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요 -- 60년대
아! 그리워라. 어렵던 그 시절, 서민들을 울리고 웃겼던 변사의 목소리.
마을 어귀에 유랑극단이나 서커스단의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마을은 이내 축제분위기에 휩싸인다.
해방과 전쟁을 겪으며 스러져간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두 주먹 불끈 쥔 우리 서민들에게 유랑극단이나
서커스단의 북소리만큼 반가운 소리가 또 있었을까.
TV도 없고 영화도 흔치 않던 그 시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희미한 불빛아래 모여 앉아 함께 웃고 함께 울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정이 넘치고 희망이 가득한 시기였다.
이렇게 온 국민의 노력으로 사회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고, 경제 개발 계획과 새마을 운동
등이 확산되어 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자며 활기찬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송의 영향력 확대에 힘입어 대중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미국식 대중 가요가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특히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던 가수나 작곡가, 연주자들이 60년대 초
한국 대중 가요계에 대거 진출하게 된다.
따라서 번안 가요나 미국풍이 강한 노래들이 많이 불리워졌다.
이 때 한명숙이나 현미처럼 재즈나 블루스 느낌의 중량감 있는 목소리, 패티김처럼 음폭이 넓고
돌파력 있는 대형 가수들이 등장한다.
또한 최희준, 김상희, 길옥윤 등 고학력자들의 가요계 진출도 새로운 추세로 나타난다.
그리고 중창단들의 출현도 두드러지는 하나의 흐름이었다.
<즐거운 잔치날>의 부르벨스사중창단, <꽃집의 아가씨>의 봉봉사중창단,
<빨간 마후라>의 쟈니부라더즈, <남성금지구역>의 이시스터즈 등이 경쾌하고 힘있는 화음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래에 담긴 내용들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듯 밝고 가벼운 것들이 많았다.
이별도 아름답게 표현되었고, 서민들의 삶도 따뜻하고 희망적으로 그려졌다.
등장인물도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꽃집 아가씨, 군인 아저씨,
아니면 기숙사 여학생이고 배경도 다방, 공원, 골목길, 전차안 등 소박한 도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 쉽지만은 않은 세상살이를 해학적이며 낙관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하지만 60년대 후반 트로트곡들에는 날로 발전해가는 도시와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시골의 극복할 수 없는 거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떠난 사람,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버림 받은 사람.
이러한 애절한 마음을 절절히 담아낸 가수가 바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였다.
이미자는 70년대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트로트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다.
이처럼 60년대는 도시적인 삶이 점차 그 틀을 잡아가던 시기이며,
해방 후 대중 가요의 기본적인 형식 또한 정립되기 시작한 때라 할 수 있다.
▶ 대표곡:
- <노란 샤스의 사나이>(61, 손석우 작사·작곡, 노래),
-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61, 손석우 작사·작곡, 최희준 노래),
- <서울의 아가씨>(62, 김남석 작사, 박석길 작곡, 이시스터즈 노래),
- <보고 싶은 얼굴>(64, 현암 작사,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
- <아빠의 청춘>(64, 반야월 작사, 손목인 작곡, 오기택 노래),
- <떠날 때는 말 없이>(64, 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
- <동백 아가씨>(64,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 <빨간 마후라>(65, 한운사 작사, 황문평 작곡, 쟈니부라더즈 노래),
- <내 이름은 소녀>(65, 하중희 작사, 김인배 작곡, 조애희 노래),
- <초우>(66, 박춘석 작사·작곡, 패티김 노래),
- <하숙생>(66, 김석야 작사, 김호길 작곡, 최희준 노래),
- <대마리 총각>(67, 진원 작사, 정민섭 작곡, 김상희 노래),
- <안개 낀 장충단공원>(67, 최지수 작사, 배상태 작곡, 배호 노래),
- <서울이여 안녕>(68, 한운사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
- <꽃집의 아가씨>(68, 지웅 작사, 홍현걸 작곡, 봉봉사중창단 노래),
- <서울의 찬가>(69, 길옥윤 작사·작곡, 패티김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