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콘 모종을 만들며
겨울은 길고도 추웠다.
그 겨울의 상처는 숙지원 곳곳에 남아 있다. 동백은 물론 추위에 잘 견디던 철쭉과 호랑가시나무까지 화상을 입은 거처럼 잿빛이다. 사람도 동상을 입으면 화상을 입은 것과 같은 증세를 보인다더니 나무도 예외가 아닌 듯 싶다.
다른 지역의 꽃소식이 들린 지 오래인데 아직 숙지원에는 여전히 춥다.
하우스 안에 심은 강낭콩도 절반쯤 동상에 시달리고 있다. 한 바퀴 돌아보니 평소에 비실거렸던 산수유나무와 홍매는 이제야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전도 늦어지는 것 같다.
어제(19일)는 토요일, 오후에 야콘 모종을 만들었다.
야콘은 건강식품이라고 알려졌지만 특별히 어떤 약효가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작년까지 숙지원의 주력작물이었으나
금년에는 100여주만 심을 작정이다.
지난주에 이미 100여주를 만들었으나, 어제 다시 친구에게 줄 작정으로 100주를 더 만들었다. 모종을 사서 심을 경우 작년 시세로 최소 6백 원으로 계산한다면 실제 현금으로 잡힌 것은 없으나 12만원을 절약한 셈이다.
일한 만큼 노동의 대가를 받는 일이 월급쟁이라고 다르지 않겠지만 농사역시 몸으로 때우는 작업이다.
다만 월급쟁이들의 노동의 대가가 일정하다면 농사하는 농민들은 노동의 대가가 시장가격에 달려있기에 일정하지 않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농사에는 출퇴근 시간의 부담이 없다. 월급쟁이들이 회사의 규정과 전례에 따라 간섭과 제재를 받는다면 농사는 자기 계획으로 일할 수 있다.
그렇지만 농사의 묘미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생물을 다루면서 느끼는 보람에 있지 않을까 한다.
야콘의 뿌리에서 관아를 떼어내고 그것을 포트에 담아 상토를 채우는 일은 매우 단순하다.
그러나 무조건 관아를 떼어내는 것은 아니다. 충실한 것을 골라야하고 잘 떼어지지 않는 것은 면도날로 오려내야 한다. 신경이 쓰이면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포트에 상토를 조금 넣고 관아를 심은 후 다시 상토를 덮어주는 작업도 강제로 시키는 일이라면 허리만 아플 일이다.
작은 온상을 만들고 차광막으로 가려주는 일, 싹이 트고 모종이 되기까지 마르지 않도록 물을 주는 일도 게으르면 안 되는 일이다.
자란 모종을 본밭에 옮기는 일은 몇 시간은 좋게 걸리는 일이다.
그러나 엉성한 뿌리 덩이에서 떼어 낸 관아가 자라 모종이 되고, 그 모종이 해바라기처럼 자라 노랗게 작은 꽃을 피우고, 다시 굵은 뿌리를 달고 나오는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를 어떻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모든 피로를 일거에 씻어내기에 남음이 있음을 알기에 지금 나는 모종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모종 값 600원에 100주를 사다 심고, 그 해에 야콘 가격이 10kg당 3만원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또 기후조건이 좋았을 경우 얻어지는 소득은 얼추 얼마나 될까?
내 경험이지만 모종 1주당 생산할 수 있는 야콘은 최소 약 2kg에서 최대 약6kg을 수확 가능했는데 평균 4kg쯤 되었다고 본다. 100주라면 약 400kg수확가능하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전량을 상품화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캘 때 부러진 것 등을 제하면 상품으로 팔 수 있는 것은 많아야 100kg을 넘지 않았다. 10kg박스로 10개 정도 나오는데 판매 금액은 30만원쯤 된다는 계산이다.
30만원에서 모종 값 6만원을 제하면 24만원이 남는데 거기에 상자 값, 운송비를 계산하면 남는 수익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상품성이 없는 것은 그대로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즙을 내어 먹는다고 하지만 돈으로 환산하면 보이지 않는 수익은 약간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판매하지 않겠다고 작정이기에 나의 작업을 단순한 노동의 가치로 계산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시간당 도시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 가치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은 나의 즐거움과 생의 의미를 반감시키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저 우리 가족이 먹고, 신세진 분들에게 선물하고, 마을 분들과 나눈다면 그것이 남는 것 아니겠는가!
(위와 아래는 하우스 안의 풍경)
모종으로 만든 야콘은 4월 중순 이후 본 밭에 옮겨 심을 것이다.
지난해에는 200주를 심었으나 일기가 나빠 거의 망치고 말았다.
금년은 어떨지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좋을 것이라는 그래서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출발한다.
농산물은 농민들의 피와 땀의 소산이다.
혹시 시골 부모님이나 친지들이 보내준 농산물을 받은 사람들은 쌀 한 톨, 고구마 한 개라도 허투루 여기지 말일이다.
감사하게 먹을 일이다.
그리고 농산물 가격이 비싸다고 농민들을 사시로 보지 말일이다.
나에게 농사는 누구에게 간섭받지 않고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세우는 취미생활이요, 자연속에서 나의 존재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생명의 경이를 느끼는 시간이다.
이제 하늘의 도움만 남았다.
2011.3.20.
첫댓글 산수유와 홍매가 꽃망울을 터뜨리면 장관이겠습니다. 농사짓기, 땀흘리는 노동 속에서 나의 존재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 이오덕 선생님께선 사람은 노동을 해야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농사꾼이야말로 그 어떤 직업보다도 가장 귀한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주말 텃밭 농사는 시작하셨는지요?
술 취한 사람이 성한 사람에게 기분을 전할 수 없듯이 농사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모를 것입니다. 농업은 미래의 산업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꼴을 보면 식량 문제 걱정이 큰데 정부는 대책이 없는 것아 안타깝습니다. 결국 서민들만 죽어날 것 같습니다.
지난주 일요일에 텃밭위치를 지정받아서 토양 살충성분이 있는 님 케익을 섞어주었는데 최소 10일 정도는 이 상태로 놔둬야 된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퇴비주고 또 1주일 정도 방치하면 모종이나 씨앗은 4월10일쯤에 뿌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텃밭이 5평에 불과해서 그야말로 재미로 하는 농사인데.. 과연 즐기면서 지속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확을 하면 느낌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
5평의 농사라도 기본적으로 삽과 괭이와 호미는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텃밭에 많은 살충제는 유익한 벌레도 죽일 수 있습니다. 또 거름도 욕심껏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몇 년 전 너무 거름을 많이 했더니 옥수수가 영양과다로 키만 한 없이 크고 열매가 부실해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가족의 놀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