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추(立秋)에 「허수아비」 시인에게 띄우는 《가을편지》
2023. 8. 8. 필자 윤승원 記
【윤승원 가을편지】 잊을 수 없는 시인에게 쓰는 《가을편지》
♧ ♧ ♧
▶ 바로보기 :.
【윤승원 가을편지】 잊을 수 없는 시인에게 쓰.. : 네이버블로그 (naver.com)
♧ ♧ ♧
【윤승원의 가을편지】
잊을 수 없는 시인에게 쓰는 《가을편지》
― 立秋에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를 낭송하는 이유
윤승원 수필문학인, 전 대전수필문학회장
‘입추(立秋)’입니다.
가을을 알리는 입추 절기에는
어느 대중가요 가사처럼
‘누구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저의 편지를 받아 보실 분은
‘누구에게라도’가 아닙니다.
대상이 정해져 있습니다.
매년 똑같습니다.
그분에게 보내는 편지는
주소가 필요 없습니다.
가을 들판의 ‘허수아비’가
전해 줍니다.
▲ 미대생 아들이 그려준 들녘의 허수아비
♧ ♧ ♧
■ 가을맞이 애송시
<허수아비>.
제가 좋아하는 가을 맞이 애송시입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는
이 맘 때가 되면 꼭 기다려지는
아름다운 ‘가을 사람’입니다.
그럼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을 사람’을 만나 볼까요?
허수아비 / 한미순
욕심 없는 사랑으로 흰 구름 한 조각 찢어다가 헐렁한 윗도리 지어 입고
담고 싶은 푸른 하늘 우러른 평화로운 가난한 마음이여
추한 모습 무섭다고 얄미운 참새 동무 달아나도 소중한 임의 입김 바람으로 전해오면
날고 싶어 즐거워 춤추는 행복한 천진스런 기쁨이여
빈 채로 서서 소유하지 않아도 두 팔 벌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황금물결 풍요를 한껏 누리는
가을의 사람아 부러운 사람아
|
♧ ♧ ♧
구족(口足)화가 한미순 시인이
입에 대롱을 물고 쓴 시입니다.
■ 시인과의 잊을 수 없는 인연
저와의 인연이 특별합니다.
그러니까 어느덧 33년 전입니다.
당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문학프로그램,
KBS 1 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
이곳에 저는 수필을 발표하고
한미순 시인은 시를 발표했습니다.
▲ 시와 수필 방송 녹음테이프 - 당시 국내 유일의 라디오 문학프로그램이었던 KBS 1 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를 통해 한미순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같은 시기에 나는 수필작품으로 서정범 교수의 추천을 받았고, 한미순 시인은 황금찬 시인으로부터 시를 추천받았다. 방송을 통한 <추천작가 글벗>으로서 서신도 오가는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겼다.
♧ ♧ ♧
그런 인연으로
한미순 시인과 서신이 오간 것입니다.
세월이 흘렀어도 저의 ‘편지철’에는
한미순 시인의 편지가
소중하게 보관돼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쓰여진 편지인가요.
중증 장애를 가진 분이 쓰신
‘입[口]편지’이므로
제게는 보물 같이 귀한 편지입니다.
▲ 한미순 시인이 보내준 「손 편지」아닌 「입[口] 편지」(1991년) - 입에 대롱을 물고 타자하여 쓴 편지이다. 참으로 귀한 편지라서 편지철에 소중하게 보관해 왔다.
▲ 나는 한미순 시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 방송을 통해 서로가 시와 수필을 듣고, 신문기사를 통해 삶의 이야기를 읽고, 시인은 「입[口] 편지를, 나는 손[手] 편지」를 주고받았다.
♧ ♧ ♧
▲ 중앙일보 기사(1991. 4. 21.) - 한미순 시인의 인생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조선일보 ‘이규태 코너’에 소개된 한미순 시인의 『솟대문학』(1991. 5. 14.)
♧ ♧ ♧
■ 또 한 편의 가슴 적시는 시
여기서 그칠 수 없습니다.
또 한 편의 가슴 적시는 시를 낭송합니다.
‘겸손’을 내 것으로 만드는 그 아픈 여정,
마침내 시인으로부터
진정한 ‘순종’의 의미를 배웁니다.
흐르는 물처럼 / 한미순
흐르지 않고는 죽을 것 같아 낮아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부서지고 아파하며 그저 아래로만 흐르는 물들의 여행
얼마나 깨어지면 그 겸손 내 것이 될까
순종의 길 흘러 흘러 강을 이루고
더 낮은 자리 찾아서 마침내 다다른 바다 … [下略]
|
♧ ♧ ♧
이 두 편의 시를 낭송하면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이 두 편의 시를 음미하면
풍요로운 가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완료된 것입니다.
■ 시인과의 인연을 칼럼에 소개한 이유
시인과의 남다른 인연을
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는 데도
저는 일간지 칼럼에
잊지 못할 사연을 썼습니다.
평생 자랑스러운
소중한 인연이기 때문입니다.
▲ 한미순 시인의 가슴을 울리는 시 <허수아비>를 언급한 필자의 일간지 칼럼(충청권 일간지 금강일보 『윤승원의 세상 風情』 2010.8.10.)
윤승원의 세상 風情 입추(立秋)에 ‘허수아비의 멋’을 배우다 - ‘낮은 자세’로 들녘을 바라보며 윤승원 논설위원
24절기 중 가장 반가운 절기는 입추(立秋)다. 길고 긴 겨울을 이겨내고 맞이하는 입춘(立春)도 설렘이 있어 좋은 절기지만 아직 더위가 한창인 8월 복중에 ‘가을의 시작’을 예고해 주는 입추야말로 지혜롭게 설정해 놓은 절기다.
달력표기(7일)만 보아도 선들 기운이 살갗에 스쳐오는 것만 같아 반갑기 그지없다. 아무리 맹위를 떨치는 무더위도 입추 앞에서는 기세가 꺾이기 마련이다. 자연의 순환은 이렇게 때가 되면 겸손해질 줄 안다.
입추가 되면 생각나는 시가 있다. 한미순 시인의 ‘허수아비’다. 그는 척수마비 장애인이다. 입과 발가락으로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구족(口足)화가이자 시인이다.
나와는 90년대 초 KBS1라디오의 문학 프로그램을 통해 글이 당선된 인연으로 잠시 서신왕래가 있었으나 입에 대롱을 물고 타이핑을 해야 하는 시인의 고충을 생각하면 답장 받아보기가 미안하여 편지 보내기가 망설여졌던 기억이 난다.
문학이란 아픔을 겪어 본 사람만이 제대로 승화된 작품을 빚는다고 믿는다. 누릴 것 다 누리고, 복이 넘치는 사람한테서는 글다운 글이 나오기 어렵다. 한미순 시인의 시가 다 아름답고 깊은 맛이 나지만, 그 중에서 입추 무렵에 읽으면 더욱 가슴에 스며드는 시가 ‘허수아비’다. (하략)
|
♧ ♧ ♧
■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위안을 주는 시
어렵게 살아가는 이 세상 모든 분에게
힘과 용기와 꿈을 주는 시인이기에
그분과의 사연도
혼자 간직하기 어렵습니다.
한미순 시인,
올가을에도 욕심 없이
팔 벌려 안아 줄
‘허수아비’를 통하여
안부 전하고,
‘순종의 길’ 흘러 흘러
마침내 겸손의 경지에 이르는
‘흐르는 물’을 통하여
순수한 마음이 담긴
시인의 ‘아름다운 기도’를 상상합니다.
입에 대롱을 물고 힘들게 쓴 답장을
저는 기다리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순종의 길 걸어온
시인의 ‘겸손한 기도’가 곧
답장이니까요.
감사합니다.
2023. 8. 8.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입추 절기에
가을편지 보냅니다.
- 윤승원 記
♧ ♧ ♧
첫댓글 ♧ 한국경찰문인회 단체 대화방에서
◆ 이상인(시인, 경찰문학 상임고문) 23.08.08.10:00
정말 소중한 인연입니다. 허수아비처럼 버리고 비우며 살아온 시인의 향기가
가을 들판을 채우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구족 시인의 기사를 읽어 본 기억이 있습니다.
윤 작가님의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이상인 사백님의 격려 댓글에는 인정과 사랑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졸고를 따뜻한 가슴으로 살펴 주셔서 큰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대전수필문학회 단체 대화방에서
◆ 박영진(수필가) 23.8.8.11:12
한미순 시인님의 작품도 훌륭하지만,
마음씨가 무척 따사로운 분이시군요.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답글 / 윤승원
입에 대롱 물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분의 힘든 생활을 상상해 봅니다.
온전한 몸으로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깊이 성찰하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매년 입추가 되면 두 번 세 번 애송합니다.
얼마나 자신을 다독이면 이런 명시가 나올까요.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면 이런 명문이 직조될 수 있을까요.
누구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분입니다.
인내로 다듬어진 인품의 시어가 돋보입니다.
가슴으로 읽어 주시고 격려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카페에서
◆ 낙암 정구복(역사가,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3.08.08. 20:15
가을의 문턱에서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위하여 글을 쓰시는 윤승원 선생의 마음 씀이 크게 돋보입니다.
한미순 씨의 ‘허수아비’, ‘흐르는 물’이란 시에는 평이하면서도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국민시’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 무더위를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두 분 힘 내십시오, 소중한 인연입니다. 감사합니다.
▲ 답글 / 윤승원
가을을 알리는 입추라는 절기가 말복 더위보다 앞에 있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절기라고 생각합니다.
맹위를 떨치는 막바지 더위를 입추라는 절기가 누르면서
솔바람 같은 기운을 줍니다.
한미순 시인의 두 편의 시가 그렇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와 꿈을 줍니다.
이런 시의 힘이 어디서 나올까요.
굳은 의지력에서 나옵니다.
시련과 인내라는 관문을 통과한 겸손에서
격조와 품격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정서가 쌓이고,
마침내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명작이 탄생했습니다.
낙암 교수님, 귀하게 봐주시고,
힘을 주시는 격려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