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의 회상: 두만강에서 중앙아까지 ⑩
할 말 많은 압록강과 두만강 (2)
중러 국경: 토자비(土字碑, 土字牌)
청나라는 말기에 동진해온 러시아 세력에 밀려 연해주 동해안 전체를 내주었고 두만강 연안도 하구에서 육지 쪽으로 16km까지 빼앗겨서 동해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 1992년에야 훈춘에서 동해로 나가는 출해권을 인정받았지만 강물이 얕고 하구에 북-러 간 철교가 지나고 있어 교각 밑으로는 큰 배는 드나들지 못한다.
북경조약 이후 청국과 러시아는 북경조약의 조약문상에 나타난 미확정 경계구간인 흥개호 동쪽에서 두만강에 이르기까지의 지역에 경계표지를 세워 국경 경계를 확정하는 협상을 시작하여 1861년 6월 28일 경계비를 설치하자는 흥개협약을 맺었다. 홍개협약을 통하여 우수리강에서 두만강 하구까지 양국국경 구분 작업을 마친 후 조선을 포함한 삼국간의 실질적인 경계와 점유 범위를 설정하기로 합의하였다. 이들이 합의한 경계표지는 러시아와 중국 글자로 경계표지 양면에 각각 붉게 새겨 넣은 목재 비문 8개, K(喀)字, И(亦)字, E(耶)字, Л(拉)字, H(那)字, O(倭)字, П(帕)字, T(土)字를 설치하기로 하였다(조병현). 청과 러시아 관리들은 국경지역을 상세히 조사하여 확인된 지역에 목재 경계표지(境界標址)를 설치하기 시작하여 두만강 우안지역 제일 마지막 지점에 위치한 국경 경계표지인 토자비(土字碑, 土字牌, T字牌)를 설치하였다.
중국과 북한 사이를 흐르는 두만강은 자연스런 국경선을 이루지만,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높은 철조망이 가로지르고 있는 데서 두 나라의 긴장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장장 4209km나 되는 국경을 평지는 삼엄한 철조망으로, 산악지대도 넓은 방화선을 만들어 국경을 경계하고 있다. 일반 관광객은 중국측 방천촌을 거쳐 청·러 간 국경비인 토자패(土字牌) 옆 전망대인 망해각(望海閣)까지 올라가면 한눈에 세 나라를 볼 수 있다(一眼望三國).
중러변계상 423경계비는 조선과의 경계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100m 떨어져 있는 화강암비는 422호(T) 경계비로 광서 12년 4월에 세운(1886.12.4) 토자비로 토(土)는 만주어로 길이 끝나는 곳이란 뜻이다. 북경조약후 20개의 경계비를 세우는데 K(喀)字, И(亦)字, E(耶)字, Л(拉)字, H(那)字, O(倭)字, П(帕)字, T(土)字 У(乌) 같은 자는 러시아어 알파벳으로 1861년 오소리강구에서 청러의 회합에 따라 공동감계 후에 세운 패(牌, 비석)의 이름이다.
청의 경계비 20개중 토와 우자패가 가장 중요하여 종점비로 도문강 좌안 20리 해역에 세우도록 하는데, 청나라의 흠차대신(欽差大臣) 성기는 귀찮아서 마래 바다 쪽으로 더 내려가지 않고 오자비를 버렸기 때문에 바다로 나아가는 길은 15공리(km) 밖으로 멀어지고, 그 지역은 러시아영토가 되고 조선의 녹둔도 까지도 조선을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러시아로 넘겨버렸다. 결국 20개의 비석중 8개만 세우고 아편으로 거동이 불편한 관리는 산에 세울 비석을 산 아래 세우기도 한다. 훈춘의 도문강변 동해바다에서 44리 지점이 경계가 되어 25년간 고착되었다. 그 후 지속적인 담판으로 중국은 1884년간 담판과정에서 10여리가 늘어났으며, 변계의 토, 라, 싸 등 16개의 편호를 조약중 남단변계의 종점의 도문강변에 오자패(烏, У)를 세웠다(1886). 이후 중국은 두만강의 어로가 가능해지고 출해권을 얻는다(박기수).
그 후 60년대 소련과 대치로 두만강 통항담판은 중단되었다가 1990년 중국의 두만강지역 과학고찰활동이 소련 조선의 승인으로 이루어지고 동해에 진입한다. 1990년 5월 28일 과학고찰단은 방천에서 떠나 15분후 두만강 철교를 넘어 일본해(동해)로 진입하는데, 50년대초 소련은 조선전쟁지원으로 철도를 개설하고 직접 조선을 연결하여 조선과 러시아의 유일한 통로가 생겨난다. 당시 고찰단의 후일담을 들어보면 20여년(?) 만에 강심이 깊은 러시아쪽 물길을 따라갔고, 두만강 철교높이가 낮은데다가 또 토사가 쌓였을 것을 우려하여 교각통과가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였다. 그리고 국경지대의 긴장과 하상에는 전쟁 중에 사용했던 불발탄이 있을지도 모르고, 철교 넘어 하구에는 바닷물이 끓는 것 같은 희미한 시정(視程)에 불안하기도 했으나 돌고래와 같은 바다 포유류들의 솟구침의 착각이었으므로 많은 우려 속에서도 고찰활동은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1952년 정식으로 통차한 두만강 대철교는 8개 교각중 5개는 러시아가 세우고, 3개 교각은 조선이 세운 것이다. 전쟁시 급하게 만든 철도로 낮고 물이 불어나면 배들의 통항이 어려워 재개설이 필요하다고 한다. 강심은 1.6m 이어서 300톤급이상의 통항은 어렵고, 3년 이상의 공사로 항운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국의 출해권, 생손인가? 멱살인가?
19세기 중엽에는 중국의 배들이 훈춘 부두를 떠나 두만강을 따라 동해로 들어서 블라디보스토크로 왕래하는 하였으므로 그때까지만 해도 두만강은 중국 동북에서 동북아 지역으로 통항하는 중요한 통로이었다. 1860년 중·러 사이에 ‘북경조약’이 체결된 후 중국은 두만강 하류의 바다로 통하는 출구(출해구)를 상실하였다. 1886년 중·러가 동해 연안의 제일 마지막 구간경계선을 탐측할 때 당시 청조 도찰원 좌부어사였던 오대징(吳大徵)은 도리를 따져 경계비를 두만강 하구 46리 밖에서 30리 안으로 옮겨갔으며 중국은 러시아와의 변경선을 따라 동해로의 출해 권리를 획득하였다. 1992년 중·러 동쪽 국경선 담판이 끝난 후 중국은 두만강에서 출해 권리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하류에 러시아와 북한 간 철도 높이가 너무 낮고 수로가 침적된 진흙으로 막혀 300톤 이하의 작은 배만 통행할 수 있었다. 게다가 러시아는 중국이 두만강 출해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절성 고기배의 출해 통행만 허용할 뿐 상업성 운행은 동의하지 않는 등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고 있어 중국으로서는 사실상 출해권을 상실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림금숙).
중국 동북지방(만주)에서 남부지방까지 내륙철도로 물류를 수송하면 보름이 걸리고, 중국 동북지방에서 랴오닝성(遼寧省) 다롄(大連)항까지 철도를 이용하고, 대련항에서 해상수송로를 이용하여 중국 남부지방까지 수송하면 한 주간이 걸리는 데 비해, 중국 동북지방에서 남부지방까지 라진항을 거쳐 물류를 수송하면 나흘밖에 걸리지 않는다. 또한 부산항에서 중국 대련항까지 해상수송로를 이용하고, 대련항에서 연길까지 철도를 이용하여 물류를 수송하면 한 주간이 걸리는 데 비해, 부산항에서 라진항까지 해상수송로를 이용하고, 라진항에서 연길까지 철도를 이용하여 물류를 수송하면 사흘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처럼 라진항은 남측, 중국, 일본의 동북아시아 물류수송망에서 최단거리를 이어주는 전략적 항만인 것이다.
이러한 여건에서 중국이 불완전한 출해권을 얻은 날은 2008년 7월 22일이다. 그날 중국과 러시아는 ‘동북 국경선에 관한 추가의정서’에 서명하였다. 중국은 불완전한 출해권을 얻기 위해서 북측과 러시아에 각각 두만강 국경지대의 자국 영토 일부를 넘겨주었다. 중국이 얻은 불완전한 출해권이란 중국의 선박들이 북측과 러시아의 국경선이 지나는 두만강 하구의 17km 구간을 오갈 수 있는 두만강 자유항해권이다.
두만강 자유항해권을 얻자마자, 두만강 연안세관이 위치한 취안허(圈河)에 포구를 건설하였다. 취안허 포구공사는 2008년 10월 30일에 완공되었다. 중국 지린성 훈춘(琿春)에서 40km 떨어진 곳에 취안허가 있고, 취안허에서 두만강을 건너면 북측 세관이 있는 원정리이다. 취안허에서 20km 떨어진 곳에 팡촨(防川)이 있다. 중국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취안허에서 작은 수송선에 물자를 싣고 두만강 북측 수역을 따라 동해로 빠져나가 공해상에 대기하는 대형 수송선에 옮겨 싣는 것이다. 나가가 취안허와 라진항을 연결하여 차항출해(借港出海)을 실행하고 있다(통일뉴스).
이러한 역사의 굴곡을 느끼면서 피차 강역의 상실에 대한 기억이 엄존하는 현상에서의 국경이란, 북한과 중국의 국경에서도 다를 바 없는, 잠재적 갈등의 요인이다. 특히 한국의 잃어버린 강역에 대한 기억은 쓰라린 역사의 흉터이지만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중국의 두만강하구 출해권도 중국의 입장에서는 생손앓이(생인손)나 자가품과 같은 것이다. 반면 중국에 대한 대립적 입장에서는 중국의 동해로의 진출을 제한하는 출해권은 바로 중국의 멱살을 잡은 형상으로 보인다. [2023.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