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의 행적은 12살 때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사건 외에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까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없다. 다만 누가가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눅2:39)'고 밝힐 뿐이다.
1) 12살 때의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소년 예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년에 세 번 곧 무교절(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에 성전에 와서 하나님께 얼굴을 보임으로 자녀됨을 증명케 하였다. 이에 백성들은 나라의 어느 곳에 살던 일년에 세 번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절기를 지켰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신16:16-17)
요셉과 마리아도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이번 해 유월절에는 12살 된 소년 예수님이 동행했다. 처음으로 성전에 올라가신 소년 예수는 갈릴리에서 보지 못했던 새로운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8일간의 무교절(유월절) 절기가 끝난 후 갈릴리로 돌아가는 길에 소년 예수는 일행과 함께하지 않고 성전에 남아 랍비들과 성경에 대해 묻고 답하기를 반복했는데 듣는 자가 다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긴다.

소년 예수님이 보셨을 헤롯성전모형

맨 앞의 계단은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을 분리하며 담이 있어 가까이에서는 성전의 모습은 볼 수 없다. 여인의 뜰이 약간보이고 다음으로 니카노르문, 성전이 차례로 보인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남쪽 계단의 모습 (모형)
계단 사이의 미크베(정결례탕)이 보이고 양옆에 훌다문(double gate, triple gate)문이 보이며 위로 왕의 행각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 훌다문을 들어가 올라가면 성전 마당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나온다.

북동쪽에서 본 성전모습과 뒤편의 왕의 행각
왕의 행각 앞에 훌다문을 통해 올라오는 지하통로와 연결된 계단이 보인다.

헤롯 성전의 단면도
요셉과 마리아는 하룻길을 걸어 도착한 곳에서(아마도 여리고) 무리중에 소년 예수를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길을 되돌아오며 사흘을 찾았고 성전에서 예수를 발견한다. 성전에서 소년 예수를 발견한 마리아는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2:48)”고 묻지만 예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반문한다. 부모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였고 소년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가서 순종하여 받드신다. 소년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신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눅2:52)

예루살렘과 여리고사이에 있어 꼭 지나야 하는 와디켈트
(사진의 중앙에 보이는 건물은 수도원이며 사진의 오른쪽 위로 멀리 여리고 뒤편 산의 시험산 수도원이 보인다)
2) 12살 때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신 이유
12살이 되기 전까지 요셉과 마리아는 절기를 지키기 위한 여행길에 소년 예수와 동행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성경에 나타나지 않지만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여기서는 논점이 아니기에 짧게 설명함).
첫째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리던 유대를 로마에서 파견된 총독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헤롯 대왕이 죽은 후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에서 돌아와 유대에 머물려했지만 폭정을 하는 헤롯 아켈라오가 유대의 분봉왕이었기에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살았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 아켈라오가 10년을 다스린 후 유대는 로마의 총독인이 코포니우스가 다스렸는데(AD6-9년) 이 시기가 소년 예수가 12살 쯤 되었을 시기와 맞물린다. 소년 예수에게 위험이 될 아켈라오가 실각한 후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여행에 동행할 것을 결심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마2:22)
둘째는 12살이면 성인식을 하고 하나님을 율법을 지키기로 선언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13살이 되는 때 안식일에 통곡의 벽이나 회당에서 성인식을 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1-2년 정도를 준비한 성인식은 하나님의 계명을 읽은 후 그 계명을 지키겠다는 약속과 함께 일주일 전 받은 탈릿(기도보)을 쓰고 기도한다(탈릿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탈릿을 머리에서 어깨로 몸을 둘러 감싼 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이것이 성인식이다. 성인식을 하고 나면 이제 독립적으로 하나님과 기도를 통해 대화할 수 있는 특권을 행사하게 된다. 또한 회당에 모여 하나님께 경배할 수 있는 최소인원이 10명인데 이 10명의 기준이 성인식을 한 13세 이상의 남자이다. 성인식을 하면 자기 신앙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볼 수 있다. 혹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께서도 이때 성인식을 하지 않으셨을까?
성경적 풍습(유대 풍습)으로 본다면 13살의 나이가 독립적으로 하나님과의 신앙을 정립하는 시기라 볼 수 있다.
현대를 사는 우리 기독인 부모들과 그들을 맡고 있는 목사, 전도사, 교사선생님들은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이 되는 시기의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아직도 어린아이로서 대우하거나 신앙에 있어서 그들 시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신앙을 방치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경적으로 12-13살은 자신의 신앙에 책임을 지는 나이이다. 15살쯤 되어 엘라골짜기에서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도 성인식을 하며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언하고 광야에서 양을 치며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기에 골리앗을 물리치는 믿음이 있었지 않을까 생각한다(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는 다음에).

탈릿(기도보)과 테필린(경문, 이마와 팔에 참)을 착용하고 기도하는 유대인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 준비하는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