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시절 나의 기억에 또렷이 남은 공포소설 "검은 고양이"를 다시 읽게 되어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당시에는 그냥 공포물 정도로만 생각했던 작품을 다시 읽으면서 시대를 앞서간 문학가로서
"에드거 앨런 포"라는 인물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아직 유럽문학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미국문학계에 낭만주의와 합리주의의 조화를 이뤄냄
으로써 고딕소설형식의 완성자이자 현대적인 추리소설의 창시자로 추앙받고 있다.
포의 단편작품 속에는 신화와 전설, 비이성적이고 초자연적이며 극단적이고 편변된 것들을 즉,
괴기스럽거나 비현실적인 상황에서의 인간의 행동 그리고 인간의 양면성이나 도착성을 철저한
과학적 탐구로 풀어내는 그만의 독특한 개성과 문체가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단편들이
200년이 지난 현대인들에게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가 시대를 앞서간 작가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하다.
그는 180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순회극단의 배우였던 부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배우였던 친부모의 죽음으로 부유한 상인 앨런에게 입양되어 편안한 초년을 보내는 듯 했으나 양부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갈등이 심화되어 대학을 자퇴하기에 이른다.
포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18살에 입대를 하고 육군사관학교에 시험을 쳐 합격하지만 근무태만으로 퇴학
을 당한다. 아마 작가로서 글을 쓰면서 군인으로서 완벽하게 생활하기가 어려웠던게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포는 그후 과부로 살고 있는 고모를 찾아가 할머니, 고모, 어린 여사촌 버지니아 등을 포함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여러문학잡지의 편집자로 온갖 잡일을 하면서 보잘것 없는 수입으로 가족을 책임지
면서도 작가로서의 명성도 쌓아간다.
하지만 14살의 사촌 버지니아를 신부로 맞이한 것을 두고 그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결혼은
버지니아를 경제적 어려움에서 구하기 위한 방편이었고 그들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했다고 한다.
포는 아내 버지니아가 10여년간 고생만하다 결핵으로 죽자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잠시 알콜중독에
빠지기도 했지만 다시 재기를 꿈꾸며 소년시절에 알던 여인과 약혼한 뒤 고모를 모시러 뉴욕으로 가던 중
볼티모어에서 열병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때 그의 나이 41살이었다.
아직까지도 그의 결혼과 사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그가 너무도 어린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는 점에서 그의 부도덕성을 지탄하기도 하고 그의 사인을 알콜중독에서 정치깡패에게 강제로
끌려다니다 길에 버려졌다는 등 여러 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 그의 삶과 죽음이 평탄치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포가 자신의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지은 시
애너벨 리 / 에드거 앨런 포 1849년
옛날 아주 옛날
바닷가 어느 왕국에
당신이 아실지도 모를 한 소녀가 살았지.
그녀의 이름은 애너벨 리
날 사랑하고 내 사랑을 받는 일밖엔
아무 생각이 없었네
바닷가 그 왕국에선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나와 나의 애너벨 리는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지
천상의 날개 달린 천사도
그녀와 나를 부러워할 그런 사랑을.
그것이 이유였지, 오래 전,
바닷가 이 왕국에선
구름으로부터 불어온 바람이
내 아름다운 애너벨 리를 싸늘하게 했네.
그렇게 명문가 그녀의 친척들은
그녀를 내게서 빼앗아갔지.
바닷가 왕국
무덤 속에 가두기 위해.
천상에서도 우리의 반쯤밖에 행복하지 못했던
천사들이 그녀와 나를 시기했던 탓.
그렇지! 그것이 이유였지(바닷가 그 왕국 모든 사람이 알듯).
한밤중 구름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와
나의 애너벨 리를 싸늘히 숨지게 한 것은.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먹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으로부터 떼어 놓지 못했네.
달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꿈을 꾸지 않으면 비치지 않네
별도 내가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빛나는 눈을 보지 않으면 떠오르지 않네
그래서 나는 밤이 새도록
내 사랑, 내 사랑, 나의 생명, 나의 신부 곁에 누워만 있네
거기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파도소리 들리는 바닷가 그녀의 무덤에서
포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지은 시를 보면 그가 얼마나 자신의 아내를 사랑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결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들이 있지 그의 절절한 사랑을
담아낸 이 시하라만으로 그의 사랑을 대변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는 총 14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괴기스러운 사건에서부터
인간의 불완전한 심리가 가져오는 비극적 결말 그리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가 포함되어 있어서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병속에서 발견된 원고>는 배가 난파하면서 유령선에 타게 된 주인공의 기록을 다룬내용이며
<리지아>는 죽은아내가 현실에 출몰하여 새부인을 죽이고 다시 부활하는 내용을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락>은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의 작품으로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이의 기록을 <붉은 죽음의 가면극>은 전염병을 피해 가면극을 누리던 사람들속에 나타난 전염병의
공포를 <어셔가의 몰락>은 어셔저택에서 일어난 사건과 몰락을 <윌리엄 윌슨>은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자기 파괴적인 악행을 계속하는 주인공이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끊임없이 괴롭히는
인물과 극적으로 맞닥뜨려 그를 죽이지만 그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비극을
<배반의 심장>에서는 아무런 이유없이 단지 노인의 눈동자가 싫다는 이유로 노인을 죽이고
그 살해가 발각되지 않을 것이 확실한 순간 스스로 발각을 자초하는 내용을 <검은 고양이>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양이를 죽이고 그러다 우연히 아내까지 죽이고 자신의 살인이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만심이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드러나게 만들고 <군중속의 사람>
은 군중속에서만 편안히 숨을 쉴수 있는 한 노인에 대한 추적을 <구덩이와 추>는 죽음이라는
극한 공포속에서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아몬티야도 술통>은 자신의 체면을 구긴이에 대한
죽음의 복수를 <깡충 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마리의 오랑우탄>은 난장이라고 멸시하는
황제와 귀족들에 대한 철저한 복수를 담고 있다.
특히 <도둑맞은 편지>에 등장하는 탐정 뒤팽은 나중에 아서 코난도일의 셜록홈스의 모델이 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뒤팽은 간단한 추리로 왕족의 귀부인이 도둑맞은 중요한 편지를 되찾아 준다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