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 최고의 사진가 안드레아스 거스키
거스키의 사진작품은 기록인가 회화인가 또는 조작인가?
330만 달러(약 40억원)에 경매낙찰된 작품 ‘99센트’ 등 대표작 40점 볼 수 있어
지난 9월 4일,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는 ‘현대사진의 거장’이라고 불리워지는 독일 사진작가 안드레아스 쿠르츠키의 사진전이 폐막됐다. 3월 31일부터 장장 5개월 넘는 전시였다.
안드레아스 거스키는 독일 출생의 사진작가로 현대문명의 대량생산, 소비사회에 대한 특징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포착한 대규모 작품들을 선보여온 작가로 유명하다. 1980년대 중반의 초기작부터 2022년에 제작된 신작까지 사진작품 40점이 출품되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서 필자는 우선 네가지 면에서 놀랐다. 작품의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놀랐고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선명하기 그지없다는 데 더욱 놀랐다. 또, 보이는 풍경이나 대상을 보이는 대로 찍은 것 같은 작품들이 사실은 대부분 합성하고 수평수직을 맞추는 등 디지털편집기술로 후보정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전시작품들은 대부분 인류와 현대문명, 기후변화 등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을 담은 작품들이다.
예를 들어 2011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시장에서 433만불(원화 약 52억원)에 낙찰된 ‘라인강2’(이번 전시에서는 같은 장소 및 구도로 찍은 ‘라인강3’이 올려져 있음)의 경우 실제로는 강변에 건물들이 널려 있는데 이것들을 포토샵 기법으로 모두 제거하고 단순하게 라인강과 강변풀밭만 표현하고 있다. 일반인들이 보면 거의 새로울 것이 없는, 누구나 흔히 찍을 수 있는 사진, 거기에 실제 존재했던 사실을 일부 지운 사진, 악평하면 조작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는 사진이 52억원에 팔렸다니... 경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경매시장에서의 52억원 낙찰가는 2021년까지만 해도 사진역사상 최고가였다. 2022년 5월 14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만레이의 '앵그르의 바이올린'이라는 사진작품이 1,241만 달러(약 159억원)에 낙찰됨으로써 '라인강2'의 기록은 깨졌지만, 그렇다 해도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사진작품은 세계경매가 2위인 '라인강2'의 52억원에 이어, '99센트' 330만 달러(약 40억원), '평양' 런던 소더비경매 130만파운드(약 20억8천만원) 등으로 세계 사진경매시장의 최고가 수준을 지배적으로 차지하고 있다.
전시작품 중 ‘파리, 몽파르나스’ 나 ‘크루즈’를 보자. 파리최대의 아파트를 찍은 ‘파리, 몽파르나스’는 파리 최대규모의 아파트 건물을 찍은 사진이다. 워낙 큰 아파트여서 사진을 부분적으로 나눠 찍은 후 이를 조합하고 수평수직을 맞춘 것이라 한다.
또, ‘크루즈’ 작품 역시 여객선 ‘노르웨이 블리스호’를 여러 단계에 걸쳐 촬영한 후 이들을 디지털 편집기술로 조합하여 재창조하였다. 두 작품 모두 특히 디테일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선명하여 창문들을 통해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표현,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이미지를 보여준다. ‘현실적’으로는 피사체의 규모나 거리, 카메라 자체의 기계적 한계 등에 따라 원근감으로 왜곡돼 보이는 이미지를 실제 존재하는 ‘사실’이 그대로 보여지도록 재편집한 작품들인 것이다.
작품 ‘렘브루크’나 ‘회상’은 어떤가?
‘렘브루크’는 독일 뒤스부르크에 있는 미술관이다. 작가는 미술관 전시장 외관 만 촬영하고 그 공간에 포토샵 편집기술로 다양한 별도작품들을 넣어 가상의 전시회를 구상한다.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역할에서 벗어나 표현하고자 하는 상상의 현실을 실제로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또, ‘회상’에서는 근래 독일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 헬무트 슈미트, 앙겔라 메르켈, 헬무트 콜의 뒷모습 사진들을 합성, 그들이 한 장소에서 함께 바넷 뉴먼의 <인간, 영웅적이고 숭고한> 이라는 전시작품을 보고있는 장면으로 만들었다.
작품 ‘99센트’도 기념비적이다. 끝없이 펼쳐진 알록달록한 상품들을 담은 이 작품은 로스앤젤레스의 대형할인점을 보여준다. 구체적인 위치를 드러내지않은 익명의 제목 ‘99센트’는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소비문화를 상징한다. 2009년에 리마스터(Remaster)된 작품으로, 작가는 1999년의 필름사진을 디지털 편집하여 심도와 채도가 더해진 작품으로 재창조해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크리스티 경매에서 330만 달러(약 40억원)에 낙찰됐다. 불과 1000원의 사진이 디지털 기술로 무려 40억원이 된 셈이다.
영국 헤이워드갤러리 큐레이터인 랄프 러고프는 거스키에 대해 "사진의 경계를 어떻게 하면 확장시킬 수 있나, 우리가 어떻게 사진을 바라봐야 하나를 계속해서 묻는 작가"라고 말한다.
(글,사진/임윤식)
* 이곳에 올려진 작품들은 필자가 전시작품을 직접 현장에서 찍은 것(433만불에 경매낙찰된 대표작 '라인강2' 작품은 유튜브 Art Scope의 Andreas Gursky Photography 영상에서 캡쳐)으로 원본에 비해 화질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전제함. 거스키의 작품 원본들은 사이즈가 엄청 크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면 Detail이 정밀하기 그지없는데, 전시장에서 삼각대 및 별도조명시설없이 스냅사진으로 찍었기 때문에 크게 확대해 보면 디테일 면에서 원본 대비 선명도가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양해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