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하늘 냄새가 나는 영혼
상담심리대학원 미술치료 수업에서 “자기소개 프로그램”을 공부할 때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선생님(여기는 거의 현장에서 상담사나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하더라구요.)이 “가장 듣기 싫은 말을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영혼이 참 맑아 보인다.”라고 대답해 수업분위기를 뒤집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들이 간절히 듣고 싶은 말도 자신에게는 스트레스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영혼이 맑아 보이고 싶습니다. 아니 영혼이 맑고 싶습니다. 저의 직업(?, 궁극적으로 직업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돈을 벌기 위해서 목사를 하진 않구요... 실제도 돈도 안 됩니다... 물론 돈을 위해서 목사질(?)하는 머리가 ‘돈’ 목사도 있지만... 그래서 저는 직업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이 목사인데, 영혼이 맑지 않은 목사님들을 너무 많이 보아와서인지 저는 영혼이 맑고 싶습니다.
신에게 봉사하는 직업(?)을 가진 목사의 영혼마저 혼탁해서 그 속을 알 수 없는 시대라면 참으로 절망적인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시대의 어머니였던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생각이 납니다. 그 맑은 영혼으로 시대의 상처를 싸매어 주셨던 어머니...
그런데 수녀님이 돌아가시고, 고해신부(가톨릭에서는 죄를 지었을 때, 고백 받고 사죄하는 사제)에게 보내었던 40편의 편지가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에 보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맑은 삶을 살아가신 분이 내적으로는 너무나도 많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에게 봉사하는 그녀의 믿음이 가난한 사람과 평생 함께하는 삶을 만들었는데, 그녀 속에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는 절절한 부분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려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기도하려 해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마음의 갈급함과 신의 부재를 느끼는 절망, 이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의무와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삶의 몸부림. 저는 이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 인간에게 허락한 삶을 흔들리지 않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노력,...’
저도 하나님의 부재를 많이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부재는 마더 테레사의 것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가벼움이겠지요. 전 제 욕심으로 신에게 따지는 것이고, 수녀님은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가슴으로 품으면서 부르짖는 안타까움이었을 테니깐요...
그녀가 더 좋아지는 장면이 있습니다. 조병준이라는 시인이 그녀와 공동체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며 썼던 글입니다.
“새벽 6시에 시작하는 수도원의 아침 미사. 마더 테레사는 언제나 바로 저 자리에 저 자세로 앉으셨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새벽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신부님의 강론에 졸리고 지겨워 내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을 때 거기서, 마더 테레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계셨다. 아,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하여 너무나 신성한...”
그녀도 가녀린 육신으로 인해 지치고 힘들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처럼 새벽 미사에서 졸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의 생의 의무과 가치를 결코 쉽게 내팽개치지는 않는 것입니다. 약하지만 강하고 신성한 여인이었습니다.
영혼이 맑아야 합니다. 그래야 삶이 아름답고 가치 있어집니다. 우리가 만져지는 현실적 가치만 따지고 살면서 너무 영혼을 내팽개쳐 버렸기에, 우리 삶이 이렇게 메마르고 피폐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가 이토록 무섭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잠시 자신을 영혼을 위해서 고독의 여행을 가야 합니다. 그 여행에서 자신과 참으로 진지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신의 부재도 느끼고, 자신의 무력함도 나누면서 그렇게 영혼을 정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을, 새 희망을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의 “하늘 냄새”라는 시의 일부를 소개하고 오늘 칼럼을 마치겠습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고독의 여행. 언제쯤 이것이 무엇인지 나누고, 함께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