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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이란 독일어의 비바크(Biwak), 프랑스어의 비부악(Bivouac)이 어원으로 ‘Bi(주변)’와 ‘Wache(감시)’의 합성어로 알려져 있다.
산악인들에게 이 ‘비박’이란 단어는 더 이상 산행이 불가능해진 긴급 상황에서 텐트 없이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비박’ 하면 절벽 상의 좁은 턱에 걸터앉거나 혹은 눈밭에 쪼그리고 앉든지 혹은 설동을 파고 들어가 하룻밤을 견디는 등의 험악한 상황을 연상케 마련이다.
이 ‘비박’이 새로운 산행 행태로 자리 잡은 지 이미 오래다. 텐트를 이용한 야영에 비해 채비도 간단하고 텐트 안에서 지내는 야영생활에서 느낄 수 없는 신선함과 낭만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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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완도 백운봉 초원에서 타프를 치고 하룻밤을 지낸 뒤 일출을 맞고 있는 등산인들. / 북한산 인수봉 비박산행. 클라이머들이 서울시내 야경을 즐기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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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보고 하룻밤 지내노라면 자연·동료와 한결 친밀해져
이제 비박은 ‘비박파’ 산꾼들뿐 아니라 비박 전문 산악회까지 있을 정도로 하나의 산행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평범한 산행이나 캠핑 산행에 비해 훨씬 야성적이면서 즐거움도 크기 때문이다. ‘비박 맛’을 들인 산악인들은 한겨울에도 아늑한 텐트 대신 차가운 눈밭에서 그대로 누워 자기를 원한다. 텐트 안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답답하게 지내는 것보다 차갑더라도 맑은 대기를 그대로 마시면서 밤하늘의 별이나 달을 바라보다 꿈속에 빠져드는 게 짜릿하면서도 긴 여운이 남는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시기는 가을철이 가장 알맞고, 가을철 중 가장 좋은 날은 음력 대보름과 함께 1년 중 달이 가장 밝다는 한가위일 것이다. 밤하늘을 꽉 채울 만큼 커다랗고 대지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는 밝디밝은 보름달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자신이 달 속의 한 마리 토끼가 되어 방아찧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기도 할 것이다.
2004년부터 매월 한 차례씩 ‘침낭과 막걸리’란 명칭의 비박 산행 모임을 해온 송철웅(국민대 OB)씨는 “처음엔 단순히 짐을 줄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재미가 쏠쏠해졌다”며 “겨울에 들어서면서 무척 추울 줄 알고 긴장했는데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는 한겨울에도 견딜 만했고, 자다가 눈이 내려 아침에 설인으로 변한 모습에 즐거워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송씨는 “비록 천 한 꺼풀 차이지만 텐트 밖으로 나와 맑은 공기를 그대로 마시고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하룻밤을 보내는 사이 동료뿐 아니라 자연과 더욱 친밀해지는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낭만적인 비박을 꿈꾼다면 그에 앞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이 장비다. 텐트 없이 산 속에서 하룻밤을 지내려면 침낭과 매트리스는 기본이다. 침낭은 한겨울에는 영하 20℃ 이하로 떨어지는 추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우모가 1,200g 이상 들어간 제품이 필요하겠지만 선선한 기후를 보이는 봄가을에는 우모 용량 700~800g의 제품이 적당하다.
침낭은 겉감 소재가 드라이로프트와 같이 방수 제품도 있지만 값이 워낙 비싸 고산 등반과 같은 극한 등반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등산인에게는 필요치 않다. 대신 침낭커버만으로도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침낭커버가 없다면 통 비닐을 준비하는 것도 좋다. 습기가 찬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는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다.
침낭 외에도 바닥에 깔 은박 깔개와 매트리스 또한 중요한 비박 장비다. 나무에 거는 해먹은 습기를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허리 부위가 밑으로 쳐져 오래 자기에는 마땅치 않다. 그늘막이라 불리는 타프(tarp)는 필수지만 없다면 인원수에 맞는 크기의 비닐을 준비해 가도록 하자. 폭우에는 타프보다 더욱 효과가 좋은 것이 ‘비닐 타프’다.
이밖에 취사 장비, 랜턴도 필수 장비일 것이다. 비박지에서 편안하게 움직이려면 가벼운 슬리퍼를 가져가는 것도 좋다. 스티로폼 소재의 가벼운 샌들이 적당하다(비박 장비 기사 참조).
등산은 무게와의 싸움이란 얘기가 있듯이 비박도 짐을 가볍게 할수록 힘이 덜 들고 그만큼 즐거움도 배가된다. 특히 해먹는 재미에 집착하다 보면 짐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긴긴 밤을 간단한 빵으로 때우고 지낸다면 분위기가 너무 썰렁할 것이다. 비박 장소가 샘이나 계곡가라면 식수를 짊어질 부담이 없겠지만 능선이나 산정이라면 식수는 당연히 짊어지고 올라야 한다. 물주머니가 없을 경우 빈 페트병을 쓰면 된다. 냇물을 마시기 꺼리는 사람도 있지만 끓여 먹는 건 큰 문제가 없다.
식수를 줄이려면 물이 덜 들어가고 식후에도 물이 덜 먹히는 음식을 준비해야 한다. 한 끼 정도는 집에서 준비해 가거나 햇반이나 즉석밥 같은 냉동건조식품으로 해결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햇반은 포장 상태 그대로 끓이는 것보다 껍질을 벗겨내 밥만 코펠에 쏟아 부은 다음 물을 조금 넣고 약한 불에 데우면 훨씬 빨리 먹을 수 있다. 냉동건조식품 역시 마찬가지다. 찌개류는 한 끼쯤 먹지 않아도 큰 문제없을 것이다. 굳이 먹어야겠다면 물을 부어 끓이면 먹을 수 있도록 집에서 모든 준비를 해가든지, 혹은 즉석 제품을 가져가도록 한다.
쌀을 가져간다면 시중에 유통되는 씻은 쌀을 가져가거나 집에서 미리 씻어서 물기를 말린 다음 가져가야 편하다. 지퍼락 같은 진공 잠금 비닐도 유용하게 사용된다. 밑반찬을 조금씩 담아갈 수 있고 간식류의 겉포장을 분리해 담아가면 산에서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도 있다. 지퍼락은 시중에 다양한 사이즈의 제품이 나온다.
산꾼들에게 술이 빠질 수는 없는 일. 집에서 늘 먹는 기본 반찬에 반주에 맞출 안주거리 한 가지 정도면 저녁 분위기를 충분히 낼 수 있을 것이다. 안주거리는 물이나 조리가 필요없는 오리훈제나 족발 같은 완제품이 좋을 듯싶다. 고기를 구우려면 프라이팬 같은 취사장비가 필요하고 굽는 사이 주변의 맑은 공기를 탁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이튿날 곧바로 하산한다면 아침 식사에 크게 신경 쓸 필요 없겠으나 한나절 이상 산행을 해야 한다면 아침 식사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먹는 즐거움 때문에 첫날 짐을 지고 올라가는 데 너무 힘을 쏟으면 이튿날 산행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먹어야 힘을 쓴다고 하지만 실제 야영산행 이튿날 아침은 그리 많이 먹히지 않는다. 비박 산행 때만큼은 빵에 커피 한 잔 정도로 끝내도록 하자.
분유를 풀어 시리얼을 띄워 먹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날 먹다 남은 밥이 있다면 물을 부어 끓여 먹는 누룽지도 입맛 없는 아침에 먹기에 좋고 음식 쓰레기도 줄이고 코펠도 닦기 편해진다.
식단을 잘 짜고 그에 맞춰 취사구를 준비한다. 버너와 연료도 마찬가지다. 9월의 경우 한낮의 햇살은 따가울 정도이고 한밤중에도 기온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가스 버너로도 취사가 충분하다. 버너 불이 약하다 싶으면 가스통을 따뜻한 물에 담그도록 한다. 놀랄 만큼 화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해 떨어지기 전까지 비박 준비 마쳐야
캠핑이든 비박이든 가장 선행돼야 할 것이 사전 정보의 확보다. 계곡이냐 능선이냐에 따라 식단부터 야영장비에 이르기까지 차이가 많다. 물과 거리가 많이 떨어진 능선이나 산정에서 지낸다면 장비와 식량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하지만 캠핑장에서 지낸다거나 주차장과 거리가 멀지 않은 위치라면 짐에 대해 크게 신경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계획을 치밀하게 짜면 짤수록 비박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정맥이나 기맥을 종주할 때 피치 못하게 동네 뒷산 같은 데서 자야 할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새벽부터 운동하러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리에 편안한 비박을 하기 어렵다. 근교 산의 경우에도 새벽부터 올라오는 이들이 있다. 따라서 어느 산을 선택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후 어디쯤에서 비박할지 정하고 비박지까지 가는 길에서 가까운 샘터, 혹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어디 있는지 경험자나 지형도를 통해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단, 계절에 따라 물이 마를 수 있는 샘도 있고, 지형도에 표시돼 있더라도 실제로는 찾기 힘든 샘이나 물줄기가 많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장거리 능선종주를 하는 와중에 비박을 하느라 계곡에서 미리 물을 떠 갈 처지가 안 된다면, 비박 예상지역의 지형도를 잘 살펴 최대한 물길이 가까운 지점에서 발 빠르고 독도에 능한 사람이 물을 뜨러 내려갔다 와야 한다. 이때 수통은 배낭에 넣고 움직이도록 한다. 물통만 가져가면 물을 채워 올라올 때 손을 쓸 수 없어 다칠 수도 있다.
비박지에는 해가 떨어지기 한 시간 전쯤 도착해야 한다. 너무 어두우면 야영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비박의 즐거움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특히 모르는 지역을 찾을 때는 적어도 해가 지기 한 시간 전쯤 도착해 비박하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주변의 지형지물을 두루 살피도록 한다.
경사진 곳이나 물길은 피하고 평평한 곳이면 좋다. 물론 느닷없이 비가 퍼부을 경우를 대비해 타프를 설치할 수 있는 지지물이 주변에 있거나 혹은 대비할 만한 장소가 부근에 있는 곳이 좋다. 바람을 막아줄 나무로 둘러싸여 있는 곳도 아늑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보름달을 보는 것도 멋스럽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잔잔하다면 일망무제의 산정이나 사방이 터진 헬리콥터 비상착륙장이 최고의 달맞이 비박지가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최고의 비박지는 하늘이 트이고 부근에 샘이 있는 능선을 치지만 달맞이 산행을 한다고 꼭 산정이나 능선 조망처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한적한 계곡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보이는 보름달은 어쩌면 더욱 아름답고 낭만적일 수 있다. 계곡 비박은 한밤중 음악소리와 같은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더해져 분위기를 더욱 높여준다. 반면 계곡 물소리가 너무 크면 잠들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물줄기와 적당히 떨어진 곳을 잡도록 한다. 또 비가 올 경우 수위가 급격히 높아질 위험이 있는 협곡은 피해야 한다.
적당한 비박지를 찾았다면 일단 잠자리를 만드는 게 순서다. 우선 튀어나온 나뭇가지나 돌을 제거해 바닥을 정리한다. 풀이나 낙엽을 깔아주면 편한 잠자리를 만들 수 있다. 1인용 텐트인 비비색(Bivy Sack)이나 바닥 없는 천막인 비비 쉘터(Bivy Shelter)의 경우에는 설치만 하면 모든 게 끝나지만 그런 장비가 없을 경우 많은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우선 얇은 은박 깔개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매트리스, 침낭 순으로 깐다. 매트리스는 침낭을 펴고 누우면 딱 맞거나 규격이 짧은 것은 하체 부위가 벗어난다. 이때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막아줄 수 있는 게 은박 깔개다.
혼자일 경우 한쪽으로 매트리스를 펴고 남은 쪽을 침낭 위로 덮으면 이슬이나 가랑비 정도는 막을 수 있다. 물론 고어텍스 침낭커버 같은 게 있다면 이런 문제에 신경 쓸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비가 내릴 때 얼굴 부위를 가릴 수 있는 덮개는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우산도 그중 하나다.
날씨가 맑더라도 혹시 내릴지 모를 비에 대비하는 게 마니아다운 태도다. 요즘은 일기 변화가 워낙 심해 달이 휘영청 밝다가도 느닷없이 비가 퍼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무겁더라도 여름 피서철 사용하던 타프도 좋다. 타프는 출발 전 인원에 맞는 규격을 준비하도록 한다.
출발 전 타프에 끈이 제대로 달려 있나 꼼꼼히 확인하고, 비박지와 멀찌감치 떨어진 나무나 바위에도 걸 수 있도록 끈을 넉넉히 준비하도록 한다.
타프 대용으로 비닐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때 비닐은 날카로운 물체에 약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비닐을 잡아당길 때에도 귀퉁이에 그냥 끈을 묶지 말고 모아쥔 다음 나무나 작은 돌멩이를 모은 비닐 중간에 집어넣고 접어서 끈으로 묶어 당긴다면 더욱 힘을 받을 수 있다. 가운데를 높일 경우에는 등산용 폴을 세워 사용하면 되는데, 뾰족한 것이 닿으면 터져 나갈 위험이 있으므로 폴 맨 위쪽에 밥공기 같은 것을 얹으면 비닐에 닿는 면이 넓어 힘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취침에 앞서 주변 정리 잘해야
자 이제 밥도 해먹고 술도 가볍게 한 잔 하면서 비박 산행의 낭만을 만끽해보자. 그러나 잠자기 전 주변 정리는 꼭 해야 한다. 텐트를 쳤을 경우에는 모든 장비와 식량을 안에 넣으면 끝나지만 비박 산행 때는 하나 하나 세심하게 정리를 해야 한다. 이슬에 젖을 만한 것은 모두 타프나 비닐 안에 집어넣고, 음식물은 코펠에 집어넣은 다음 뚜껑이 열리지 않도록 돌멩이와 같은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도록 한다. 동물이 좋아하는 음식물은 나뭇가지에 끈을 걸어 매달아놓는 것도 요령이다.
침낭에 들어가기 앞서 옷은 뽀송뽀송한 것으로 갈아입는 게 숙면을 취하는 데 좋다. 양말은 벗거나 새것으로 갈아 신는 게 바람직하다. 추위에 약한 사람은 따뜻한 물을 담은 물통을 침낭 안에 넣고 잠을 자면 더욱 안락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침낭이 얇거나 추위를 많이 타고 겁이 많은 사람이 가운데 눕도록 한다. 한밤중에 주변을 밝힐 수 있는 랜턴과 같은 조명장비와 수통, 시계같은 것들은 머리맡에 놓아둔다.
대자연의 바람소리, 가을 산의 정취를 한껏 살리는 풀벌레소리 등을 기대하는 비박 산행이지만 야영 자체가 낯설거나 분위기에 자신없는 사람은 작은 음향기기를 준비하는 것도 좋다. 처음 혼자서 잘 때는 아주 작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온 신경이 쓰이고 두려운 마음이 들어 쉽게 잠을 자기 어렵다. 이럴 땐 MP3나 CD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다면 훨씬 자연스럽게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학창 시절 추석 이튿날 홀로 비박 산행에 나선 적이 있다. 한 달에 적어도 한 번은 홀로 비박 산행을 할 만큼 비박 산행의 낭만에 빠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비박 장비랄 게 특별한 게 없던 시절, 침낭과 얄팍한 스펀지 매트리스, 그리고 이슬을 피할 얇은 비닐이 전부였다.
그날 비박지는 명지산 귀목고개 아래 상판리계곡이었다. 해거름 무렵 계곡가 적당한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낙엽을 주워 바닥에 깔고 매트리스와 침낭을 깐 다음 버너에 코펠을 올려놓고 바로 옆에 피운 모닥불에 명절 때 남은 굴비를 구워가며 3홉들이 소주 한 병을 다 마셨다. 그 사이 한가위를 하루 넘긴 달은 정말 하늘을 꽉 채울 듯 커다랗고 동그랗게 떠올라 골짜기를 환하게 비춰 주었다. 지금도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건드리는 달빛과 가을 바람은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다.
달을 보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새벽 두어 시쯤 되었을 때다. 이마가 싸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을 슬며시 떠보니 총구가 내 이마에 닿아 있었다.
“꼼짝 마!”
이게 뭔 일인가 싶어 살펴보니 매복 훈련 나온 특전사 군인들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 귀목고개는 대남 침투로로 꼽히는 고개였다. 군인들은 신원을 확인한 다음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무딘 건지 생각이 없는 건지 곧바로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이튿날 아침, 계획대로 명지산 정상으로 향했다. 귀목고개를 거쳐 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향하던 중 ‘유격대’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바위 밑에 군인들이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구수한 냄새에 다가서니 오늘 새벽 “먹고 힘내라”며 군인들에게 건네준 굴비 냄새였다.
“봄 가을 두 차례 이곳에서 훈련하는데 내년 봄 또 그 자리에 계실 거죠?”
“그럼요. 그땐 굴비 대신 맛있는 동그랑땡 가져올게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올 추석 연휴 때에 그 자리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첫댓글 추석 다음날은 무조건 도봉산 10야영장(청룡사터)에 모여 산목련 나누에 헤먹걸고 보름달 보며 한 잔......크아!!!!!
코~~~~~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