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산에서 지내다 밤이 오면 이제 한기를 확연히 느낄 수가 있다.
일을 하다 흘리는 땀도 줄어 들었을 뿐더러 대낮에 일해도 이제는 더위 먹을 일은 없을 것 같다.
8월은 하기휴가, 9월은 추석을 이용하여 밀린 일들을 집중적으로 처리해 낸다.
특히 추석 당일은 가급적 산에 엔진 소리를 들리지 않게 할려고 했는데 마음이 급해 오후에 부득불 예초기를
둘러메고 풀과의 전쟁에 나섰다. 계속 예초기를 돌려도 풀이 크고 뒤엉켜 있어 진도가 잘 나가질 않는다.
가끔씩은 묘목을 날리기도 한다. 추석 때 일차 마무리를 할려고 했는데 부득불 10월초 연휴까지 지나가야 될 것 같다.
하긴 그 때라도 마무리가 되면 다행이다.

두릅나무 꽃이다. 이놈 꽃은 그냥 보기에는 별로인데 사진으로 보니 더 좋아 보인다.
초기에는 두릅을 계속 심었는데 너무 잘 자라서 주위의 어린 나무 묘목들을 덮어서 어쩔 수 없이 이젠 잘라내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다 죽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봄에 두릅을 따서 먹어야 하고 일부는 묘목으로 살려 두어야 한다.
이놈들은 산 경계 부분이나 작은 나무를 키워야 할 곳을 택하여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나중에 시간이 더 나면 산 윗부분 나무를 정리하고 이놈들을 옮겨 심을 계획이다.
그러면 수확할 때도 크게 무겁지 않기에 들고 내려오기도 쉽고 또 봄철이기에 산 윗부분 오르기도 크게 힘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차 두릅 생산 목표량은 1톤이다. 물론 현재는 잘해야 100키로 수준이지만....

야관문으로도 불리우는 비수리꽃이다. 비수리가 인기가 있어 예초시 살려 두었더니 계속 번져 나가고 있다.
금년에도 산을 찾아온 몇 사람에게 술 담을 만큼만 베어 가라고 했다.
작년에 3.6리터짜리 통 대여섯개에 비수리를 빽빽히 넣고 술을 담아 두었는데 지금 집에 한병만 남아 있다.
금년에는 시간도 없고 술값만 계속 나가는 것 같아 일단은 그냥두고 있다.
이제 곧 씨가 흘러 내리고 잎이 질 것이다. 하긴 그냥 두면 씨가 떨어져서 내년에는 훨씬 더 많이 번질 것이다.

고추다. 매년 건고추를 50여근 정도 했는데 금년에는 풋고추를 너무 늦게까지 따는 바람에 20근을 목표로 했는데
이제 거의 목표량을 채웠다. 무농약으로 재배하기 때문에 자주 매실발효액, 식초 등을 줘야 하는데 9월부터는
시간이 없어 그만 두었다. 게다가 금년에는 가뭄이 심해 물도 매주 줘야 한다.
하지만 이미 수확한 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추비나 물주기를 중단했다.
시간이 나면 버섯에 물을 한번 더 주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금년에 고추 400여포기로 참 많은 나눔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
덕분에 고추 재배 기술도 많이 늘었고.... 이제 고추는 끝물이다.

날씨가 추워진 것을 제일 먼저 아는 것이 버섯이다. 서늘해 지기 시작하면 물을 주면 주는대로 곧바로 반응이 온다.
추석에는 100여키로를 따다가 주위사람들에게 인사를 할 수 있어 좋았다. 매주 가서 두어시간은 버섯 따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진한 버섯향을 맛으며 수확하는 느낌 또한 싫지 않다. 사진의 참나무는 2011년 봄에 종균을 넣은 것인데 작년 가을에는 조금 수확을 했고 금년 봄에는 변덕스러운 날씨때문에 자라다가 많이 얼어 죽었다. 이제 가을이 되니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날씨가 가물어도 너무 가물다. 그래서 버섯 원목 노지 재배가 무지 힘들 수 밖에 없다.

돌복숭아다. 가을에 돌복숭아를 따서 효소를 담는데 금년에는 날씨가 가물어 대부분 떨어지고 없다.
돌복숭아는 품종이 여러가지다. 그러나 내가 효소를 담는 것은 가을에 수확하는 것들이다.
봄철 조생종 보다는 아무래도 여름을 거친 것이 더 효능이 좋을 것 같아서다.
돌복숭아를 사서 효소를 담는 사람들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자기 농작물을 수확해서 파는 것은 문제 없지만 야생복숭아를 채취해서 파는 사람들이 문제다.
효소를 담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원 재료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야생에 있는 복숭아를 채취하는 사람은
급한 마음에 제대로 익지도 않은 것을 따는 경우가 많다.
봄철 밀양댐을 지나가다 보면 야생 복숭아 나무들이 있는데 매년 수확시기가 빨라지는 것을 느낀다.
하긴 남들이 따기 전에 먼저 따야 하니까 그럴 수 밖에 없기도 하다.
그래서 이왕 돈 주고 사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익은 것을, 그것도 가급적 가을철 생산물로 효소 담기를 권하고 싶다.

금년도 새롭게 발견한 것이 쇠비름의 효능이다. 산에서 일하다 보면 각종 벌레에 물릴 경우가 많아 피부과를 자주 들락거렸다.
부산 시내 피부과 10여곳 이상을 찾아 다녔고 좋다는 약도 다 발라 봤는데 쇠비름만한 것이 없었다.
웬만큼 가려운 곳도 쇠비름 쓱쓱 문지르면 되었다.
특히 밤에 가려울 때는 일어나서 약을 발라도 크게 효험이 없어 계속 긁어댈 경우가 많았고 어떨 때는 효과가 강력한 맨소래담을 얼굴에다 바르다가 부작용으로 고생하기도 했는데 이젠 쇠비름으로 대체하고 있다.
자다가 가려울 때도 쇠비름을 바르고 나면 편히 잘 수가 있다.
그래서 겨울에도 먹기 위해 쇠비름 밭을 자그마하게 만들었다. 자라면 뜯어서 발효시킬 계획인데 이놈들도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물을 간절히 간절히 기다리는 놈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다.

으름이다. 어릴적 산골에 사는 친구들에게 맛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던 놈이다. 그 때는 먹을 것이 마땅히 없던 시절이었던데다
소문으로만 듣고 입맛만 다셨는데 지금 우리산 주변은 이 놈들이 무척이나 많다. 생명력도 무지 강하다.
산 군데군데 또아리를 틀고 있다. 맛은 있지만 씨가 많아 먹기가 다소 거북하다. 대신 효소를 담으면 좋을 것 같다.
언제가 이놈들도 "항암효과가 개똥쑥의 30배" 뭐 이런 기사가 나서 대박 나기를 은근히 기대해 본다.
사실 개똥쑥이나 쇠비름도 거들떠 보지도 않다가 최근 갑자기 각광을 받지 않았던가..

금년에는 강우량이 부족해 수확이 영 시원찮다. 예년의 경우에는 50키로 이상은 땄는데 금년에는 겨우 10키로를 따서
설탕 8키로와 함께 유리병에 넣었다. 그런데 이 놈들 색깔이 너무 이쁘서 볼 때마다 신기하기만 하다.
향이 좋고 맛도 빼어나다(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효소다.
게다가 매일 삼투압 작용으로 즙액이 불어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값어치를 하는 놈이다.
물론 발효액도 가장 귀한 곳에만 조금씩 담아 선물을 하곤 한다. (끝)
- 출처 : 부산귀농학교를 졸업하고 밀양 단장면 장재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귀농인 오혁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