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내 수준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대수학’이라고 하는 말의 뜻조차 모르면서 이 책을 읽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짓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겨우 대수학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나름대로 대단한 진전이었지만
허수는 여전히 안갯속이었습니다.
그런 허수의 세계를 밝혀낸 이들과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말해 본다면
비록 약간 어수선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될 것입니다.
“지난 300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1의 정체를 아무리 열심히 연구했어도
이것을 내면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없었다.
이해할 만한 ‘내면의 경험’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복소수와 삼각함수를 연결하는 ‘드무아부르의 방정식’에서
드무아부르는 복소수와 삼각함수 사이의 유사성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한다.
유사성은 수학 전반에 걸쳐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불안해 보이는 유사성이 가장 큰 결실을 맺으며,
수학자들로 하여금 더 확장된 구조 속에 놓고 보면 비슷해 보이는 수학적 대상들이
실은 동일하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자극한다.
새로운 유사성이 발견될수록 ‘확장된 구조’는 무르익는다.
허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던 인물들로는
카스파르 베셀, 아르강, 르장드르,
수학의 문제점들을 솔직하게 지적했던 스탕달을 꼽을 수 있는데,
베셀과 아르강 그리고 프랑세는 한결같이
√-1을 ‘+1과 –1 사이에서 기하학적 의미를 갖는 양’으로 생각했으며,
이 논리에 의거하여 평면 위에서 +1과 –1의 중간지점에 √-1을 표기했다.
베셀과 아르강 그리고 프랑세는 한결같이
√-1을 ‘+1과 –1 사이에서 기하학적 의미를 갖는 양’으로 생각했으며,
이 논리에 의거하여 평면 위에서 +1과 –1의 중간지점에 √-1을 표기했다.
또한 그들보다 한 세기 전에 활동했던 존 월리스는
음수의 제곱근을 일종의 기하평균으로 간주했다.
아르강의 회고록을 보면 ‘변환으로서의 수’의 역할이 설명되어 있다.
이 논리에 따라 –1을 곱하는 연산을 180도 회전에 대응시키면
–1은 일종의 변환으로 취급되어 두 개의 제곱근을 갖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90도 회전하는 방법은 시계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 두 가지가 있다.
프랑세가 논문에서 제안한 ‘허수 상상법’은 특별한 관심을 끈다.
그는 논문의 주요 부분을 ‘정리와 따름정리’로 요약했다.
그중 하나인 ‘따름정리3’은
‘허수는 양수나 음수처럼 실제적인 양이며 평면 상에서 위치만 다르다.
허수는 실수와 수직한 방향에 위치한다.’
이것은 프랑세가 자신의 직관을 그다지 적절치 못한 논리로 포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프랑세와 아르강이 활발히 의견을 주고받고 여기에 제르곤느도 한몫 했다.
이들은 복소수에 대한 기하학적 관점을 발전시키고
세르보어가 ‘기하학적 해석은
모호한 대수학을 가리는 일종의 가면이 아니냐’고 의심했던 것은 1813년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코시가 복소평면에서의 경로적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여
기하학적 관점의 유용성을 입증하자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코시는 자신의 논문을 통해
복소평면의 기하학이 복소수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임을 입증했다.
복소수에 관한 대수학이 기하학을 명확하게 설명한 것처럼
기하학도 대수학을 확립하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 셈이다.
그리고 모든 위대한 발견이 그렇듯이
코시의 논문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현대수학의 세계로 도약하는 출발점일 뿐이었다.
‘+1과 –1은 쌍둥이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ί와 -ί를 쌍둥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된다.
+1과 –1은 서로 다른 대수적 특성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1은 제곱해도 달라지지 않지만 –1은 제곱하면 달라진다.
하지만 +ί와 -ί는 덧셈과 곱셈을 모두 동원해도 달라지기는 하지만 구별되지는 않는다.
대수적 방법으로 구별할 수 없다면 이들은 동일한 객체라고 보는 것이다.”
그것이 충분히 아름다울 것이라는 데까지는 헤아림이 미치지만
아직도 여전히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허수’의 세계는
책을 읽는 동안 ‘수학이라는 세계’가 얼마나 깊고 넓고 묵직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수학자라는 전공자들이 알고 있는 것들을
상식의 수준으로 끌어내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줄
수학 지성을 기대하는 것,
수학에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이 종교적 ‘믿음’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헤아리면
우리 시대에 통용되는 믿음의 대부분은
믿음이 아니라 망상이라는 것까지 살피게 한 이 책은
비록 알고 싶던 ‘허수’에 대한 것은 별로 알아내지 못했으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고 봅니다.
틈나는 대로 이에 관련된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
그리고 읽으면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겠다는 자리까지 왔다는 것은
무지의 상태에서 세계를 읽어내려고 했던 내게는
이만저만 큰 소득이 아니었다는 말을 하면서
정리한 것을 소개합니다.
날마다 좋은 날!!!
키작은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