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재배 농사 5년차
그동안 카페와 블로그 ‘너도나와같다면’에서 말한대로 나는 내가 ‘자연재배’라고 부르는 무경운, 무비료(무퇴비), 무농약, 무제초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이는 무슨 원칙을 애써 지킨다는 것이라기 보다 그냥 나는 처음부터 그런 농사를 지으러 농촌에 온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다른 농가에서 흔히 보는 밭에 검은 비닐을 덮는다든지 비닐하우스에서 작물을 재배한다든지 아니면 어떤 한 작물만 많이 심는 단작 등의 반 자연적 농사를 피해가면서 만 4년이 넘게 농사를 지었다.
처음에는 1,000여평의 농지에서 시작했으나 주위의 환경이 좋지 않아 다음해에 다른 곳에 3,000여평의 농지를 임차해 그곳에서 2년간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새로 임대한 농지의 주인은 내게 장기 임차를 보장해 주지 않아 결국 또 한번 농지를 옮기게 되었다. 현재는 맨 처음 농사를 시작했던 곳으로 되돌아와 그 주위로 농지를 넓혀 3,500여평의 농지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그동안 주위 환경이 나아져 다시 돌아와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임차한 농지 전체를 20년 이상 장기로 계약하여 심적으로 안정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고 싶다는 생각은 현실 속에서 많은 문제를 던져준다. 아무 비료도 주지 않고 밭모양만 갖춘 척박한 땅에 채소를 심어 자라지도 않고 빌빌 거리다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는 마음은 무척 고통스러웠고 작물이 어느 정도 자라주어야 풀을 정리하는 일도 줄어드는데 작물은 자라지 않고 풀만 자꾸 무성해져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나 해가 뜨거우나 자꾸만 풀을 베어야 하는 몸은 고달팠다. 주위의 사람들의 비웃음 반 걱정 반도 마음을 허전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비료살 돈이 없어 그러느냐, 돈 좀 꿔주랴” 하는 말까지. 농사책을 보며 열심히 공부한 대로 작물을 재배하려했으나 작물이 자라지를 않는데 무슨 농사 지식이 필요할까. 책에 나온대로 작물의 재배력도 맞지 않고 특히 봄과 가을에 심어 거두는 재배기간이 짧은 배추, 양상추, 브로콜리 같은 작물들은 제대로 자라보지도 못하고 생을 끝내기 일쑤였다.
‘신비한 밭에 서서’라는 책에서 본대로 4~5년후면 흙이 비옥해지기 시작하고 10년이 지나면 흙이 자연의 상태로 회복된다는 말만 믿고 기다려온 5년이 흘러가고있다. 이제는 작물이 자라지 않고 스러져 가는 것도, 그런대로 자라주어 수확을 하게 되는 것도 그리 마음을 뒤흔들지는 않는다. 최선을 다해 모종을 키우고 씨앗을 뿌렸어도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래도 반 자연적인 농사를 피하기 위하여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마다 그것이 나의 농사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가에 관하여 심사숙고하였다. 예를 들면 작물에 물을 준다든지 토마토 비가림 재배를 시도한다든지 작년 가을 콩밭에 호밀을 뿌린 것이라든지 하는 것들이다.
나의 3,500여평의 농지는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도로가에 접해있다고 해서 ‘길밭’, 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산밭’, 가장 큰 평수의 밭이라고 ‘본밭’ 그리고 ‘논’이라고 부르며 밭으로 쓰고 있는 수륙양용 논밭 이렇게 4구역이다. 이들 구역은 나름대로 이력이 달라 ‘길밭’은 내가 농지를 옮기고 하는 것에 무관하게 처음부터 가꾸어 왔던 400여평 크기의 밭이고, ‘산밭’은 재작년 여름 칡넝쿨, 키 작은 관목 그리고 키 큰 나무를 부분적으로 베어내고 개간을 했으나 산도가 높아 작물이 되지 않았던 밭으로 2년 정도 지나고 나니 산도가 정상에 가깝게 변화하고 있는 600평 크기의 밭으로 올해 들깨를 심을 예정이다. ‘본밭’은 작년까지 친구 동생이 자연재배와 비슷한 방법으로 콩을 심던 1,000여평의 밭으로 매년 트랙터로 갈고 로터리를 쳐오다가 작년 가을 콩 수확후 내가 받아 관리기로 고랑만 만들어 올해부터 농사를 시작한 밭이다. 그리고 ‘논’은 재작년 말 임차하여 밭으로 만들어 작년부터 콩을 심고 올해도 콩을 심은 1,700여평의 밭이다. 이중에서 ‘길밭’을 제외하고는 내가 농사를 지은지 1년 내지 1년이 채 안된 밭들이다. ‘길밭’을 제외하고는 농사가 안 되고 있다. 작년 논에 심었던 콩은 그런대로 잘되어 관행농의 60~70% 수준의 수확을 이루었다. 비료가 적어도 되는 ‘콩’이기 때문이다. 올해 처음 시작한 ‘본밭’의 경우는 무비료 농사를 3~4년 동안 지어왔어도 매년 갈고 로터리를 쳤기 때문에 흙이 좋지 않다. 비교되는 ‘길밭’의 무경운 장점이 확인된 셈이고 올해 많은 종류의 채소를 심었으나 성장세가 좋지 않다. 조금씩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는 정도이다. 나는 나의 카페와 블로그에 최소 2~3일에 한번씩은 글을 올린다. 글의 내용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자부심이 있는 글들이다. 이는 ‘길밭’을 대상으로 거기서 자란 작물을 말하는 것이다. 아직도 대부분의 밭에서는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자세한 글은 없다. 내 스스로 포기하기 때문이다. 잘 되는 작물만 관심이 가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쓴다. 안 되는 상황은 영농일지에만 기록이 되어있다.
간혹 글을 올리는 사람이 있어 그들은 말한다. “참으로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는 농사”라든지 “나도 해보고자 하는데 수확량은 어떤지?”, “올린 자료가 좋아 덕을 보고 있다” 등. 그러나 나 자신 누구에게도 이 농사를 권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고 있기는 한것 같은데 그 많은 심적 고통과 몸의 고달픔, 오랜 기다림 그리고 여기저기 도움을 받으면서 아주 적은 수입으로 유지해야하는 가장의 책임 같은 것들을 생각하면 그렇다. 처음에는 관행농을 하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본 것이 사실이다. 친환경농사도 그렇고. 그러나 지금 내가 짓는 농사가 대안이 될 수 있겠는가? 최소 4~5년을 어찌 기다리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자연재배”라는 책을 지은 일본인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사람도 7년을 기다리다 목을 멜 생각을 해본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 힘들게 이 농사를 짓는 이유는 무얼까.
나는 10년을 계획하고 이 농사를 시작했다. 이 농사의 이상적인 면만을 생각했지 이런 고통이 따를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가족들이 모두 돕고 내 농사의 완성을 기대하는 후원자도 생겼다. 그리고 10년 정도가 지나면 내가하는 이 농사도 기대하는 만큼 원활한 수확이 이루어지겠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최소한 4~5년 동안 밭을 가꾸니 이제는 제법 농사가 되는 ‘길밭’이 증거이다. ‘신비한 밭에 서서’에서 말하는 밭의 변화가 거의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나는 이 농사를 계속할 것이다. 농사는 1년에 한번 밖에 지어보지 못한다. 5년차이긴 해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매년 봄이 되면 새로운 희망에 들떠 밭을 거닌다. 아직도 해보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최소한 10년을 채우면 조금 나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건강한 채소를 재배하고자하는 의지는 농부가 농부로서 있을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농부로 있고 싶다.
2009년 06월 27일
농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백석리에 있는 자연재배 농장 『너도나와 같다면』
○ 무경운 (無耕耘) : 밭을 갈지 않습니다 .
○ 무비료 (無肥料) : 화학비료는 물론 퇴비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 무농약 (無農藥) : 농약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 무제초 (無除草) : 풀도 뽑지 않습니다.
농작물과 잡초와 벌레가 서로 공생하며, 자연의 조화를 이루어 가는
생명 순환의 농사를 짓는 『너도나와같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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