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과 아파트 경비원의 공통점은?
하나, 제복을 입는다. 둘, 집을 지킨다. 셋, 24시간 맞교대로 일한다.
소방관 이야기에 불쑥 아파트 경비원을 끌어들인 건, 오늘 한국이란 나라에서 24시간을 일하도록 공식적으로 승인(?)된 직종이 바로 경비원과 소방관뿐이기 때문이다. 다만 같은 24시간 맞교대라도 경비원이 IMF 위기에 따른 긴급 구조조정의 결과라면, 소방관은 반백 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품격(?) 있는 격일제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다. 그리고 사실 소방관들은 경비원보다 조금 더 많이 일하고 있다. 24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 24시간 대기하는 것도 모자라, 심심하면 불려나와 잔업을 처리해야 하는 소방관의 24시+ α’를 뒤쫓아 봤다.
3월26일 로이터와 AFP 등 외신들이 몇 장의 사진을 타전해 왔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사진은 25일(현지시간) 프랑스 곳곳에서 벌어진 소방관들의 격렬한 시위현장을 담고 있었다. 이들은 하얀 연기 속에서 경찰과 대치하며 어딘가를 향해 뛰기도 하고, 프랑스 국기로 덮인 관을 들고 행진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불 타는 장작더미 옆에 쓰러져 있거나, 아예 불 속에 뛰어든 소방관 복장의 마네킹도 섬뜩하게 다가왔다.
이날 시위에 참석한 수천 명의 프랑스 소방관들은 “직업상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우는 이에 따르지 못하고 있다”며 ‘근무조건 개선’과 ‘조기퇴직 보장’을 요구했다고 한다. 한 장의 사진과 그에 딸린 몇 줄의 설명, 이것은 “아! 소방관도 시위를 할 수 있구나”라는 짧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도대체 프랑스의 소방관들은 얼마나 일하기에 그런 주장을 펼치며 집단행동을 불사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사실 부질없다.
프랑스 소방관들은 법이 정한 주 35시간 노동제를 기본으로 하는 것은 물론, 직업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최대 45시간을 넘기지 않도록 되어 있다. 2002년 11월 인금인상을 요구하며 장기간 파업을 이끌었던 영국의 소방관 노조는 자신들이 프랑스보다 더한 주 42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고 괴로워했다. 이들은 소방관을 하나의 직업으로 존중할 뿐, 최소한 ‘소방관이기 때문엷 대가 없는 희생과 봉사를 치러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노동강도’에 시달리는 한국의 소방관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참고로 한국의 소방관은 한 주에 무려 84시간을 일하고 있다.
하기사 소방방재청의 신설을 앞두고 관련부처 장관이 나서서 “화물연대 파업과 같은 국가적인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라고 대놓고 말하는 나라에서, 소방관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집단행동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소방방재청 신설만 해도, 거듭한 대형화재와 자연재해로 재난관리의 체계적인 개편 요구가 높아지자 미적지근했던 논란이 급진전한 결과가 아닌가. 애초부터 소방관의 처우개선 문제는 논란의 대상도 아니었던 것을. 일각에서 소방방재청의 설치가 ‘행자부 공무원의 밥그릇 늘리기 아니냐’는 비아냥이 들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의 소방관들은 바다 건너 ‘그들’의 단체행동보다 당장의 소방방재청 신설에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근무형태만 개선돼도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 일선의 목소리다.
한국 소방관이 겪는 어려움은 주로 ‘인력’ 문제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이 없어서 남들 다하는 3교대도 못하고, 사람이 없어서 정화조 물을 푸다 불 끄러 달려 나가야 하고, 사람이 없어서 비번인 날도 온전히 쉴 수가 없다. 하지만 주 5일제 실시를 맞아 한 달에 한 번 주어진 순번휴무조차 완전하게 보장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그저 ‘인력’문제려니 하고 넘어가기엔 그 변명의 정도가 너무 가볍고 궁색하다. 이 방대한 노동과 통제의 악순환이 순전히 인력 부족 때문이란 말인가.
“불로 뛰어드는 게 제 일인걸요”
전국이 초여름 날씨를 보이며 올 들어 최고기온을 기록했다는 4월 9일, 서해안 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인천 남부 서창 소방파출소를 찾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소방파출소를 휘둘러 흐르고 있는 장수천과 노란 개나리가 그럴싸한 봄의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출입문에 마주서자 ‘휴일 없는 봉사소방’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어디는 주 35시간을 일하고도 “대우가 별로”라며 시위다 뭐다 난리인데, 한국은 아직도 ‘휴일 없다’와 ‘봉사’를 ‘소방’의 수식어로 지정하는 데 별 거리낌이 없는 모양이다. 그 뒤에 숨겨진 소방관의 ‘희생’을 ‘가장 숭고한 행정 서비스’로 아름답게 포장하는 것은 물론 언론의 몫이다.
이곳 소방파출소는 총 19명의 소방관이 근방 8.21㎢, 7개 동, 2만6백91가구, 총 6만4천4백19명을 책임지고 있었다. 한국의 소방관 한 명이 담당한 시민이 평균 1천9백80명이라는데, 이곳 사정을 따져보면 그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를 나타낸다. 다시 참고로 제시하면 앞서 얘기한 프랑스는 소방관 한 명당 2백47명, 영국은 9백42명 정도의 시민을 책임지고 있단다(소방방재본부 소방방재조직 개혁방안, 1999).
이 곳의 경우, 소장을 제외하고, 출동 가능한 소방관은 하루 9명 정도. 다시 여기서 119 구급대 2명과 근처 고속도로에서 순찰 중인 2명을 제외하고 화재진압에 나서는 소방관을 세어 보면 에누리 없이 5명이다. 하지만 사실상 그 중에 2명은 운전을 맡고 있으니 일선에서 뛰는 사람은 많아야 3명인 셈. 만약 대형화재라도 난다면?
“정말 큰 화재가 나면, 그날 비번인 소방관들을 총출동시켜서 ‘근접 배치합니다.”
한 소방관의 말대로 한쪽 벽면에는 소방관들의 비상연락망이 잘 정리돼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119로 구급상황이 접수됐다. 인근 지역의 한 빌라 지하에 사는 노인이 하수구의 물이 역류해 바닥으로 차오르자 119에 신고를 한 것. 주택가에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차들 덕분에 한동안 쩔쩔 맨 소방차가 ‘사고 지젼에 도착했다. 하수구에 펌프를 대고 물을 빼내는 동안, 그 노인은 연신 “바쁘신데 참 미안하다”고 읊조렸다.
이런 업무는 구청에서 담당해야 하지만 요즘 웬만한 신고는 모두 119로 집중되고 있다. 삼풍백화점 사고에서 소방관들의 활약이 집중 조명된 이후, 119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높아진 탓이다. 소방관들은 “시민들의 안전의식이 성숙한 결과 아니겠느냐”고 되물었지만 “인원은 그대로인데 일만 몇 배로 늘어 힘이 부치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 쨍쨍한 햇빛 속에서 방화복으로 ‘완전무장’한 하해근 부소장에게 다가가 “더워 보인다”고 말을 붙였다. 정말 더운 오후였다. 하 부소장은 “이렇게 대민 업무 중이라도 화재발생으로 인한 출동이 떨어지면 바로 출동해야 하잖아요. 그럴 때는 여기 늘어놓은 장비를 거둘 새도 없는데 언제 옷까지 챙겨 입겠어요. 그래서 미리 입고 있는 건데, 덥긴요. 그게 제 일인 걸요”라고 말한다.
지하철 운전까지 배우는 소방관들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형화재에 대한 기억들로 옮겨갔다. 문득, 2001년 온 국민을 참담한 슬픔에 잠기게 했던 홍제동 사고가 떠올랐다.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만 듣고 현장에 투입됐던 소방관 6명이 무너진 건물에 목숨을 잃었던 사건. 그 ‘숭고한 희생정신’은 둘째로 치더라도, 솔직히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수명의 소방관이 뛰어드는 것이 과연 효율적(!)이냐는 냉정한 셈이 앞서기도 했다. 그들은 왜 불 속으로 뛰어들었을까.
“직업의식이 무서운 거죠. 안에 사람이 있다는데 ‘당연히’ 구하러 가야죠. 그리고 소방관들은 화재진압을 위해 꼭 서너 명이 함께 들어갑니다. 각자의 역할이 있고, 또 혼자 들어가게 되면 깜깜한 현장에 공포감을 견딜 수 없게 되니까요. 뭐, 기자님 같으면 취재거리가 있다는데 불 속이라고 마다하겠어요?”
당장은 “그렇죠”라고 대답했지만 글쎄, 아무리 대단한 취재거리가 있다 한들 주저없이 불 속에 뛰어들 수 있을까. 다시 살아 나오리라는 장담도 할 수 없는 그 길을.
소방파출소로 돌아오는 길, 소방차가 한 고등학교에 멈춰 섰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개표소로 지정된 학교 체육관 앞에 당일 ‘근접배치를 위한 장소 물색을 위해서였다. 김태중 소방관의 말대로 “소방관들은 보이지 않는 일을 더 많이”하고 있었다. 올해로 14년차인 김 소방관은 그동안 집에서 보낸 시간보다 소방파출소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다고 말한다.
“남들처럼 제때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비번조차 마음 놓고 쉴 수 없으니 요즘 들어오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죠. 나야 오래 일해서….”
대통령 탄핵으로 곳곳에 비상령이 내려졌다고 하는데 소방직도 그런 모양이었다. 순번휴무의 정지는 물론, 연가와 병가까지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자 소방관들은 그저 하루빨리 탄핵정국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반나절을 따라나서다 보니, 소방관들은 정말 ‘불을 끄기도 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소방업무에서 인명구조와 화재진압이 최우선이라지만, 그 외 시간에 소방관들은 잠긴 문을 열다가, 자전거 체인을 갈아 끼우기도 하고, ‘위급시’ 지하철 운전을 맡기 위해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대테러 방지’를 내세워 소방관들에게 지하철 운전까지 연습시켜 뒀으니 이명박 서울시장이 지난해 말 도시철도 노조 파업을 앞두고 “(지하철) 기관사가 얼마나 쉬운 자리인지 모른다. 이 점이 드러날까 봐 (노조가) 파업도 못할 것”이라는 막말을 뱉어낼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한 소방관의 외근 업무를 따라나섰던 사이, 파출소에 사이렌이 울렸나 보다. 파출소에 도착하자 “화재다”라는 짧은 외침과 함께 소방차는 어느새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시야에서 사라져갔다.
각자의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소방관들이 화재발생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방화복을 챙겨 입고 차에 올라 출발하는 시간은 단 30초. 초기 진화가 가장 중요한 까닭에 단 1분 1초의 지체도 있을 수 없다.
화재 지점에 가까이 가자 취재진과 함께 한 이도재 소방관이 “저기 까만 구름이 올라오는 곳이 화재 현장”이라고 귀띔한다. 그의 말대로 저 멀리 건물 뒤로 까만 연기가 희미하게 번지고 있었다. 화재 현장은 미리 도착한 소방관들에 의해 인명구조가 끝난 상황이었다. 지하 공장에서 시작된 불로 건물은 이미 새까만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 공장 맞은편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던 여성과 아이 둘을 구조한 사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이 각 층의 베란다에 모여 바깥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복도와 계단을 타고 무섭게 올라가던 연기는 곧 사그라들었다. 출동 10분 만에 상황 끝! 그런데 불을 끄고 연기가 빠지기 무섭게 소방관들이 다시 차에 올랐다.
소방파출소로 돌아온 소방관들은 장비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방금 사용한 소방 호수를 길게 늘어뜨려 물을 빼고는 차곡차곡 접어 소방차에 다시 넣고, 방화복을 제자리에 걸고, 방화모를 씻고, 산소통을 교체하는 등 모든 점검이 끝나고 나서야 그을음에 범벅이 된 얼굴을 씻는가 했더니, 금새 자리에 앉아 화재현장 출동보고서와 현장 소방활동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다. 언제 다시 출동명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세 번째 방문은 도저히 못 열겠더라”
“가정집에서 불이 났어요. 연기로 뒤덮여 깜깜한 현장을 뒤지다 방문을 열었더니 뭐가 툭하고 떨어지더라구요. 시체였죠. 살아 있으면 구조하지만 시체의 경우엔 그냥 둬야 합니다. 감식반이 와서 감별을 해야 하니까요. 돌아서서 두 번째 방문을 열었는데 또 뭐가 툭… 그렇게 연달아 두 번 시체를 보고 나니, 세 번째 방문은 도저히 못 열겠더라구요.”
이도재 소방관은 몇 해 전 겪었던 사고 경험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다행히 세 번째 방에 있었던 생존자를 구조했지만 하루에 두 구의 시체를 맨 눈으로 마주하고 나서 며칠 동안은 자기 집 방문도 못 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차주열 소방관이 몇 마디 거든다.
“소방관이면 다 그렇죠. 처음 불에 탄 시체를 보면 밥도 못 먹어요. 그런데 그것도 몇십 년 하다 보니까 그냥 익숙해지던데요. 자기 일이니까.”
그럼 소방관들은 화재현장에서 겪은 이 같은 정신적 충격에 대해 어떤 보상을 받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해, ‘전혀 없다’고 단정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일년에 한두 번 건강검진을 하죠. 그런데 방금 화재현장에 있었더라도 돌아오기 무섭게 장비점검하고 다음 출동 기다리는 게 일인데 보상은 무슨…. 정년퇴직하고 폐질환으로 고생하는 동료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입증할 수도 없고, 그저 ‘언젠가는’을 기다릴 수밖에요.”
2002년 서울 중랑소방서 윤정금 예방과장이 발표한 ‘소방대원의 외상성 스트레스 연구’에 따르면 현장활동 소방대원 7백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전체의 90.3%가 각종 재난현장에서 외상 사건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외상’(traurna)이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 경험 이상의 극심한 고통을 주는 어느 사건을 직접 경험 …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이들의 건강상의 장애를 동반할 수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조사 결과, 죽음의 위협을 느끼거나 심한 부상을 경험한 경우가 무려 55.1%에 달했고, 사고 이후에도 정신적겱택셈?증상으로 ‘무의식적으로 반복 회상, 상상, 생각됨’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1.8%에 해당했다. 하지만 이런 부상자에 대한 대책마저 미비한 실정이라 소방관들은 사실상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 보고서는 “부상자는 중상자가 대부분인 데 반해,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의료비 반영에는 제한이 있어 특수 분야의 검사, 의료기사용 등 공상(공무상 상해)자 자신이 부담하는 비율이 무려 20~30%에 달하므로, 소방공무원의 사기저하의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감독자의 공식적인 보고회피 성향과 자신의 부주의로 치부하여 안전사고를 숨기는 사례는 공식보고의 5~10배로 추정되며, 설문응답자 총 6백12명 중 1백6명이 부상 치료시 자신이 치료비를 부담하였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소방관들의 위험수당이 한 달에 2만 원인 것보다 더 충격적일까 만은.
비번 날 근무만 금지시켜도
오후 4시 체력단련 시간이 되자, 소방파출소 뒷마당에 준비된 작은 운동장에서 4대 4 족구시합이 벌어졌다. 이들은 뒤에 있는 아파트 단지가 꽤나 의식됐던지, “이렇게 몸을 단련해 두지 않으면 때를 가리지 않는 출동에 몸이 굳어 고생할 수도 있다”며 묻지도 않은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누군가가 “불은 안 끄고 맨날 족구만 한다”고 핀잔을 줬던 모양이다. 24시간 중에 단 1시간의 체력단련 시간인데….
족구를 구경하다 보니, 사무실에 남아 있는 2명의 소방관을 대신해서 낯설은 소방관 2명이 나타나 8명을 채우고 있었다. 이들은 전날 일을 마친 두 소방관, 비번인 오늘 소방시설 점검을 위해 소방파출소에 들른 길이라고 했다.
“담당구역 숫자가 너무 많아서 당번 날은 다 못해요. 그리고 항상 화재발생에 대기해야 하는 처지라 일하는 도중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체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인천 남부에만 8천여 개의 건물이 있는데 이곳을 2백40명의 소방관이 관리한단다. 한 개의 건물에 많은 곳은 수십 개의 상점이 들어 차 있으니 한 소방관이 감당해야 할 상점은 사실 수백여 개에 이르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술집, 노래방 등 저녁시간에 문을 여는 상점들은 이렇게 비번 날 나와서 둘러봐야 한다. 마침 4월 6일부터 16일까지 다중이용업소 점검 기간이었다. 오히려 소방관들이 나서서 “항상 그런 건 아니다”며 입을 모았지만 이번 달만 해도 칠판에 기록된 점검 사항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4월 중 정기소방검사(4월 19일~30일), 경방카드 점검(4월 1일~16일), 다중이용업소 점검(4월 6일~16일), 상가일대 소방도로 확보(3월 30일~4월 15일) 등.
오늘 근무한 소방관들 역시 전날인 8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대여섯 곳의 소방시설을 확인했고, 오늘 24시간 일을 마치고 내일이 되면, 다시 오후에 출근 아닌 ‘출근’을 해 점검을 해야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앞에서 주당 노동시간을 따지는 것조차 사치처럼 여겨졌다. 소방관들은 이제 “비번 날 근무만 금지시켜도 좋겠다”고 말한다. 이런 소박한 소방관들의 소망에도 정부는 “소방조직의 존립기반과 발전의 토대가 ‘봉사정신’에 있다”고만 반복하고 있다. 그 ‘봉사정신’이란 ‘훈장’이 그렇게 마냥 떳떳하고 자랑스럽기만 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저녁 11시가 되자 몇몇 소방관들이 한쪽에 마련된 임시 숙소에 몸을 눕혔다. 지금부터 2시간씩 교대로 불침번을 서며 소방파출소를 지킬 것이다. 평상시에도 ‘뚝뚝’거리는 무전기가 언제 또 긴급출동 명령을 내릴지 몰라 불안한 마음이 앞서겠지만.
님, 당신이어야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 소방관에게 주 84시간의 노동을 강요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슨 배짱인지 궁금해졌다. 그 과정에서 같은 특정직 공무원이며 근무영역이 비슷한
교정직과 경찰직은 이미 3교대 근무로 돌아선 지 오래라는 사실도 새삼 확인했다.
지금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소방관들에게, “공무원은 국가공무원법의 적용만 받는다”는 노동부 직원의 무관심과 “공무원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인데 이런 비상시국에 순번휴무 한 번 못 쉬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다면 그만 둬야지”라며 너털웃음을 웃는 행자부 직원의 말을 전한다면, 그들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순간 오래 전 지나치듯 보았던, 지워지지 않는 문구가 떠올랐다. 화재 현장에 뛰어든 소방관을 위해 동료가 남긴 짧은 당부의 말.
“구조의 현장에서 더도 덜도 말고 딱 두 사람만 살리십시오. 한 사람은 들처업은 구조자요, 나머지 한 사람은 … 님, 당신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