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다페스트의 두 얼굴
혹은 부다페스트의 낮과 밤."
<황금빛#1- 할 말 없어지는 페스트의 야경. Credit:본인>
잠을 청하려 눈을 감았다. 헌데 '페스트의 황금빛 야경'이 아른거린다. 눈을 감은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고 있다. 그래. 어제 매혹적인 그 광경 앞에 할 말을 잃었었지. 그땐 놀랬다기보단, 초집중 상태에 가까웠었지.
맘속 깊은 곳에서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다행이라고. 영화 <글루미 선데이>처럼 부다페스트가 우울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말이다. 사실 부다페스트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프라하보다 상대적으로 별로일 것 같다는 섣부른 판단. 하지만 그 불안감은 '고마움'으로 바뀌었다. 페스트의 화려함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았다.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오히려 따뜻했다. 고맙게도 이곳의 '화려한 따뜻함'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황금빛#2- '화려한 따뜻함'. 한폭의 그림이 되어 내게 스며들었던 순간. Credit:본인>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들뜬 마음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부다페스트의 낮'은 과연 어떨까. 낮도 밤처럼 화려한 황금빛일까 혹은 은은한 은빛일까. 온갖 호기심들이 귓가를 간지럽힌다. 어느새 '부다페스트 중앙시장(Budapest Great Market Hall)'에 다다랐다. 규모를 보면 자이언트급이지만, 이곳의 품목들은 오히려 소박하고 수수하다.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Credit:en.wikipedia.org> <은빛#1- 부다페스트 중앙시장에서 먹은 점심, '랑고쉬'. Credit:본인>
신기하게 생긴 이것은 헝가리 대표 간식 '랑고쉬(Langos)'. 딱딱한 크레페 or 미니 피자?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헌데 반죽이 질기기 때문에 쉽게 썰리지 않는다. 다 먹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려서 포만감도 최고다. 간식치곤 너무나 배불렀다는 아이러니한 사실..
음식이 안 맞아서 고생했던 영국과 달리, 체코나 헝가리(심지어 헝가리에는 한국처럼 뷔페 레스토랑도 있다!)의 음식은 동양인 입맛에 아주 잘 맞는다. 특히 헝가리에선 가장 자주 먹고 가장 사랑했던 메뉴가 하나 있는데, 레스토랑 or 값비싼 음식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아직도 그 맛(닭강정과 비슷)을 잊을 수 없다. 밥다운 밥을 먹지 못하던 내게 이 메뉴는 한줄기 빛 같은 은은한 '은빛'이었다.
<은빛#2- 부다페스트 대형 백화점 'WestEnd' 푸드코트, 중국음식 베이징덕 메뉴. Credit:본인>
헝가리의 역사적 랜드마크 '영웅광장'에 도착했다. 건국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1896년에 지어진 이곳. 헝가리의 역대 중요인물들이 조각되어 있다. 참고로 우뚝 솟은 중앙기둥의 조각상은 '가브리엘 대천사'다. 보다시피 이곳은 화려하지 않다. 그럼에도, 여러 관광지의 입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연일 사람들로 붐빈다.
<헝가리 건국 천년 기념 영웅광장. Credit: commons.wikimedia.org/본인>
영웅광장을 지나 안쪽으로 5분 정도 들어가면, 묘한 느낌의 '바이다후냐드성(Vajdahunyad)'이 나온다. 이곳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성'을 본떠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프라하처럼 활기차거나 파스텔톤의 동화 같은 분위기는 아니다. 무게감 있는 아우라가 몸을 휘감았다. 몽환적이기도 했고 은은하게 내려앉은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랄까. 참 묘했다. 헌데 성의 정문으로 가니, 색다른 광경이 펼쳐진다.
<은빛#3- 루마니아의 드라큘라성을 재현한, 헝가리의 바이다후냐드성. Credit:본인>
어라. 옆에서 계속 무섭다고 외쳐대는 친구의 반응처럼, 귀신의 집 혹은 납량특집 같은 풍경을 기대했건만. 생뚱맞게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이게 뭐지. 후각이 예민해질 정도다. 주위를 둘러본다. 그야말로 플리마켓이 따로 없다. 귀여운 소품부터 음식, 음료까지 가지각색 상품들이 즐비해 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만큼 상큼한 미니커피숍(오른쪽 아래 사진)도 보이고 아이디어 소품, 빈티지 소품을 파는 노점상들도 성업 중이다.
<무섭지않아요. 해치지않아요. 바이다후냐드성의 온화한 외관. Credit:본인>
이곳이 참 맘에 들었다. 적당히 북적거리고 적당히 조용한 이곳. 너무 시끄러워서 정신없지도 않고 너무 조용해서 아예 풀어져버리지도 않는 이곳. 마치 '백색소음(귀에 쉽게 익숙해져 방해되지 않는 소음, 사랑스러운 아기들을 진정시키는 소음)'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진정됐다.
백색소음 같은
'은은한 풍경'으로
그대를 초대할게요.
<은빛#4- 바이다후냐드성의 마음을 진정시켜주는 백색풍경. Credit:본인>
부다페스트엔
강렬한 황금빛만 있는 게 아녜요.
은은하게 나를 치유하는
은빛 풍경이 참 많아요.
부다페스트의 낮은 은빛.
부다페스트의 밤은 황금빛.
마지막으로
'은빛하트꽃'을
그대에게 바칠게요.
은은한 빛으로
그댈 감싸줄 거예요.
<은빛#5- 바이다후냐드의 독특한꽃밭.Credit: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