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끝날 기미가 안보이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몇 년째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집을 가지고 서민을 울리는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고 지속적인 물가상승에 마음은 움츠려 든다.
젊은 청춘들이 이슬같이 사라진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은 매일 매일이 깡통소리 같이 시끄럽기만 하다.
머리가 맑아지는 산뜻한 소식은 없을까 ? 기다리는 중에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렸다는 기사가 남해안이 아닌 강원도에서 들려온다.
소한이 지난지가 며칠 밖에 안 되었고 일 년 중 가장 추운 날이라는 대한이 열흘이나 남은 시점이라 반가움이 더 하다.
벌써 봄인가 ? 아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앞서고 있는 탓일 것이다.
매화는 꽃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나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임금님의 분비물(?)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였다. 열매는 매실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음력 8월에 매화가 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한다.
사군자 중 맨 처음 등장하기도 하지만 추운 날씨에도 뜻을 굽히지 않는 기상과 절개 그리고 향기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
조선시대의 화가 김홍도는 어떤 사람이 매화나무를 팔려고 왔는데 마침 그림 값으로 받은 3천전 중 2천전으로 매화나무를 사고 8백전으로 술을 사서 친구들과 마셨다고 한다. 매화꽃을 매전(梅錢)이라 비유한 것을 보면 비싸게 주고 구입한 것이 이해가 된다.
퇴계 이황도 매화를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퇴계연보》에 따르면 유언으로 ‘매화 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이니 말이다.
생전에 매화 예찬 시를 107수를 짓고 그 중 92수를 골라 《매화시첩》을 펴냈다. 이황의 초상화가 들어간 1000원짜리 지폐에도 그가 아낀 매화가 함께 새겨져 있다.
《매화시첩》첫머리에 실린 ‘옥당억매(玉堂憶梅)’는 벼슬아치로서 세상의 걱정스런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뜰 앞에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풍진의 세상살이 꿈속에서 들락날락하네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에 달을 보니
기러기 슬피 울 제 그대 생각이 애절 하구나.
매화나무의 원산지는 중국 남부지방으로 따뜻한 날씨를 좋아한다.
특히 꽃 피는 시기에는 10℃ 이상이 알맞은 생육기온이지만 영하 8℃까지도 버틸 수 있다. 이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한 자기만의 전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불포화 지방산을 많게 해 세포막의 유동성을 정상으로 유지하면서 세포 내부의 수분을 외부로 내보내 세포액 농도를 높여 얼음이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하 25℃에서도 견디는 품종이 있다. 눈 속에서 매화가 핀다고 너무 안타까워하거나 측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매실나무는 꽃을 감상하기 위한 관상용 화매(매화)와 과실을 이용하는 실매(매실)로 나누어진다.
백매화는 꽃잎이 희고 꽃받침이 붉고 청매화는 꽃잎이 희고 꽃받침이 초록색, 관상용으로 이용하는 홍매화는 잎과 꽃받침이 붉고 만첩매화는 꽃잎이 여러 장이다.
또한 매실은 살구와 꽃가루를 주고받을 수 있어 잡종 품종도 많다.
이런 이유로 풋과일일 때에는 살구와 매실이 정확히 구분되지 않아 구입하는데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매화는 추운 가운데서도 꽃을 피우는 나무로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살구나무, 복숭아나무도 꽃이 먼저 피고 개나리도 꽃이 먼저 핀다. 이는 열매를 먼저 맺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매화를 의미하는 한자로 남(楠, 枏, 녹나무 남)이 있는데 오늘날은 녹나무를 의미하지만 중국 남쪽지방에서는 매화를 ‘남’이라 불렀다. 녹나무와 매화가 껍질과 잎이 닮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남’이라는 글자는 신맛을 가진 과실을 의미하기도 했다.
매실의 ‘실’은 재화가 ‘가득 차다’는 뜻이고 매실이 여름 장마철에 익기 때문에 장마는 ‘매우(梅雨)’라고 한다.
매실은 생각만 해도 입안에 침이 돌기도 하는데 갈증을 없애기도 하지만 피로회복, 간 기능회복, 혈압 상승예방과 같은 생리활성 효과도 있다.
《삼국지》에서 조조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식수가 떨어져 어려움을 겪자 ‘앞에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시고 달아 갈증을 풀어 줄 수 있다’고 하여 물을 찾을 때까지 갈증을 참을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매림지갈’로 매실 소리만 듣고도 침이 고여 갈증을 해소한다는 뜻으로 비록 달콤한 말로 유혹하였지만 임기응변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음을 말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정조는 더운 날씨에 고생하는 신하들을 위해 ‘제호탕과 청심원을 태묘의 향관들에게 하사하였다’고 하였다. ‘제호’는 중국의 현장법사가 산스크리트어인 ‘Manada’를 한자로 옮긴 것으로 마시면 진리를 깨달은 것처럼 정신이 맑아진다는 의미라고 한다.
제호탕은 매실과 결명자, 사인, 백단, 초과, 사향과 같은 한약재를 꿀에 재웠다가 끓여 냉수에 타서 마시는 음료로 《동의보감》에서도 무더위를 풀어주고 목이 마르는 증상을 그치게 한다고 한 것을 보면 여름 음료로 제격이었던 것 같다.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했다.
그 향기는 강하지 않지만 멀리까지 간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씨 같다고나 할까.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매화향기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것은 욕심일까? 바램일까?
볼을 스치는 바람으로 느끼는 봄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봄이 찾아오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