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이
진성수(나의사랑)
사내 아이 서넛 얼음판에서 팽이를 돌리고 있다
팽이채를 쥐고 힘껏 팽이를 친다
빨강 노랑 파랑 색색의 줄들이 그어져 있다
기우뚱 중심이 흔들리자
재빨리 내려치는 삼색 줄
그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 선명한 무지개가 뜬다
매끄러운 얼음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저마다의 엉덩이를 내어준 채
팽그르르 돌아가는 팽이
제 발보다 턱없이 무거운 몸체를 견디며 용케도 견디고 있다
나도 저 팽이처럼 돌아가고 있을까
부끄러운 엉덩이를 내어준 채
날마다 지구의 자전을 꿈꾸고 있을까
여전히 선명한 무지개를 꿈꾸고 있을까
한 판의 놀이가 끝났다
스스르 팽이채에서 손들이 빠져나가고
자전의 셈법이 끝나고 공전의 궤적마저 길을 잃을 때
털썩 내려놓은 엉덩이에 와 닿는 차가운 얼음
돌지 않는 팽이의 상처는 아리기만 하다
**팽이를 치는 아이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선명한 무지개는 그들의 순수한 꿈이요, 희망이다. 그들은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재빨리 팽이채를 내려친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채찍이요, 자신에 대한 올인이며 바닥을 쳤을 때 다시 일어서게 하는 극한의 힘인 것이다.
팽이가 빨리 돌아갈 때, 팽이 윗면에 그려진 노랑, 파랑, 빨강의 색깔들이 무지개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시인은, 바로 그들의 꿈과 희망의 무지개를 본 것이다. 이것이 시인의 눈이요, ‘아이들 얼굴에 선명한 무지개가 뜬다’고 한 표현이 바로 시적인 장치인 것이다. 이러한 발견과 작업은 독자에게 암시적인 깨달음과 감동,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 준다고 할 수 있다.
팽이는 그 뾰족한 발끝으로 제 무거운 몸체를 감당해내면서 매끄러운 얼음판을 잘도 돌아간다. 잘 돌아가는 팽이를 바라보면서 시인은, 스스로를 한번 돌아본다. 자신도 저 팽이처럼 부지런히, 또는 더 크게 지구의 자전같이, 끊임없이 돌면서 꿈의 무지개를 피워올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것은 그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
얼음판의 광경은 ‘엉덩이’ 이 한마디로 스케치된다. 중심을 잡고 달리는 스케이터들의 엉덩이, 얄랑거리며 요리조리 몸통을 조정하는 팽이의 엉덩이, 돌아서서 팽이를 치는 아이들의 엉덩이,……엉덩이, 달리고, 돌고, 온통 엉덩이 투성이다.
나는 별로 내세울 만한 것도 못되는 부끄러운 엉덩이로 얼음판 같은 세상을 팽이처럼 돌면서 조그만 무지개라도 띄울 수 있을 것인가? 다시 한번 소망해 보기도 하지만 확신이 서는 것은 아니다.
팽이치기도 끝나고, 스케이터들도 빠져나가고, 상처입은 엉덩이들은 아리기만 한데, 텅 빈 얼음판만 차갑게 남았다, ‘자전의 셈법이 끝나고 공전의 궤적마저 길을 잃’었다는 끝 연의 표현은 읽는이에게 시적 상상과 공감되는 이미지를 불러일으켜 주기도 하지만, 첫연의 강한 이미지의 제시에 비해 뭔가 마무리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자작시를 올리는 회원님들의 시 읽기는 대충 한 차례 돌아간 것 같습니다. 15회 시 읽기는 작품을 더 찾아 봤지만
한 편밖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새로 올리시는 회원이 없으면, 두 번, 세 번 같은 회원님의 시를 읽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이 게시판이 별 효율성이 없는 것 같기도 해서 카페지기님과 상의해서 계속 여부를 결정할까 합니다.
----------------공동운영자 '유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