가는 길이 행복하였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또한 무척이나 행복하였다.
그러나 중학교때의 도서실은 대개의 경우 3학년선배들의 공부하는 장소로 쓰여졌는데..
그런 선입관은 가끔 어떤 판단에 있어서 그릇된 오판을 하게 만들 때가 있다.
고등학교때도, 대학교때도 도서관은 학생들이 공부하는 곳이란 선입관에 익숙해져 있었다.
특히, 대학시절엔 새벽에 가지 않으면 자리를 맡아둘 수 없었기 때문에 학교 도서관의
자리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하였던가?
친구 자리까지 잡아 두느라 책가방을 올려둔 빈자리는 늘 시비의 대상이 되곤 했었다.
도서관은 책을 소장하고 그 소장한 책을 읽는 곳이란 생각은 그때 지워졌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다시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가 생겼을 때는 도서 대여점들이 속속 생겨나
책은 당연히 대여점에서 빌리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어제..아주 우연히 목포 중앙시장으로 장보러 갔다가 갈비집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목포에서는 제일 큰 목포공공 도서관을 발견하였다.
어찌 이런일이...도서 대여점이 근처에 없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공공도서관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그런 나의 잘못된 선입관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늘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딸과함께 그 도서관을 찾았다.
2층 열람실을 들어선 순간, 딸과 나의 입은 동시에 딱 벌어지고 말았다.
잘 정돈된 많은 책장들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과 책들...
먼저 정신을 수습한 딸이 책장들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자기가 읽고 싶던 책들을 찾아내곤
환성을 질렀고, 나는 입에 손가락을 대며 소리는 지르지 말라고 눈치를 주어야 했다.
딸아이의 얼굴은 오래 전 내가 꼭 그랬던 것처럼 노다지를 만난 바로 그 얼굴이었다.
우와..........
크게 뜬 눈, 반쯤 열린 입 그리고 부들부들 떨리는 손...
나는 그 옛날의 나를 가슴으로 느끼며 한동안 그 자리에 멍청히 선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회원증을 만들고 소설을 몇권을 대여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앞장 선 딸은 느리게 걷는 나를 재촉하느라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대여비는 없고, 한 번에 세 권까지, 대여기간은 일주일이다.
유료에다가 빌린 지 나흘 안에 갖다주어야 하는 대여점 조건에 비하면 얼마나 환상적인가...
나는 우리의 노다지밭에서 가져온 책 중에서 대여점에 비치되지 않아 읽지 못하던
최인호의 '海神' 1.2.3부를 읽고 있는 중이다.
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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