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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5-27)
할렐루야! 지난 한 주일 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열대야 때문에 잠을 못 이루신 분들도 계실텐데,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과 사랑과 후원으로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잘 다녀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구름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심을 느끼면서, 부족함이 없이 넉넉함으로, 2박 3일 동안의 모든 여정을 아무 탈 없이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모든 일정이 계획한 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첫째날 일정 가운데, 고씨 동굴은 이미 예약자들이 줄을 서 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일에는 잘 찾지 않는 곳인데, 방학이라 세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포기하고, 다음 코스로 이동했습니다.
작년 여름휴가 때, 아이들과 함께 안동하회마을을 방문하려고 갔을 때에도,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 방문객들이 엄청나게 많아, 입구까지 가 보지도 못하고 돌아서 나와야 했는데, 이번 고씨 동굴도 그리했습니다.
매표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왜 입장을 제한하느냐, 표 팔면 되지 않느냐?”라고 따질 때, “동굴 속 지나가는 길목이 좁아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입장 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첫날밤은 예정대로 태백산 민박촌에서 보냈는데, 잠을 자기 전에, 추워서, 보일러를 가동하여 방을 따뜻하게 한 다음에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태백석탄박물관을 구경하고, 태백산에 잠깐 올라갔는데, 아이들에게 계곡에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가 보라고 했더니, 물이 너무 추워서, 5분을 담그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오전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여서, 걸어 올라가야 할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를 보는 것은 포기하고,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을 구경한 다음, 곧장 동해안으로 향했습니다. 삼척시에 있는 맹방 해변으로 갔는데, 텐트를 칠 때에는 조금 비가 내렸지만,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고 나서는 비가 전혀 내리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면, 텐트를 철수하려고 했는데, 비가 내리지 않아, 텐트에서 잠을 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잠을 잘 때에는 밤새도록 비가 내렸습니다. 비 소리를 들으면서 텐트에서 잠을 잤는데, 잠은 너무나 달콤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들은 일어나자마자, 바다 속에 들어가겠다고 야단이었습니다. 해변에서 아침을 먹은 후,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파도가 넘실거리면서, 밀려왔지만, 그 파도 타는 것에 재미를 붙인 아이들은 너무나도 신났습니다. 파도 타는 아이들을 지켜보면서, 틈틈이 조개를 잡았습니다.
2박 3일 동안, 제천, 영월, 태백, 삼척, 강릉을 지나는 육신적으로는 힘든 여정이었지만, 심적으로는 아주 평안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 땅에 살아가면서 염려하며 살아가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우리에게 향하십니다. 우리에게 어디 불편한 것은 없는가 살피시기 위함입니다. 얼마나 자상한지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그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이 시간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온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안이 가득 임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사야 9:6절 말씀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아멘.
예수님은 이 땅에 평강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과 화목하십니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29:1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아멘.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실 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니까?
시편 119:165절 말씀입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아멘.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합니까? 평안이 없습니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 때문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면, 장애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새벽에 살펴본 말씀이 시편 19:7-10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영혼을 소성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살려주기 때문입니다.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우리의 어두운 눈을 밝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오후에 살펴본 말씀이 베드로전서 2:1-10절 말씀인데, 9절 말씀 가운데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
어두운데 있으면 장애물이 있어도 잘 구분하지 못하고 넘어지고 맙니다. 그러나 환한 빛 가운데 들어가 있으면, 아무리 큰 바위와 장애물이 있다 할지라도, 쉽게 볼 수 있어서,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십니까?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을 사십니까? 그렇다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씀입니다.
빌립보서 4:6-7절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염려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 앞에 무릎 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기도할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근심하지 마십시오. 방황하지도 마십시오.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7:7-8절 말씀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아멘.
여러분! 여러분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악한 자라고 할지라도, 자식이 달라 하면,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압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걱정하거나, 염려하거나, 방황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기도회를 시작하기 전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찬송가 183장 가사가 생각났습니다.
“빈들에 마른풀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이 약속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반가운 빗소리 들려 산천이 춤을 추네 봄비로 내리는 성령 내게도 주옵소서.
철따라 우로를 내려 초목이 무성하니 갈급한 내 심령 위에 성령을 부으소서.
참되신 사랑의 언약 어길 수 있사오랴 오늘에 흡족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후렴 :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생명 주옵소서.”
내 영혼을 늘 시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내 가슴 속으로 밀려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뭘까?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여러분!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평상시와 별 차이없이, 재미없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동안에,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이것을 알려 주려고, 미리 준비시켜 주셨구나?”
참으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준비하여 주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을 때, 우리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나 평안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번에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준비하면서, 처음에는 염려하고 걱정하였습니다.
연합수련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재정 문제였습니다. 한 마디로 돈 문제였습니다.
“돈이 있는가? 여유있게 쓸 수 있는 재정이 있는가? 아이들에게 투자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가 있는가?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데, 돈이 없어서 이번 교회학교 여름행사는 못한다. 또 그것은 아닌데...”
솔직히 돈 문제 때문에,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할까말까 고민하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돈이 있으면,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고, 넉넉하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는데, 교회 재정의 여유가 없다 보니, 할까말까로 고민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 주보에 교회학교 여름행사를 알리면서, 날짜도 정하지 않고, 장소도 정하지 않고, 그냥, “교회학교 여름행사를 하려고 합니다만, 아직 날짜를 정하지를 못했습니다. 좋은 날짜와 프로그램을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라고 광고하고,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 외부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십일조가 들어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신호이다.”
그래서 자신있게 교회학교 연합수련회 날짜를 선포하고, 2박 3일의 일정표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여러분에게는 찬조금을 하시라고 선포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라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리하여, 학생들이 낸 회비와 여러분이 낸 찬조금으로, 충분히 쓰고도 남아, 그 나머지는 다시 하나님께 감사헌금으로 바쳤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십일조는 재정적으로 여유가 없는 저의 마음을 붙들어주고, 위로해주고, 힘을 주는 메시지였습니다.
“부족하냐? 걱정되냐? 내가 채워주면 되지 않니? 나의 일을 하라. 주의 일을 하라. 염려하지 말거라. 내게 맡겨라”
그리고 연합수련회를 갔다 왔더니, 다시 외부에서, 동일한 사람을 통하여, 십일조가 또 들어왔습니다.
수련회 가기 전에 보내주었던 십일조도, 하나 건드리지 않았는데, 다시 하나님께서 재정적으로 넉넉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이번 교회학교 연합수련회, 2박 3일 동안 지출되었던 액수보다, 그분 한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이 채워주신 물질적인 축복이 더 큽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분 한 사람이 보내주신 십일조로, 이번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처음 십일조를 받았을 때, 그것은 하나님의 신호였습니다.
“외부의 재정적인 도움을 받아, 교회학교 여름행사를 간신히 진행한다. 이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다. 우리 스스로 하여야 한다. 우리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우리들이 직접 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했습니다.
“나를 못 믿느냐? 나를 믿으라. 내 일을 하라. 내게 맡겨라. 너의 염려, 너의 걱정, 너의 계획, 너의 나아가는 길을 온전히 내게 맡겨라. 내가 책임져 주마. 내가 도와주마. 내가 이루어주마.”
처음에는 당일코스 아니면, 1박 2일 정도, 잠깐 어디 다녀오는 정도로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최소한의 경비를 들일 수 있는 곳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호를 받고는 정신이 반짝 들었습니다.
“믿습니다. 저의 믿음 없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당일코스도 아니요, 1박 2일도 아닌, 2박 3일의 일정으로 조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라고 하는데, 한 마디로, 처음 생각보다 더 크게 일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자신있게,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위하여, 찬조금을 하라고 선포했습니다. 외부에서 들어온 십일조 가지고, 당일코스나, 1박 2일 일정은 간단하게 치를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들어, 2박 3일로 일정을 늘리고, 여러분의 협조를 구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도움이 아닌, 우리 힘으로 충분히 할 수 있음을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두려운 마음이 아니요, 걱정스러운 마음이 아닌 평안의 마음을 하나님이 저에게 주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번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는 우리 힘으로 충분히 하고 남았습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과 사랑과 애정과 물질적인 후원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이번 교회학교 연합수련회를 은혜 가운데, 평안한 가운데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복이 되십시오. 복에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처음에는 염려하고, 걱정하고, 고민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신호를 받고는 정신이 반짝 들었습니다.
“이것은 염려할 것이 아니다. 걱정할 것이 아니다.”
7월에 들어서서, 주일에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들이 무엇입니까? 둘째 주일에, 하늘 축복을 받는 비결,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였고, 셋째 주일에는 아론의 축복권에 대하여, 그리고 넷째 주에는 하나님의 지켜주심에 대하여, 다섯째 주일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지난 한달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지켜주심과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선포한 말씀대로 하나 하나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받습니다.
그분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정을 가지고, 우리 교회에 십일조를 보내주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그분을 통하여, 우물쭈물하고 있는 목회자의 마음을 확 바꾸어 주셨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을 누리게 해 주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요한복음 16:32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아멘.
그리고 나서 33절에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녔던 제자들은 두려웠을 것입니다. 스승인 예수님이 자기들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앞으로 어떻게 하나”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 주님이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무슨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누구의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의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누렸던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평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임마누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비록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담대하게 세상을 이기며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8:20절 말씀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아멘.
세상 끝날까지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기에, 우리가 누리는 평안은 세상 끝날까지 계속되는 평안입니다.
염려거리가 없어서 평안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염려거리가 셀 수 없이 많아도 평안합니다.
걱정거리가 없어서 평안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밤새워 걱정할 거리가 있다 할지라도 평안합니다.
다치지 않아서 평안한 것입니까? 늘 건강하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까?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에 평안한 것입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어서 평안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없다 할지라도, 그냥 마음이 평안합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평안합니다. 설령 병 들었다 할지라도 평안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가운데 27절 말씀을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하나님의 말씀 안에 해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평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평안합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예수님이 육신적으로 살아 계셨을 때에는 함께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해 주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예수님이 승천하신 다음에는 성령님께서 오셔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가르쳐주고, 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여기 저기에 있는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문제 풀 때, 해답지에 답이 있는 것처럼, 인용할 성경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것이 없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때그때 떠오르는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님께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전하는 이 말씀들은, 오늘 새벽기도회 끝나고, 다시 책상에 앉아 생각나는 것을, 다시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읽으면서, 어떤 느낌이 옵니까? 물동이에 가득 들어 있는 물을 머리 위에 확 쏟아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동이에 가득 들어 있는 물을,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쏟아 붓는다면, 물을 안 맞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는데, 그렇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가슴 속으로 확 밀려오는 것입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줄까 말까? 할까 말까?”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확실하게, 분명하게,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겠다는 선포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평안을 받든지 말든지, 무조건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받는 사람은 그 평안을 받아, 평안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받지 않는 사람은 평안을 맛보지 못하고 언제나, 두려움과 근심과 염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주고도 다시 빼앗을 때가 많습니다. 선심 쓰듯 엄청나게 주었다가도, 다시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빼앗아갑니다. 전에 그만큼 주었으니까, 그에 합당한 것을 내어 놓으라 할 때가 많습니다. 평안이 아니라, 우환이죠. 어쩌면 받는 것 자체가 훗날 더 큰 우환을 떠 안게 되는 것입니다. 도움 받는 것 자체가 훗날 더 큰 짐이 됩니다. 도움받앗다는 사실 때문에 평안이 없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 14:1절에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마태복음 6:25-3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왜 염려합니까? 예수님은 단 한마디로 표현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들아”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 14:1)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니까? 믿는다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제사장을 통하여, 목회자를 통하여, 여러분을 늘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성자 예수님은 직접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성령 하나님은 이러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성자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 주셔서,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 한 가운데에서 환난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고, 질병으로 고생하고, 여러 가지 문제로 염려할 거리가 많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기억함으로 늘 평안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복 주시고,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 주시고, 평강 주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