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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에서 하룻밤 (천장암 홈 페이지)
 
 
 
카페 게시글
초기불교 스크랩 반야심경 한글 해석,과 핵심
천장암 추천 0 조회 108 13.07.14 05: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조계종 한글 반야심경 전문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에서 건지느니라.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은 공하여 나지도 멸하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이 없고 수 상 행 식도 없으며,
안 이 비 설 신 의도 없고,
색 성 향 미 촉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 집 멸 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이제 반야바라밀다주를 말하리라.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


반야심경의 핵심은

대승불교의 정수를 모아 놓은 반야심경을 한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너무 뜻풀이 식으로 번역하다 보면 운율도 맞지 않고 산만해지기 쉽다. 그렇다고 단지 한문자체 풀이식으로 번역하다 보면 경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없다.

이래 저래 한글화 작업은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반야심경이 너무 심오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니 반야심경 자체가 어렵게 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런 반야심경의 핵심은 무엇일까.

반야심경이 방대한 반야부 경전을 축약하여 핵심을 요약한 것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반야심경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는 무엇일까. 이에 관하여 서림스님은 천장사 카페에 올린 글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경전의 한글화 목적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야한다. 경을 한글화 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후대에 만들어진 반야심경 대신에 照見五蘊自性皆空너무나 잘 표현해 내고 있는 ‘무아의 특징 경’을 독송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라고 본다.

(서림스님, <종단 표준본 한글 반야심경> 유감 )

글에서 반야심경을 이해하려면 ‘조견오온개공’을 아는 것 부터라 하였다. 더 정확하게는 ‘조견오온자성개공(照見五蘊自性皆空)’이다. 오온이 아니라 ‘오온자성’을 아는 것을 말한다. 이 뜻만 정확하게 알면 반야심경의 뜻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이제까지 불자들은 불교를 너무 어렵게 접하였다. 뜻도 모른채 한문경전을 독송하다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불교를 신봉하고 있지만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부처님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특히 반야심경은 대승반야사상의 핵심에 대한 경이기 때문에 더욱 더 그 뜻이 난해하기 그지 없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비()’자 아니면 ‘무()’자 행렬이다. 그리고 그 뜻을 좀처럼 알 수 없는 ‘공()’자도 여러번 등장한다.

이렇게 비(), 무(), 공()으로 이루어져 있는 반야심경을 불자들이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어려운 반야심경을 이해하는 첫번째 단계가 바로 오온이 공한 것을 아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반야심경에서 ‘조견오온개공’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무아’와 같은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런 무아의 특성에 대하여 잘 표현한 것이 ‘무아의 특징경(S22.59)’인데, 이 경을 독송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아의 특징경’은 어떤 것일까.

무아의 특징경은 상윳따니까야에서 보여진다. 상윳따니까야서 22번째인 칸다상윳따(Khandha-samyutta)의 59번째 경이 ‘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또는 Pancavaggi Sutta,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또는 ive Brethren)’이다.

통제권 밖에 있는 내 몸

이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은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난 후 두 번째로 설한 경이라고 한다.첫 번째 경은 사성제와 팔정도가 언급되어 있는 초전법륜경이다. 두 번째 설한 것이 바로 이 경인데,이는 오온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무아일 수 밖에 없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그렇다면 오온이 왜 무아일 수 밖에 없을까. 경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내가 아니다.

수행승들이여, 만약 이 물질이 나라면 이 물질에 질병이 들 수가 없고 이 물질에 대하여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라.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상윳따니까야 S22.59, 전재성박사역)


이 말뜻은 무엇일까. 이는 나의 몸과 마음이 나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다른 말로 지배력이 없다는 말이다.

만약 이 몸이 내 것이라면 나의 뜻대로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몸이 아팟을때 몸이 진정한 내 것이라면 절대 아프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 상관없이 마음 뿐이지 몸은 계속 아프다.

지배력을 행사 할 수 없는 생각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내 몸은 나의 통제력 바깥에 있고, 그 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 할 수 없다. 따라서 나의 몸이라고 여겼던 것이 나의 몸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이렇게 통제불능이라면 마음은 어떨까. 부처님은 마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내가 아니므로 수행승들이여, 이 의식이 질병이 들 수가 있고 이 의식에 대하여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라. 나의 의식은 이렇게 되지 말라'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상윳따니까야 S22.59, 전재성박사역)

이는 오온 중에 의식에 관한 것이다. 의식 또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의식이 내 것이라면 내가 바라는 되어야 하지만,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생각’이다.

생각은 그저 일어나는 것이다. 나의 의지대로 생각을 하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나머지는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났을 때 생각이 조건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의식에 대해서 통제할 수 없어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성된 모든 것들은

이런 현상은 물질과 의식 뿐만아니라 감수(수), 지각(상), 형성(행)과 같이 오온이 모두 해당된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도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니, 수 상 행 식도 그러하니라~” 라 하여 이 아낫따락카나경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부처님은 오온이 나의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주면서 대화를 다음과 같이 이어 나가신다.

[세존] "수행승들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질은 영원한가 무상한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무상합니다."

[세존]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인가 즐거운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괴로운 것입니다."

[세존]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법을 '이것은 내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다' 라고 하는 것은 옳은 것인가?"

[수행승들]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상윳따니까야 S22.59, 전재성박사역)

오온이 나의 지배력을 벗어나 있기 때문에 결국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라고 부처님은 설명하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형성된 모든 것들이 무상, 고, 무아임을 문답식으로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차근 차근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염오, 이욕, 해탈

이 경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아니고 이것이 나의 자아가 아니다” 라고 아는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부처님은 무슨 말씀을 하셨을까. 어느 경에서나 볼 수 있는 상용구로서 다음과 같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보고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물질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감수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지각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형성에서도 싫어하여 떠나고 의식에서도 싫어하여 떠나며, 싫어하여 떠나서 사라지고 사라져서 해탈한다. 해탈하면 ‘나는 해탈했다’ 는 지혜가 생겨나서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졌다.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고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 라고 그는 분명히 안다.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Anatta-lakkhana Sutta- The Discourse on the Not-self Characteristic, 상윳따니까야 S22.59, 전재성박사역)

이는 염오, 이욕, 해탈을 말한다. 나의 몸과 마음이 나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것, 나의 자아라고 인식하였을 때 괴로움이 발생되기 때문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제자들은 오온에 대하여 염오,이욕하면 해탈할 것이라 한다.

친절한 부처님

무아사상은 불교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사상이라 한다. 이제까지 지구상에 나타났던 그 어느 종교도 무아를 주장하지 않았다. 모두 “나가 있다”거나, 나의 자아, 나의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였지 “나가 없다”고 주장한 종교나 사상은 없었고, 오로지 부처님만이 주장한 것이다. 이런 독특한 무아사상을 불자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반야심경에 ‘조견오온개공’이라 하여 무아사상과 관련된 용어가 등장하고 이어서 색수상행식에 대해서도 공한 것이라 하여 역시 무아에 대하여 이야기가하고 있지만 무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초기경에서는 너무나 친절하게 무아에 대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아낫따락카나경(무아의 특징경, S22.59)에서 보는 것처럼 부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내 것이 아님을 설명하였는데,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은 이들을 위하여 다섯가지 무더기로 분해하여 설명하였다. 그래서 물질(色)에서 부터 감수(受), 지각(想), 형성(行), 의식(識)으로 구분하여 이들이 나의 것이 아님을 설명 하였다. 그 예로서 “이렇게 되라” 또는 “이렇게 되지 말라”고 하였을 때 그렇게 되지 않으므로 내 것이 아님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오온이 통제되지 않고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아니고, 내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불자들이 한문으로 된 어려운 경전이나 또는 한문을 번역한 한글경전을 읽는 대신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접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런 부처님은 저 멀리 높은 곳에서 지켜 보거나 삼매에 든 부처님이 아니라 경전을 들여다 보면 언제든지 만나 볼 수 있는 친절한 부처님이다.


세상보기를 물거품 처럼, 금강경사구게와 상윳따니까야 포말경

금강경의 멋진 게송

금강경에 멋진 게송이 있다. 가장 많이 애송된다는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이라는 게송이다. 일체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라는 내용이다. 이는 모든 현상에 실체가 없음을 말한다.

금강경과 유사한 게송

그런데 이와 유사한 게송이 초기경전에 도처에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윳따니까야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Phe?api???pama? r?pa? 페나삔두빠망

vedan? bubbu?upam? 웨다나 붓불루빠마

Maricikupam? sann? 마리찌꾸빠마 산냐

sa?kh?r? kadal?pam?, 상카라 까다루빠마

M?y?pamanca vinn??a? 마유빠만짜 윈냐낭

d?pit? diccabandhun?. 디삐따 딧짜반두나

[세존]

물질은 포말과 같고

느낌은 수포와 같네.

지각은 아지랑이와 같고

형성은 파초와 같고

의식은 환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가 가르치셨네.

(페나삔두빠마경-Phe?api???pama sutta?- Foam-포말 비유의 경, 상윳따니까야 S21.2.5.3, 전재성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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