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입춘 수요일
북한작가 반디 소설집 《고발》 (4)
<지척만리> <복마전> <무대>
<지척만리>는 1993년 2월 작이다. 함경도 ㄷ군에서 광산노동자로 사는 명철이는 휴전선 가까이 소양강 가 고향마을에 사는 모친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세 번이나 받고도 직장에서 여행 휴가를 받지 못하고 괴로워하다가 친구를 만나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취중미몽 상태로 여행증도 없이 고향행 열차에 무임승차하게 됐다.
숨어숨어 운 좋게 고향역에 내려 역구내 울타리를 무사히 뛰어넘었다. 고향생각에 도취되어 걷다가 소양강 다릿목에 이르렀을 때 "섯!" 하는 소리가 명철의 고막을 찔렀다.
강 건너 고향마을 어머니를 눈앞에 두고, 지척만리, 명철이는 1992년 7월 2일부터 7월 24일까지 22일간 평안남도 군안전부 노동단련소에서 단련을 받고, 해골이 된 얼굴, 땟국물이 흐르는 옷주제를 한 중늙은이가 되어서 귀가했다.
우편통신원이 들이민 전보 한 장.
'모친 사망'
기계의 한 부품으로 빈틈없이 살아가는 명철이의 일상에 충격을 준 것은 '모친 위독 급래'이다. 직장에서 허가를 하고 여행증을 받아야 열차표를 살 수 있다. 그런데 소양강 다리 그 지방은 일 호 행사 예견으로 증명서를 제한하라는 비밀 지시가 내렸다.
명철이가 맨정신이라면 절대로 그런 무모한 짓을 안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설을 진행시키자면 과음시켜야 한다.
여행의 자유 문제는 다음 작품에 이어진다.
<복마전> 역시 고급중학교 역사선생으로 연공퇴직한 오 씨 할머니와 영감, 여섯 살짜리 손녀 세 사람이 겪은 여행고생담이다.
세 사람은 열차를 갈아타는 작은 모체역 대합실에 1호 행사로 붙잡힌 승객틀과 함께 궁둥이 들이밀 자리도 없이 빽빽하게 갇혔다. 임신한 딸의 산후 조리에 쓸 맷돼지열을 부탁한 동생네 집은 네 정거장 가면 있다. 하염없이 열차를 기다리기보다는 혼자 동생네 집으로 걸어가기로 했다. 대합실에 남은 영감과 손녀는 몇 시간 만에 온 열차를 향해 한꺼번에 몰려나가는 사람들에게 밟혀 손녀의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다.
엄한 1호 행사 검문소를 귀먹은 티를 내면서 용케 통과해서 15리 남짓한 길을 신작로 밖으로만 걸었다. 그런데 경적소리가 들려 소나무 숲으로 숨으려고 하다가 그만 덜컥 수령님 차를 만나게 되었다.
댓 발짝 앞에서 폭삭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는 감겨 있던 태엽이 풀리듯이 줄줄이 말이 새어 나왔다.
"어버이 수령님의 만수무강을 삼가 축원합니다."
"어, 감사합니다."
덕분에 검은 승용차를 타고 동생네 집에 가고, 딸은 도시 병원에서 해산과 산후조리를 했다.
"그래서 저는 신작로에 멎어선 승용차 곁으로 이끌려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승용차 옆에 어버이 수령님께서...."
"이렇게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저를 끝내 승용차에 태워주시고서야 길을 떠나셨습니다."
며칠을 방송마다 오 씨 할머니의 육성이 울려 나왔다.
이 소설은 1995년 작이다. 어버이 수령님 서거하신 후다. 온 조선사람들이 '만수무강'을 빌었지만 아흔고개를 넘지 못했다. 북풍한설 휘몰아치는 황량한 만주의 산길과 들길을 걸을 적의 심정과 1호 행사로 인민들의 통행을 차단하고 유쾌하게 달릴 적의 심정 비교는 어떠할까.
우리 겨레의 속담에 "개구리가 올챙이 때를 모른다"가 있다. 젊어서 품은 장한 뜻과 태도를 중년을 지나 노년이 되어도 고이 간직하는 사람이 옳은 인물이 아닐까.
여행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니 모든 생물의 본능이다. 철새들은 수천리를, 바다고기들과 고래, 거북이들은 수천, 수만 리를 여행한다.
인간의 여행은 자타 모두의 견문과 친교를 넓히고 지식과 정보, 문명과 문화를 전파한다. 온갖 물자들이 인간과 함께 여행한다. 반대로 여행을 통제하면 인간과 문화가 고립된다.
자본주의 사회가 생활과 문화, 경제 등 모든 면에서 발달하는 까닭은 여행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무대>는 1995년 1월 작이다.
연합기업소 주재원인 홍영표는 아들 경훈이 때문에 시 보위부장으로부터 따가운 경고를 받았다.
경훈이는 전방에서 '자유화' 대북방송을 들은 죄로 크게 당할 것을 아버지의 직위 덕분에 군부대 보위부장의 배려로 생활제대를 했다. 그런데도 정신을 안 차리고 좀 자유스러워서 내내 아버지의 걱정꺼리다.
그런데 경훈이가 "그래 그들의 눈물이 진실이란 말입니까. 예? 백성들을 이렇게 지어낸 눈물까지 흘릴 줄 아는 명배우들로 만들어버린 이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말입니다." 라는 말을 하자, "닥치지 못해? 이 어리석은 반동놈의 새끼야!"
"쏘세요."
총알 재워지는 소리가 찰칵했다.
순간, 공장에서 급한 전화가 와 아버지가 뛰어나갔다.
공원을 갈등하는 중년의 사내.
땅!
죽은 자는 홍영표다.
클라이막스까지는 멋진데 결말이 다분히 작위적이다.
검은 돌 같은 성격의 홍영표가 그깟 갈등으로 정신이 혼미해져서 재워진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들이댄다는 상황 설정이 영 허술하다.
주재원, 즉 기관 담당 보안대원은 북한사회의 중심축이다. 그들의 정신이 소설 속과 비슷하다면 북한이 벌써 몇 번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넌픽션 소설적 구성이지만, 몽땅 가설은 아닐 테니, 1995년경의 그 축들의 극소수에게 무언가 갈등이 누적되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후 25년 한 세대가 지난 2021년에 그들 축들의 의식구조와 상태는 여하일까.
경훈이 말대로 1990년대를 사는 사람들은 명배우였다면, 2021년을 사는 사람들은 주체일까 객체일까. 그런데 이만갑 프로에 나와 언행하는 탈북자들을 보면 남한사람들과 전혀 구별이 안 된다. 속도 멀끔하고 자기 생각이 뚜렷하다.
사람이 동물이면서 다른 동물들과 크게 차이나는 점은 학습능력과 자기생각을 가진 것이다. 열살 정도만 되면 눈치가 빠르고 거짓말을 할 줄 안다. 차렷자세를 확실히 취해야 할 때와 장소를 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헤헤 풀어진다. 인간의 두뇌를 아무리 세뇌해도,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술술 풀어진다.
북한소설엔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흔하다. 담배를 피우는 심리는 초조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부부싸움을 된통하고서 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후우~하면 문득 아내가 불쌍하다는 생각, 내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지구 위 어느 나라 사람이나 담배 피우는 심리는 심심초가 아니라 해소초가 아닐까?
북한작가 반디 소설집 《고발》(5)
<빨간 버섯》
1993년 7월 작.
도일보사 특파기자 허윤모가 사는 ㄴ시 사람들은 시당위원회 청사를 두고 '벽돌집'이라 부른다.
어느날 깊은 산중 원료기지에서 일하는 장공장 기사장 고인식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죄목은 원료 공급을 태만하게 하여 장 생산에 차질이 생겨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인식은 3년 전에 허윤모가 훌륭한 기사장이라고 도일보에 대서특필한 사람이다.
평양에서 경공업 위윈회의 어느 한 기술 부서를 책임지고 있었고 생활도 넉넉하게 하던 고인식이는 처남이 월남한 것으로 판명되면서 ㄴ시로 '혁명화' 되어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장공장 기사장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또한 공장 기술지도를 그냥 하면서 당시 당적으로 제기된 원료기지 건설을 책임지고 시내에서 100리 먼 산중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기지원들과 힘을 합하여 수십여 정보의 원료기지를 조성해냈다. 장공장도 잘 돌아가고.
그런데 근년에 들어 된장 공급이 부실해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비등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날로 긴장해지는 국가 식량 사정으로 위에서 받던 원재료 비중이 거의 잘린 데다 해마다 빈번해지는 폭우 피해로 원료기지 상당한 면적을 유실당해버리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일이 묘하게 되느라고 교체되어 온 새 식모가 빨간 독버섯을 따나 산채볶음에 섞은 탓에 뚱뚱한 식모가 죽는 사고가 일어났다.
주민들의 원성이 비등하여 두 번씩이나 도당에 불려갔던 빨간벽돌집 책임비서는 쏙닥질을 해서 농장 사료 알곡을 끌어올려 장공장 발효 탱크에 집어넣고는, 잘못은 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잘못하는 일부 일꾼들 속에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고인식을 공설운동장 공개재판에 세웠다.
"저기...저기에 아직두 있구나! 여보시오. 그 빨간버섯을 뽑아버리고 가시오. 무서운 겁니다.그게! 여보시오... ."
군중이 다시 웅성거렸다.
"머리가 돌았어."
"빨간 버섯이랬지? 무슨 소릴까?"
대강의 줄거리.
그런데 배우들이 역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해서일까, 결말에서 '고인식의 백설 같던 넋은 이제야 이 땅에 뿌리박힌 독버섯을 알아보고 독재와 회유와 기만과 억압으로 얼룩진 그것을 뽑아보려 필사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라며 작가가 막 뒤에서 튀어 나온다.
분을 아직 삭히지 못 한 반디는 무대에서 계속 외친다.
"시당 청사-빨간 버섯,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들이 저 독소에 희생되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 사자머리 마도로스 파이프가 지껄였다던 구라파의 붉은 유령이 이 땅에 뿌린 것이 인간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저 빨간 버섯의 씨앗 따위였단 말인가!"
"저 빨간 버섯, 저 독버섯을 뽑아버려라. 이 땅에서, 아니 지구 위에서 영영!"
감독이 뒤막을 제치고 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연극이 민망해져 버렸지만, 그래도 고인식과 허윤모 등 배우들이 열연을 했다. 이 소설집의 제목이 '고발'인데, '빨간 버섯'이면 더 어필하지 않을까?
허윤모는 기자로서 독자의 감동을 일으킬 수 있는 기사꺼리를 위해 백리 산중을 찾는 의욕이 충만하고, 고인식은 맡은 임무에 정성과 노력을 다하는 건실한 일꾼이다. 그들은 북한사회가 그만큼 발전하도록 한 중심일꾼들이다.
미국이 가하는 봉쇄정책 때문이지만, 부족한 경지면적과 경제 부진, 자연재해는 식량난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장애이다. 그래도 한 지역을 담당한 책임비서라면 성실하고 근면한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ㄴ시 책임비서'는 면책을 위해 고인식을 희생양으로 삼는다. 뿐만아니라 하급여성들을 성노리개로 삼고. 그의 늙은 마누라도 색기를 풍기며 정윤모를 유혹한다. 빨간 벽돌집에 사는 높은 분들이 보이는 행태는 봉건조선 말기의 탐관오리 그대로이디. 이런 자들이 득세하는 사회는 미래가 불안하다.
작년 올해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관료주의를 질타하고 인민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소설가 반디가 소설집 《고발》에서 말하는 핵심이다.
《고발》에 등장하는 중요인물들은 모두 북한사회의 유능한 일꾼들이다. 북한으로는 충실한 애국자들이다. 그런데 90년대 이후부터 그들은 회의하고 좌절한다. 삶의 뿌리가 위태로울 정도로 휘청거린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남한의 한 독자로서, 북한에 'ㄴ시 책임비서'와 같은 자가 그득하여 마침내 북한이 붕괴하기를 바랄까? 아니다. 북한에 옳고 좋은 목민관들이 그득하여 사람들 모두가 자기 직분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한반도에 사는 모든사람들은 행복해야 한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공산주의를 생각할 때, 악마처럼 인간의 행복을 파멸시키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인민들의 행복을 굳히는 방법으로 공산주의가 가장 효과가 확실하다고 믿었다.
공산주의에 부족한 점 중에 하나가 '서정의 결핍'이 아닐까? '혁명서정'이란 말은 사용하는데 '공산주의 서정'이란 언어는 없다.
가난하고 무식해서 살길을 찾지 못해 착취당하는 무산계층을 위해 일어선 사상 체계가 공산주의라면, 그것을 '공산주의 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무산계급을 위한 공산주의 서정'이란 한계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양하다. 온갖 생각과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물망세상이다. 무산계급을 위한 서정도 좋지만, 선량한 생각과 성실한 태도로 자기 직업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모든사람들을 위한 '서정'은 없을까?
'서정'은 인간에게만 있고, 그것은 인간 생명을 어여삐 여기는 휴머니즘에 뿌리를 둔다.
북한소설가 반디, 본명은 무엇이고 어떤 사람일까. 그의 고발이 30년 세월이 지나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 금수강산만이 키울 수 있는 좋은 '공산주의 서정'이 싹터 잘 자라야 하지 않겠는가.
좋은 소설, 소설집을 만나 2021년 1월 한 달 동안 즐거웠다. 기약할 수 없는 미래 세월이지만, 언제 어떻게 만날 인연이 있으면, 안동소주 한 병 곱게 올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