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더욱 재밌는 법이다.
지난해 겨울 새 다이어리 첫 장에 2015년 결혼계획을 써놓았다. 흘러 흘러 살다 보니 어느새 올해도 가을이 왔건만 나는 결혼식장이 아닌 지구 반대편 이름 모를 들판에 서있다. 그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이기도 한편으론 행복해 보이기도 하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딱 일주일 만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하기 전까지 정신이 없었다. 3주 동안의 일을 미리 다 해치워야 캐나다에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워크머신 스위치를 켜고 풀가동을 하다 보니 눈가에 주름이 하나쯤은 더 는 것 같았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엄연히 말하면 출장이었다. 출장을 여행처럼, 여행을 출장처럼 다닐 수 있어 참 감사하기도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나는 이 일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것이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내려놓는 여행', '비우는 여행', '진짜 여행'을 하자고 마음을 먹지만 그것도 잠시. 달리는 차 안에서도 쉴 새 없이 셔터를 누르고, 더듬이를 세워 레이더망을 작동시킨다. 다신 여기에 또 못 올 사람처럼 눈에 불을 켜고 말이다. 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번 캐나다 여행은 '내 인생의 여행'으로 꼽을 만큼 행복한 여행이었다. 짤막하게 일정을 요약하면 14일의 캐나다 여행 중 10일은 단체여행, 이틀은 개인여행, 나머지 이틀은 비행기에서 시간을 보냈다. 캐나다 서쪽 끝 BC 주와 남동쪽 끝 노바스코샤 주, PEI까지 세 개의 주를 여행했는데 서쪽 끝에서 동쪽 끝을 횡단한 셈이다.
여행을 가면 나는 바보가 된다. 수많은 풍경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고, 음식을 먹지만 결론은 십중팔구 "참 좋았다"로 귀결된다. 마치 초등학교 1학년생의 그림일기장처럼 말이다. 조금 더 멋지게, 있어 보이게 표현할 방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뼛속까지 여행작가가 되기는 그른 것 같다. 본능적으로 "우와~ 좋다!", "진짜 좋다!"라는 말만 수백번, 수천번 외치다 왔다. 나의 짧은 표현 실력을 탓할 수밖에......
아름다운 풍경 앞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나? 그저 본능에 충실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ㅠ_ㅠ;그래도 다행이다. 나에겐 카메라가 있으니 백문이 불여일견. 참고로 14일 동안 굉장한 날씨 운이 따랐다. 단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여행의 시작은 옐로우 빅버스와 함께!
단체여행기간 동안 엄청 큰 노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캐나다,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인도, 멕시코, 중국, 한국 9개국에서 온 스물두 명의 멤버처음에는 서먹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내 집이 네 집이고, 네 집이 내 집이니 언제든지 놀러 오라는 사이가 되었다. 내 옆에 있는 두 여자는 한국인처럼 보이지만 중국인이다.
▲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노스밴쿠버 카필라노 서스펜션 클리프 워크 (Cliff Walk)
밴쿠버 다운타운에서 차로 30여분, 노스밴쿠버 카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에는 울창한 숲과 계곡이 펼쳐진다. 아찔한 계곡에 매달린 서스펜션 브리지가 메인이지만 2011년에 새롭게 만들어진 클리프워크(Cliff Walk)는 카필라노 계곡의 새로운 명물로 떠올랐다. 절벽을 따라 만들어진 좁은 산책로에서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 캐나다 렌터카여행
단체여행 멤버들과 헤어지고 이틀 동안은 차를 렌트했다. 캐나다는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인데 갈 때마다 다른 느낌이다. 그래서 캐나다를 '끝없는 발견'이라고 하나보다.
▲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PEI) 드라이브
캐나다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직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지도상으로는 바로 옆인데 그 거리가 어마어마하다. 렌터카를 빌리고 2.5일 동안 1600km를 달렸으니 한국으로 치면 서울- 부산을 왕복하고 한 번 더 갔다 온 셈이다.
▲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PEI) 창밖으로 펼쳐지는 그림같은 풍경
창문을 내리니 시원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온다. 들판이 지나가고, 강이 지나가고, 호수가 지나간다. 마치 동화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차 창문 옆에 딱 붙어 앉아 멍하니 풍경만 바라본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 노바스코샤 주 아틀란틱 오션시티 페기스코브 (Peggys Cove) 등대
페기스코브는 핼리팩스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작은 어촌마을이다. 화강암 위에 우뚝 서 있는 팔각형 등대가 유명한데 그 높이가 15m라고 한다. 1914년에 지어졌으니 벌써 100년도 넘게 한 자리에서 바다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 노바스코샤 주 펀디만 (Bay of Fundy)
펀디만에서는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하루에 두 번씩 펼쳐진다. 세계 최대의 조수 그 높이는 무려 16m이다. 5~6층 건물 높이로 바다의 물이 빠지고 들어온다니 정말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어딜 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그곳은 더욱 특별한 곳이 된다는 것이다.
▲ 노바스코샤 주 루넨버그 (Lunenburg)
사진으로만 봤던 루넨버그의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 감동이란! 컴퓨터와 씨름하며 팔목증후군으로 골골댔던 일주일 전의 나는 온데간데없다. 루넨버그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이다, 구시가지는 18∼19세기의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마치 유럽의 아기자기한 마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PEI)에 가는 길_ 컨페더레이션 다리를 건너자 마자 나오는 어촌마을
캐나다 로드트립을 하다 보면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나는 장롱면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드라이버의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아마 내가 운전을 했으면 길에서 시간을 다 보냈을 것이다.
▲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일몰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좋아지는 풍경! 이것이 힐링인가 싶다. 자꾸 뒤를 돌아 좋았던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지만 더는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다가오는 풍경을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 인생의 여행! 14일간의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한 번의 여행으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느긋해졌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쉼표를 찍고 와서 그런지 마음만은 한결 가뿐하다.
누구에게나 목적지는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했을 때 엑셀레이터를 밟고 그냥 지나치느냐 아니면 잠시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서느냐는 전적으로 당신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