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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는 길 출발일 5월 18일은 결혼 40주년 되는 날이다. 미리부터 준비한 카미노라서 차분하게 한술 뜨고 길을 나섰다. 실비가 뿌렸다. 40년 전 결혼식 날에도 아침에 비가 내렸는데 만나는 사람들 마다 ‘비오면 잘 산다는데…….’ ‘장가가려고 엄청 기다렸나 베’ 봄 가뭄 끝에 반가운 비를 저마다 좋게 말하던 게 생각난다.
난 재직 시에도 행사 때에 비가 오면 속으로 ‘내가 뱀띠라서 비를 몰고 다녀’ 이렇게 중얼 거리고 순하게 받아 들였었는데 이 건 어머님께서 나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이다. 버스에서의 단잠을 깨니 인천 공항 진입하려는 버스는 부지런히 와이퍼 두 팔을 저어 빗물을 닦아 내린다. 멀리 물안개 같은 것도 보였다. 약간은 쌀쌀했다.
버스에 내리니 환한 형미 얼굴과 웃음 가득한 채원이가 보였다. ‘나오지 말라고 했는데.....’ 상체가 반듯한 홍서방이 눈방울 초롱초롱한 신화 뒤 쫒기에 여념 없다. 한 식당에 들어가 함께 늦은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비행기에 오르려는데 신화가 대성통곡을 한다. 아마도 저도 함께 데려 가지 않음에 울음보가 터진 듯. 이젠 눈에 익숙한 일본 공항은 설렘도 없이 그 저 무덤덤하다. 조금 배운 일본말을 지껄이고 싶은데........아내의 눈치를 본다. 비행기 표 값에 포함된 ‘닛코’ 호텔은 도착층에서 나와 길 건너 33번 승강장. 비행 승무원들도 들락거리는데 깨끗하고 방의 꾸밈이 좋다.
스카이라운지에 있는 스시 전문 일식 식당은 값에 입이 딱 벌어지지만 갖고 있던 엔화 다 써 버릴 양으로 주문했는데 기가 막히게 맛있었고 각 스시 마다 맛이 달라 미식가 흉내를 내기도 했다. 어떤 건 너무 매워 눈물을 찔끔 거리기도 했는데 날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아내는 별로 인 듯. 양이 작고 깔끔한 일식은 내가 좋아하는 메뉴이다. 맥주 한 잔과 기분 좋은 저녁이다.
공항 매점에서 잘 만들어진 도시락을 사거나 호텔 앞 매점을 이용하면 식사 요금은 확 줄일 수도 있다. 아침 뷔페도 좋았다. 이런 스타일은 아내가 즐긴다. -귀국- 36일 순례, 7일 관광 마무리를 쉐라톤 호텔에서 점을 찍었다. 체크인 시간이 청소가 안 됐다고 해서 2시간 가까이 지연되었다. 기다리면서 보니 고속 열차도 밑에 보이고 어떻게 생긴걸까 궁금증이 났다.
미라가 잡아 준 쉐라톤 호텔은 F터미널 출발 층과 같은 층으로 D 터미널 사이에 있고 아래로는 RER, TGV 있고 길 건너에는 비행기가 오르내리는데 잡소리 하나, 미동도 느껴 지지 않는 희한한 설계의 호텔이다. 방은 로비에서 1층 오르지만 ibis 등 호텔 셔틀 버스 타는 곳에 나가 보니 5층 이었다. 호텔 현관을 나오면 고속으로 내 닿는 TGV 소리가 요란한데 방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지루해 하는 아내를 달랠 겸 호텔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내도 좋아하는 눈치인데 체크인 시간 더딘 게 불만. 저가 항공인 뷰엘링은 보잉사 비행기가 아닌 '유로 버스' 300 시리즈로 180명 탑승. 앞 자리 3번 줄인데 아주 피곤한 비행.아내가 비행기 멀미한 셈. 2006년 파리-런던 경우도 컨디션 안 좋은 걸 생각하면 보잉사 보다 뒤지는 유로 에어버스 같다.
방에 들어와 자리잡고 아내 눕는 걸 보고 밖으로 나왔다. 밖이라고 해야 내내 공항 내 같은 건물들이다. D 터미널에서 드디어 겉 모습을 보았다. 높지 않은 건물에 배처럼 디자인되었다.
침대도 좋지만 이부자리가 아주 좋다. 편히 쉬고도 하룻밤만 묵은 게 섭섭해서인지 여러 차례 뒤 돌아 보았다. 키가 큰 흑인 여직원은 목소리도 부드러울 뿐 아니라 상냥함에 친절하고 잔잔한 미소로 특급 매니져 같다. 짐 들고 나오는 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이렇게 좋은 곳 찾은 미라는 눈이 커서 그런지 시력이 밝긴 밝은가 잘 찾았다. 미라 공이 크다.당초엔 ibis 호텔을 지목했는데.... 호텔 창문으로 ibis 셔틀 버스는 많이 목격했으니 2가지 모두 충족한 셈? - 7/1 파리 CDG 17:45 출발.
일본까지 줄 곧 밝은 창공을 날았기 때문에 비행 안전 최고 코스가 아닐까? 출발 전 F 터미널 식당에서 육회 메뉴를 먹었다. 어제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 걸 먹어서 오늘 먹어 봤는데 맛이 그만이다. 우리나라 육회 보다 훨씬 부드럽고 맛깔스럽다. 어쩌면 계란 노른자 올려놓는 것 까지 우리와 같을까? 20유로 이지만 비싸다는 생각이 안 든다. 그런데 물 한 병이나 맥주 한 컵은 4.7유로. 이 건 혀 내 둘러야 할 처지.
CDG 공항이 복잡한지 탑승은 버스로 이동. 11시간 날라 날짜가 바뀌어 7/2 12:45 정시에 동경 나리따 공항 도착. 파리에서 출발은 1시간이나 늦었었는데...... 일찍 가는 비행기표 달라고 애교 떨었으나 그 나마 자리는 맨 꽁지 쪽 오히려 조용해 좋다. 일본-한국 간 승객이 엄청 많은 것 같다.
본관 동에 나가서 아내는 화장품 고른 후 식당에서 나는 밥 대신 라면, 아내는 우동을 먹었다. 아내 입이 엄청나게 즐거워 보인다. 값은 1,000엔 대. 10,000원이 넘는 셈.
5시간을 기다린 비행기는 밝았던 해를 버리고 어둑 무렵 인천 공항에 하강하는가 싶더니 다시 용을 쓰면서 하늘에 올라 20분도 훨씬 넘은 시간을 하늘에 버린 채 다시 착륙시도, 한 쪽 바퀴만 닿았는지 좌우로 여러 차례 기우뚱 거리다가 멈췄다. 방정맞고 요상한 생각이 들었다. JAL 비행기는 이제껏 착륙 등 사고가 없었고 파리-동경 오 갈 때도 아주 좋았는데 이번에 빵점이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이 좌루룩 머릿속을 돌아 나간다. 휴 하고 부지런히 걸어 나왔다. ‘어디 다녀오세요?’ 선두에 서서 나오는 나에게 묻는다. 늙은이가 어울리지 않는 배낭을 멘 게 낯설었는지 세관 여직원 말에 ‘순례…….’라고 말하니 ‘안녕히 가세요.’
채원이 신화가 쪼르르 달려 나온다. 형미가 반가워한다. 매달리는 채원이 신화, 하, 고 놈들 때문에 피로가 싸악 가신다. 이 늙은이들을 누가 저렇게 티 없이 반겨주랴. 늙으면 오가기 어려운 처지 아닌가……. 딸 집 찾아 가다가 할미꽃으로 변한 동화도 생각나고 주위에서 자식들에게 홀대 받는 모습도 연상되어서 그런지 더 반가웠다. 현성이, 현욱이 그 녀석들을 아내가 몹시 보고 싶어 했는데......... 영환이는 저 혼자, 회사에서 곧 바로 왔단다.
고녀셕들, 스냅 찍으려 사진기 꺼냈으나 잠간의 로딩 시간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 요게 디지털의 한계.필름 같았으면 여러방 터졌을 시간인데...
일본 공항에서 먹고 싶은 쌀밥을 한국에서 먹는다고 미루고 일본 라면 먹었는데 늦은 시각이라서 식당들은 모두 문을 닫아 허탕.
비행기 멀미 등 여독에 힘들어 하는 아내를 달래며 10:40 대전행 버스에 올랐다. 3시간 반이나 걸리던 버스는 어둠과 빗길을 헤치고 마구 달려 한 시간이나 단축해 닿았다. 서울에서 안자길 잘했다. 집에 오자마자 아내가 만들어 준 누룽지 끓인 것과 김치는 환상이다. 이 보다 더 맛있는 게 있으랴. 잠자리에 누우니 참 좋다. 삐거덕 거리고 냄새와 함께 코 골음에 낯설었던 순례자 숙소, 여기가 천국이 아니련가 싶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 무념의 상태. 이 게 평화 인가 ?
순례 마친 후 무엇이 변해 있을까? 순례 전과는 무엔가 달라져야 할 듯도 싶은데... 나를 좀 더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되길 순례길 에서 깨치려 애 쓰던 걸 생각하며 깊은 잠에 들었다.
[동경 근처 일본 상공]
[파리 근교의 지상, 우리 농촌도 기계화 되길 비행기 탈 때 마다 매번 소원한다]
작성자 유재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