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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산 산행코스
ㅇ장천재- 금강굴- 구정봉- 억새능선-연대봉-정원석- 양근암- 장천재(5시간)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낳은 장흥의 억새소리 장흥 천관산 억새

일렁이는 억새밭 위의 창공으로 패러글라이더들이 새처럼 날아다니는 능선. 꼭 가보고 싶은 가을 천관산의 정경이다.
“천관산 억새 정말 멋지던데요. 얼른 가 보세요.” “바위 꽃이 삐쭉삐쭉 솟아 임금님 모자처럼 생겼다는 산 말이죠?” “네. 맞아요. 지금 억새가 피어 장관이어요.” 20대부터 전국의 산을 훑기 시작해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 명산대천을 다니시는 답사 여행사 사장님의 말씀은 늘 정확하고 고맙다.
천관산은 전남 장흥에 있는 바위산이다. 벼가 누렇게 익고 있는 들판을 지나고 탐진강을 건너 관산읍에 이르니 멀리서도 성냥개비처럼 솟은 바위들이 보인다. 한눈에 봉우리임을 알 수 있다.
천관산은 남도 제일의 지리산을 비롯해 아기단풍이 많은 내장산, 바위덩어리 월출산, 처녀림을 간직한 내변산 등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에 속한다. 길쭉한 바위들이 막대기처럼 솟아 있는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을 닮았다 해서 천관산이라 불린다.
정상 능선은 억새가 많이 덮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네의 수염처럼 억새가 희다. 환희대와 연대봉을 잇는 1km 정도의 능선을 비롯해 서쪽의 구룡봉에 이르기까지 억새가 폭넓게 군락을 이루고 있다. 10월 중순, 하순이 절정이다.
일렁이는 억새밭 위의 창공으로 패러글라이더들이 새처럼 날아다닌다. 다도해에 면한 가을 천관산의 정경이다. 바위들은 수석전시장처럼 무리 지어 솟아 있다. 남도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은 사나이에게 활력과 기개를 불러 넣어 주는 풍경이다.
천관산 억새풀은 장흥이 낳은 소설가 한승원에게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청년 시절 천관산 자락에 있는 천관사에서 글 공부를 할 때 들었던 슬픈 억새 소리를 생각하며 쓴 소설이다.
나에게 장흥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어렸을 적에 “워매 장흥으로 넘어가 부렀어야”라는 소리를 가끔 들었다 읍내 주막 등에서 혈기방자한 청년들이 취중에 싸움을 벌여 당사자들끼리 해결을 보지 못하고 광주 지방법원의 지원이 있는 장흥으로 소송 건이 넘어가 누군가가 곧 징역살이를 하게 됐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이청준의 ‘이어도’ , ‘당신들의 천국’, 한승원의 ‘목선’ 같은 작품들 덕분에 장흥은 이제 공포가 아니라 푸근한 문향의 이미지로 다가오게 되었다.
이 두 소설가가 태어난 곳이 천관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회진면 포곡리와 신상리 해안마을이다. 갯마을과 포구, 그리고 듬직한 천관산은 이들의 유년시절을 살찌워 준 영감의 창고였던 것이다.
등산은 장천재 코스가 대표적이다. 장천재는 조선시대 실학자 존재 위백규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재(齋)’는 고개가 아니라 제사를 올리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뜻이다. 원래 조선시대 위씨 성을 가진 한 하급관리가 이곳에 모친의 묘각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데에서 장천재라 했지만 훗날 위백규의 연구소 겸 강의실로 쓰였다.

장천재에는 범상치 않아 뵈는 소나무가 삐뚜름히 서 있다. 주민들은 이 나무가 우는 소리로 날씨 예측을 했다고 한다. 600년이 넘은 소나무다. 체육공원을 지나면서 본격 등산이 시작된다. 활엽수림과 조릿대숲을 지나 40분쯤 오르니 전망이 확 트인다. 회진포도 시야에 들어온다. 그런데 계곡 아래에서 밀고 올라오는 바람 소리가 마치 용의 포효처럼 굉장했다. 떡갈나무 잎은 고물상 집 녹슨 지붕처럼 이울고 있고, 바람은 계속 원시 울음을 울어대는 산길, 먹장구름이라도 끼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노승봉에 이를 즈음 신기란 바위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세봉에 이르자 육중한 바위들이 장수들처럼 무리 지어 서 있다. 군기가 바싹 든 군인들의 기세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한승원 작가의 가슴을 절절이 울렸던 억새가 천지사방에 깔려 하염없이 나부낀다.
환희대에 오르면 고생 끝이다. 환희대(720m)는 대장봉의 다른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성취하고 환희를 얻게 해 준다는 평평한 바위다. 환희대에서 정상인 연대봉(723m)까지 1km 가량 고운 억새길이 열려 있다. 구룡봉(675m)쪽도 역광을 받아 희끗희끗 빛이 난다.
은빛 억새 능선 위에는 패러글라이더들이 유유히 날고 있다. 새처럼 고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꾼다. 카메라를 향하자, 한 패러글라이더가 머리 위까지 내려와 손을 흔들어 준다. 얼굴을 보니 아까 앞뒤로 올라왔던 아저씨다.
연대봉은 연기를 피워 올리던 봉우리, 즉 봉수대다. 지금은 돌을 튼튼하게 쌓아 올려 옛 면모를 되찾았다. 조선 초기에 연기나 불을 피워 국가의 위급한 상황을 중앙정부에 알리던 긴급신호 시설이다. 봉수대에서는 득량만과 회진 포구, 노력도, 완도군의 조약도 고금도 등이 시원하게 보인다. 천관산 등산 코스는 크게 장천재, 천관산 자연휴양림, 탑산사 코스가 있다. 어디로 오르든 4~5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장천재에서는 1시간 30분 정도면 정상에 갈 수 있다. 천관사쪽에서는 20~30분 더 걸린다. 탑산사, 휴양림 쪽에서 연대봉까지는 각각 1시간 30분 걸린다. 탑산사는 해발 300m 중턱에 있으며 자동차로 갈 수 있다.
1박2일 정도 계획했으면 회진포구 일대와 이청준, 한승원 생가마을 들을 둘러보고 강진으로 가서 청자가마터와 박물관, 영랑생가, 다산초당 등을 둘러보거나 아예 보성쪽으로 향해 차밭을 보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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