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햄스터
18개월 동안 함께 살았어
잘 가라고, 인사도 못해 더 눈물이 나
모과나무 아래 곱게 묻어주고
돌아서는데 누나도 나도 엉엉
눈물 콧물 훔쳤어
햄스터가 아픈 것도 모르고
밤새 혼자 끙끙 앓게 한 것이
학원 다니기 바쁘다고
방학 때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이
너무너무 미안해서.
이슬이나 깨면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 외할머니 댁
이른 아침부터 들썩들썩
이모는 쫀득쫀득 쑥개떡
엄마는 보슬보슬 쑥버무리
나는 쫄깃쫄깃 인절미 먹고 싶어
바구니 하나 씩 챙겨들고
뒷산에 파릇한 쑥 캐러 나가는데
할머니가 손사래 친다
야야, 이슬이나 깨면 나가라!
아하, 이제야 알았다.
이슬도 풀잎 위에 동그랗게 몸을 말고
밤새 잠을 잔다는 걸.
나랑 빨리 친해지라고
새 운동화 옆에
헌 운동화 나란히 놓였습니다
헌 운동화는 밤늦도록
새 운동화에게 이야기합니다
비 오는 날
놀이터에선 물웅덩이 조심하고
문방구에 가면
게임기 앞에 쪼그려 앉지 말고
심부름 갈 땐
신호등 없는 찻길 꼭 조심하고
헌 운동화는
그동안 나랑 함께 걸었던 길을
새 운동화에게 들려주느라
바쁩니다.
꼼지락 톡톡
식구들 모두
거실에 둘러앉았다
맨발로 둘러 앉아
다리 쭉 뻗고
꼼지락꼼지락 이야기 나눈다
굳은 살 박힌
아빠 발가락을
엄마 발가락이 살살 만져주고
조그만 내 발가락
오빠 발가락을 톡톡 건드린다
꼼지락 톡톡 우리 가족
오늘도 맨발로 이야기 나눈다.
꽃망울
누구나
입 꾹 다물고 잇을 뿐
생각이 많은 거다
긍금해도 묻지 않고
조용히 바라보고
기다려 주면
어느새
음음꽃 활짝 터트리는
꽃봉오리처럼
요즘 멍하니
하늘만 보는 내 친구도
꽃망울이다.
단짝
친구의 발걸음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지
찰박찰박 물속을 걷는지
쩔꺽쩔꺽 물 찬 신발을 신었는지
벙싯거리는 표정만 봐도
금방 알 수 있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듯
새가 나뭇가지를 차고 날아가듯
어떤 친구일까
교실 안으로 사뿐히 날아든
잠자리 한 마리.
이리 와, 이리 와!
친구들이 서로 손 내미는데
뒤이어 말벌 한 마리
왱왱거리며 날아든다
놀란 친구들 팔 저으며
저리 가, 저리 가 !
나느 친구들에게
잠자리일까 말벌일까.
노란 안경 쓴 원숭이
노란 안경테를 썼다고
원숭이 같다고 친구들이 놀린다
그럼 어때?
난 붕어빵처럼 똑같은 건 싫어
봄날에 피는 꽃잎처럼
색깔이 다른 크레파스처럼
나는 나의 색깔이고 싶은 거야
내 꿈은 세계적인 모델이니까
노란 안경테 정도는 써 줘야지 않겠어?
내일은 노란 티셔츠를 입을 거야
모레는 노란 신발을 신고
글피는 노란 바지를 입고
비가 오는 날은 노란 우산을 쓸 거야
너도 함께 쓸래?
그런데 칭찬
수학 시험을 잘 봤구나,
그런데 이렇게 쉬운 문제를 틀리면 어떡해?
달리기를 잘했구나,
그런데 조금만 더 힘을 내서 달리지 그랬어.
글을 아주 잘 썼구나,
그런데 또박또박 글씨를 좀 잘 쓰지 그랬니.
우리 아빠 칭찬은 참 좋다.
그런데…….
이게 뭘까?
사료만 먹고 자란 어린 닭들이
텃밭으로 세상 구경 나왔다
할머니가 꽃상추 속잎
휙 던져 주면 서로 눈치 보다가
이게 뭘까, 용감한 녀석이
작은 부리로 콕, 찍어 물고 간다
바라만 보던 친구들이 뒤쫓으며
뭐야, 뭐야, 그게 뭐야?
몰라, 몰라, 나도 몰라~
한번 먹어볼까? 맛있을까?
콕콕, 콕, 콕, 콕!
그날부터 할머니 상추밭은
어린 닭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마루에 누워
파란 하늘 향해
두 다리 모아 번쩍 세우고
하늘길 하늘하늘 걷다가
왠지 하늘에 대고
발길질하는 것처럼 보여
두 다리 곱게 내리고
훨훨 날아보고 싶어
두 팔 한껏 벌려 바람을 안고
하늘빛에 물든다.
*박예분 제3동시집 <안녕, 햄스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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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에 함께한 박예분 선생님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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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쁜 친구들이 보고싶어집니다
동심이 꿈틀거려 함참이나 머물러 봅니다
제3 동시집 <안녕, 햄스터>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
황경순 샘, 애쓰셨습니다^^
박예분 선생님~
동시집이 예쁘고 따뜻한 느낌이예요ᆞ^^
동시를 보면서 슬픔이 행복을 찾아보라고 오는 것만 같았어요ᆞ
쌤~ 누구세요? 익명이라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반가워요~~
실명으로 바꿔주시면 우리는 더욱 친한 사이가 될 거에요 ^^
@솟대 박예분 아ㅡ 누군지 알았어요. 감사해요~~~~
참 좋은 동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