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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4 편
과 도 기
134:0.1 지중해를 여행하는 동안 예수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과 거쳐간 나라들을 주의 깊게 연구했고, 이 무렵에 그는 땅에서의 삶에 대한 최종 결정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이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을 충분히 고려하고 마침내 승인했다. 따라서 대중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일생의 일이 시작되는 것을 기다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릴리로 돌아갔다; 아버지 요셉의 민족이 사는 땅에서 공생애를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자신의 자유 의지로 이렇게 하였다.
134:0.2 예수는 개인적인 인간 체험을 통해 팔레스타인이 로마의 모든 세계에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임을 깨달았다. 그가 태어난 팔레스타인의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서, 그의 참된 본성을 숨김없이 나타내고 신성한 신분을 드러내는 계획에 처음으로 충분히 만족하게 되었다. 무력한 아기로서 인간의 체험을 시작한 바로 그 땅에서, 지상의 삶을 끝내고 필사자로 존재하는 생애를 마치기로 분명히 결심하였다. 그의 유란시아 생애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들 사이에서 시작되었고, 그는 팔레스타인과 유대인들 사이에서 그의 생을 마치기로 결정했다.
1. 서른 살 되던 해 (서기 24년)
134:1.1 예수는 카락스에서 (서기 23년 12월) 고노드와 가니드와 작별한 후에, 우르를 거쳐 바빌론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다마스커스로 가던 한 사막의 카라반과 합류하였다. 그는 다마스커스에서 나사렛으로 갔고, 가버나움에서 잠시 멈추고, 거기서 세베대의 가족을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동생 야고보를 만났는데, 야고보는 얼마 전에 세베대의 배 작업장에서 예수를 대신하여 일하러 왔다. 예수는 야고보와 유다와(우연히 가버나움에 있게 되었다) 대화한 후, 요한 세베대가 겨우 구입한 작은 집을 동생 야고보에게 넘기고 나서 나사렛으로 갔다.
134:1.2 지중해 여행이 끝날 무렵 예수는 대중 봉사를 시작할 무렵까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충분한 돈을 받았다. 그러나 가버나움의 세베대와 이 특별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을 제외하고, 세상은 그가 이렇게 여행한 것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항상 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면서 이 시간을 보냈다고 믿었다. 예수는 이러한 믿음들을 확인하지도 않았고, 그러한 오해들을 공개적으로 부인하지도 않았다.
134:1.3 나사렛에 머무는 몇 주 동안, 예수는 그의 가족과 친구들을 방문했고, 아우 요셉과 함께 수선소에서 얼마큼 시간을 보냈지만, 대체로 마리아와 룻에게 관심을 쏟았다. 룻은 그때 거의 열다섯 살이었고, 예수는 그녀가 젊은 여성이 된 후에 처음으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134:1.4 시몬과 유다 두 사람은 한참 동안 결혼하고 싶었지만, 예수의 동의 없이 그렇게 하기 싫었고, 큰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결혼을 미뤘다. 그들은 대부분의 일에서 야고보를 가장으로 여겼지만, 결혼에 관한 한 예수의 축복을 원했다. 그래서 시몬과 유다는 이 해, 서기 24년 3월 초에 쌍 결혼식을 올렸다. 이제 큰 아이들은 모두 결혼했다; 오직 막내 룻이 마리아와 함께 집에 남아 있었다.
134:1.5 예수는 가족 각 구성원과는 꽤 자연스럽고 정상적으로 대화를 나누었지만, 모두가 함께 있을 때는 할 말이 거의 없어서 그들은 서로 간에 그것에 대해 언급했다. 특히 마리아는 맏아들의 이런 유별난 행동에 당황했다.
134:1.6 예수가 나사렛을 떠날 준비를 하던 즈음, 도시를 지나던 대규모 카라반의 안내자가 심하게 앓게 되었다. 예수는 언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자진해서 그 자리를 맡겠다고 나섰다. 이 여행이 1년간 집을 떠나는 일이었고, 아우들이 모두 결혼했으며, 어머니가 집에서 룻과 함께 살고 있었으므로 예수는 가족회의를 열고는, 어머니와 룻이 가버나움으로 가서 최근에 야고보에게 준 집에서 살도록 제안했다. 따라서 예수가 카라반과 함께 떠난 며칠 후에 마리아와 룻은 가버나움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마리아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예수가 마련해 준 집에서 살았다. 요셉과 그 가족은 옛 나사렛 집으로 이사했다.
134:1.7 이 해는 사람의 아들의 내적 체험에서 더욱 특이한 해들 중 하나였다; 예수의 인간 mind에 깃들어 있는 조절자 사이에 조화를 이룩하는 데 크게 진전되었다. 조절자는 예수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멀지 않은 앞날에 닥칠 큰 사건들을 위하여 mind를 준비시키는데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예수의 personality는 세상을 향한 태도에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때는 막간의 시절이었고, 사람으로 보이는 하나님으로서 삶을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보이는 사람으로서 땅에서의 삶을 마치려고 준비하는그 존재가 거치는 과도기였다.
2. 카스피까지 가는 카라반 여행
134:2.1 서기 24년 4월 1일, 예수가 나사렛을 떠나 카스피해 지역으로 카라반 여행을 떠난 때였다. 예수가 지휘자로 합류한 카라반은 예루살렘에서 아시리아, 미디어, 파르시아를 거쳐 다마스커스와 우르미아 호수를 거쳐 카스피해 동남부 지역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만1년이 걸렸다.
134:2.2 예수에게 이 카라반 여행은 탐험과 개인적 봉사의 또 다른 모험이었다. 카라반 가족―승객, 보초, 낙타 운전수―와 함께 흥미 있는 체험을 했다. 카라반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수십 명의 어른과 아이들이 예수와 접촉한 결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았고, 이들에게 그는 평범한 카라반의 비범한 안내자였다. 그의 개인적 봉사를 접한 모든 이들이 그렇게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대다수의 사람들은 남은 자연적 삶 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
134:2.3 그의 모든 세계 여행 중, 이 카스피해 여행은 예수를 동양에 가장 가깝게 데려갔고, 극동 민족들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홍인종을 제외하고, 유란시아에 남아 있는 각 종족과 가깝게, 친히 접촉했다. 그는 이러한 다양한 인종과 혼합된 민족에게 그의 개인적인 봉사를 동등하게 즐겼고, 이들은 모두 그가 가져온 생명의 진리를 받아들였다. 극서부의 유럽인들과 극동의 아시아인들은 모두 그의 희망과 영생의 말에 관심을 가졌고, 그가 그들 사이에서 매우 친절하게 살았던 사랑의 봉사와 영적 봉사의 삶에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134:2.4 모든 면에서 그 카라반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인간 생활에서 가장 흥미로운 에피소드였으며, 그가 이 해에 관리자 역할을 하며 자신에게 맡겨진 물자와, 카라반 일행을 구성하는 여행자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그는 매우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현명하게 여러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134:2.5 카스피해 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에서 카라반의 지휘를 내려놓고, 거기서 2주 조금 넘게 머물렀다. 이후 그는 후에 오는 카라반의 승객으로 다마스커스로 돌아갔고, 거기서 낙타의 주인들은 그에게 남아서 수고해 달라고 요청을 받았다. 이 제안을 거절한 그는 그 카라반을 따라 가버나움으로 향했고, 서기 25년 4월 1일에 도착했다. 그는 이제 더 나사렛을 집으로 여기지 않았다. 가버나움은 예수와 야고보, 마리아, 룻의 집이 되었다. 예수는 결코 다시 가족과 함께 살지 않았다; 가버나움에 있을 때, 그는 세베대의 집에서 지냈다.
3. 우르미아 강의
134:3.1 카스피 해로 가는 길에, 예수는 우르미아 호수 서쪽 해안에 있는 옛 페르시아 도시 우르미아에서 며칠 동안 휴식과 회복을 위해 머물렀다. 우르미아 근해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섬들 중 가장 큰 섬에는 '종교의 정신'에 헌정된 대형 건물, 즉 강의용 원형 극장이 있었다. 이 구조물은 사실 종교 철학의 신전이었다.
134:3.2 이 종교의 신전은 우르미아의 부유한 상인 시민과 그의 세 아들에 의해 지어졌다. 이 사람은 심보이톤으로, 그의 조상들 중에는 많은 다양한 민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134:3.3 이 종교 학교의 강의와 토론은 매주 아침 10시에 시작되었다. 오후 회의는 3시에 시작되었고, 저녁 토론회는 8시에 열렸다. 심보이톤이나 그의 세 아들 중 한 명은 항상 이러한 교육, 논의, 토론의 시간들을 주재했다. 이 독특한 종교 학교의 설립자는 그의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죽었다.
134:3.4 여러 차례 예수는 이 토론에 참가했고. 예수가 우르미아를 떠나기 전에, 심보이톤은 예수가 돌아가는 여행길에 그들과 함께 2주 동안 머물면서, “인간의 형제사랑”에 대해 스물네 번 강의하고, 특히 그 강의에 대하여, 그리고 일반적으로 인간의 형제사랑 대하여 질문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저녁 시간을 12번 진행하도록 주선했다.
134:3.5 이러한 주선에 따라서, 예수는 돌아오는 여행길에 멈추어서 이 여러 강연을 베풀었다. 이것은 유란시아에서 주의 모든 가르침 가운데 가장 체계 있고 공식적인 것이었다. 인간의 형제 사랑에 관한 이 강의와 토론에 담겨 있는 것만큼, 이전이나 이후에 결코 한 주제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말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 강연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134:3.6 이 종교 철학의 전당에서 교수진은 서른이 넘는 종교와 종파를 대표하였다. 이 교사들은 각자의 종교 단체에 의해 선택되고, 지지되고, 완전히 인정받았다. 당시 교수진에는 약 75명의 교사가 있었고, 그들은 각각 12명의 사람들을 수용하는 오두막에서 살았다. 매번 초승달이 뜰 때마다 이 그룹들은 제비를 뽑아서 교체되었다. 편협함, 논쟁을 좋아하는 정신, 또는 공동체의 원활한 운영을 방해하는 어떤 다른 성향은 가해 교사의 즉결로 해임되곤 하였다. 그는 예식도 없이 쫓겨났고 교대하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바로 그 자리에 임명되곤 하였다.
134:3.7 이 다양한 종교들의 선생들은 그들의 종교가 현재의 삶과 내세의 근본적인 것들에 대해 얼마나 비슷한지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이 교사진에 자리를 얻기 위해서 하나의 교리를 수용해야 했는데, 모든 선생은 하나님(God)―어떤 형태로든 최상 신―을 인정하는 종교를 대표해야 했다. 교수진에는 어떤 조직적인 종교를 대표하지 않는 독립된 선생이 다섯 명 있었고, 그러한 독립된 선생으로서 예수는 그들 앞에 나타났다.
134:3.8 [우리 중도자들이 우르미아에서 예수가 하신 강연의 요지를 처음 준비했을 때, 이 가르침들을 유란시아 계시에 넣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하여 교회 세라핌과 진보 세라핌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다. 20세기에 종교와 인간 정부의 상황은 예수 시대의 상황과 너무 달라, 우르미아에서의 주의 가르침을, 이 여러 세상 직무가 20세기에 존재하는 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사람의 나라 문제들에 적응시키는 것은 정말로 어려웠다. 이 행성 정부를 담당하는 두 세라핌 집단이 만족하기까지 우리는 결코 주의 가르침에 대한 진술문을 작성할 수 없었다. 결국, 유란시아에서 20세기 종교 및 정치 조건에 맞게 적응한 주의 우르미아 가르침에 대하여 우리의 견해를 준비하라고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이 우리 가운데 세 명으로 된 위원회를 임명했다. 이에 우리 세 명의 중도자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재조명하여 오늘날 세계 상황에 적용한 그의 진술문을 다시 작성하였고, 이제 우리는 계시 위원회의 멜기세덱 의장의 편집을 거친 후 이 진술들을 그대로 발표하게 되었다.]
4. 신(神)과 인간의 주권
134:4.1 인간의 형제사랑은 하나님이 아버지인 것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가족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들 모두를 신성하게 사랑하신다.
134:4.2 하늘나라, 곧 신성한 정부는 신성한 통치라는 기초 위에 세워진다―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이 나라는 영적인 나라이다. 하늘나라는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지적인 것도 아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영적인 관계이다.
134:4.3 만약 다른 종교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영적 주권을 인정한다면, 모든 그러한 종교는 평화롭게 남을 것이다. 한 종교가 어떤 면에서 모든 다른 종교보다 우월하며,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 권한을 갖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러한 종교는 주제넘게 다른 종교들에게 관용을 보이지 않거나, 감히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박해할 것이다.
134:4.4 모든 종교가 종교의 권위를 완전히 버리고 그들이 영적 주권을 가졌다는 모든 개념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않는 한, 종교적 평화―형제 사랑―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은 홀로 영 주권자이다.
134:4.5 모든 종교가 모든 종교적 주권을 어떤 초인간적인 수준으로, 즉 하나님에게 양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 한, 종교 전쟁 없이 종교 간의 평등(종교적 자유)을 가질 수 없다.
134:4.6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하늘나라는 종교적 통합(반드시 일치가 아님)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을 가진 모든 종교 집단은 교회 권위나 종교적 주권에 대한 개념에서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134:4.7 하나님은 영이요, 하나님은 그의 영 자아의 분신을 사람의 마음속에 거주하라고 주신다. 영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 하늘나라에는 카스트, 계급, 사회 계층, 경제 집단으로부터 자유롭다. 너희들은 모두 형제다.
134:4.8 그러나 너희가 하나님 아버지의 영 주권을 잃어린 순간, 어떤 종교는 다른 종교에 대한 우월성을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다음, 땅에서의 평화와 사람들 사이에 선한 의지 대신에, 분열, 비난, 심지어 종교 전쟁, 최소한 종교인들 간의 전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134:4.9 자신들이 동등하다고 여기는 자유 의지 존재들은, 어떤 초월 주권, 그들 위에 있는 어떤 권한의 지배를 받는다고 서로 인정하지 않는 한, 머지않아 다른 개인과 집단을 다스릴 권력과 권한을 얻으려고 자기 능력을 시험해볼 유혹을 받는다. 위에서 지배하는 초월 주권의 어떤 영향력을 서로 인정할 경우를 제외하고, 평등 개념은 결코 평화를 가져오지 않는다.
134:4.10 우르미아 종교인들은 어떤 개념의 종교적 주권을 완전히 포기했기 때문에 비교적 평화롭고 조용하게 함께 살았다. 그들은 모두 영적 주권자인 하나님을 믿었다. 사회적으로, 완전하고 도전할 수 없는 권위는 우두머리인 심보이톤에게 있었다. 그들은 동료 선생들 위에 군림하려는 선생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잘 알고 있었다. 유란시아에서 지속적인 종교적 평화는 모든 종교 집단이 신의 은총, 선택된 민족, 종교적 주권에 대한 모든 개념을 자유롭게 포기할 때까지 실현될 수 없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가 최상이 될 때,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형제가 되고, 땅에서 종교적 평화를 누리면서 함께 살게 될 것이다.
5. 정치적 주권
134:5.1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은 진리이지만―이후 세계 종교들 사이에서 그에 관한 종교가 등장하면서 복잡해졌다―정치적 주권에 관한 그의 가르침은 지난 1900년 이상 동안의 국가 생활의 정치적 진화에 의해 크게 복잡해졌다. 예수 시대에는 서쪽의 로마 제국과 동쪽의 한 제국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세계 강대국만이 존재했다. 이 두 제국은 파르티아 왕국과 카스피해 및 투르키스탄 지역의 다른 중간 지역들로 인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에 제시할 내용에서 정치적 주권에 관한 주의 우르미아에서의 가르침의 본질에서 더 많이 벗어나, 동시에 이 가르침이 기원후 20세기의 정치적 주권 진화에서 중요한 단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 의미를 묘사하려고 시도했다.]
134:5.2 유란시아에서 전쟁은 국가들이 무제한 주권을 가졌다는 환상적인 개념을 고수하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상대적인 주권 수준만이 있다; 개별적 인간의 영적 자유 의지와 인류 전체의 집합적 주권이다. 개별 인간 수준과 인류 전체 수준 사이에는 모든 집단과 연관성이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며, 오직 개인과 행성 전체인―사람과 인류―의 행복, 복지, 진보의 질을 높이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134:5.3 종교 선생들은 항상 하나님의 영적 주권이 모든 중재적이고 중간적인 영적 충성심을 초월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정치 지도자들은 최고자들(Most Highs)이 인간의 왕국에서 통치한다는 것을 배울 것이다.
134:5.4 인간의 나라에서 최고자들(Most Highs)의 통치는 특별 혜택을 받는 어느 필사자 집단의 특별한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다. “선택된 민족”과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정치 진화의 통제자인 최고자들의 통치는 모든 인간에게, 가장 큰 선(good)을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많이 증진시키기 위해 고안된 통치이다.
134:5.5 주권은 권력이고, 권력은 조직을 통해 성장한다. 정치권력 조직의 성장은 인류 전체의 점점 더 확대되는 부분들을 포괄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선하고 적절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정치 조직들의 성장은 정치 권력의 자연스러운 초기 조직―가족―과 정치 성장의 최종 완성인 모든 인류의, 모든 인류에 의한, 모든 인류를 위한 정부 사이의 모든 중간 단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134:5.6 가족이란 집단 안에서 부모의 능력이 생기기 시작하여, 여러 가족이 같은 혈족의 씨족으로 겹쳐지면서 조직이 형성되어 정치적 주권으로 발전하고, 그리고 이것들이 다양한 이유로 합쳐지면서, 부족 단위인 초-혈통적 정치 집단으로 발전한다. 그다음, 무역, 상업 정복으로 부족들은 합쳐져서 국가가 되고, 또한 가끔 국가들이 합쳐져서 제국이 된다.
134:5.7 작은 집단에서 더 큰 집단으로 주권이 넘어감에 따라서, 전쟁이 줄어든다. 다시 말해서, 작은 나라들 간의 사소한 전쟁이 줄어든다. 그러나 주권을 행사하는 나라들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당장에, 온 세계를 탐험하여 정복했을 때, 나라들의 수가 적고 힘세고 강력할 때, 주권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이 큰 나라들이 경계선에서 닿게 될 때, 오직 바다가 나라들을 분리할 때, 무대는 세계 전쟁을 위하여 준비될 것이다. 갈등이 일어나고, 궁극에 전쟁을 하지 않고는 서로가 사이좋게 지낼 수가 없다.
134:5.8 가족으로부터 인류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주권의 진화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모든 중간 단계에서 나타나는 타성과 저항에 있다. 때때로 가족들은 씨족에 항거했고, 한편 씨족과 부족들은 가끔 그 영토를 가진 국가의 주권을 뒤엎으려 하였다. 정치 조직에서 앞서 발전하였던 “발판이 되는 단계”는 정치적 주권에서 새롭고 전진하는 진화를 하나하나 저지하고 방해한다 (언제나 방해해 왔다). 이러한 현상이 사실인 것은, 인간의 충성심은 한번 그 조직에 합류하면 바꾸기 힘들기 때문이다. 부족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충성스러운 존재들은 초월 부족―영토 국가의 진화를 어렵게 만든다. 영토 국가의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동일한 충성심(애국심)은 모든 인류정부의 진화적 발전을 대단히 복잡하게 만든다.
134:5.9 정치적 주권은, 먼저 가족 안에서 개인이, 그다음은 가족과 씨족들이 부족과 그리고 더 큰 집단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결권을 포기함으로 탄생된다. 이렇게 작은 집단에서 더 큰 집단으로 자결권의 점진적인 이양은 동양에서 명과 모굴 왕조가 세워진 이후 전반적으로 줄어들지 않고 진행되었다. 서양에서 이것은 1천 년이 넘도록, 바로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진행되었고, 이때 유럽에서 많은 작은 집단들의 정치적 주권들이 다시 세워짐으로써, 불행한 역행 운동은 이 정상적 방향을 일시적으로 뒤집어 놓았다.
134:5.10 유란시아는 이른바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그 주권을 인간의 형제사랑―인류의 정부―의 손에 현명하게 완전히 넘기지 않는다면 지속적인 평화를 누릴 수 없다. 국제주의―국제 연맹―은 결코 인류에게 영구한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전 세계적인 연방 국가가 소규모 전쟁을 효율적으로 방지하고 작은 국가들을 만족스럽게 통제할 수는 있겠지만, 세계 전쟁을 예방하거나 셋, 넷, 또는 다섯 개의 가장 강력한 정부를 통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갈등이 일어나면, 이들 세계 강국 가운데 하나가 연맹으로부터 탈퇴하고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그 국가들이 국가의 주권이라는 망상의 바이러스에 전염이 되어 있는 한, 전쟁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국제주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한 걸음이다. 국제적인 경찰력이 많은 소규모 전쟁을 예방하겠지만, 지상의 거대 군사 정권 사이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대규모 전쟁을 예방하는 데는 효과가 없다.
134:5.11 실제로 주권을 가진 국가(강대국)의 수가 줄어들면, 인류 정부를 위한 기회와 필요성도 증가한다. 정말로 주권을 가진 (큰) 강국들이 소수일 때, 민족(제국)의 우위를 얻으려고 생사를 건 싸움을 시작하거나, 아니면 주권의 일부 특권을 자진해서 포기함으로, 모든 인류의 진정한 주권의 시작될 초월적 국가 힘의 핵심을 만들어야 한다.
134:5.12 이른바 주권을 가진 모든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는 권한을 온 인류의 대표 정부에게 양보할 때까지, 유란시아에 평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주권은 세계의 여러 민족이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다. 유란시아의 모든 민족이 한 세계 정부를 창조할 때, 그들은 그러한 정부를 통치자로 만들 권한과 힘이 있다. 그러한 대표적 또는 민주적 세계 권력이 지구에서 세계의 육군, 해군, 공군을 통제할 때, 땅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 사이에서 선의가 지배할 것이다―그러나 그때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134:5.13 19세기와 20세기의 중요한 예를 들자: 아메리카 연방의 48주는 오랫동안 평화를 누려왔다. 자기들끼리 이제 더 전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통치권을 연방 정부에게 넘겨주었고 투쟁의 판결을 통해서, 자결권의 망상에 대한 주장을 모두 버렸다. 각 주가 그 내부 사무를 규제하지만, 외교 관계, 관세, 이민, 군사 또는 주 사이의 상업에 관여하지 않는다. 개별 주도 시민권 문제에 관여하지 않는다. 48주는 오직 연방 정부의 주권이 어떤 식으로든 위협을 받을 때만 전쟁의 폐해를 겪는다.
134:5.14 이 48주는 주권과 자결권, 이 두 가지 궤변을 버렸고, 주 사이에 평화와 평온을 누린다. 마찬가지로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각자의 주권을 세계 정부의 손―인간 형제 사랑의 주권―에 자유롭게 양보할 때 비로소 평화를 누릴 것이다. 인구가 많은 뉴욕 주나 큰 텍사스 주와 똑같이, 작은 로드 아이랜드 주가 미국 국회에 상원 의원 두 명을 가진 것처럼, 이 세계 국가에서 작은 나라들은 큰 나라만큼 강력해질 것이다.
134:5.15 이 48주의 제한된 주의 주권은 사람들이,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다. 아메리카 연방이 가진, 주를 초월하는 (국가) 주권은 이 여러 주 가운데 최초의 13주가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하였다. 언젠가 행성의 인류 정부의 초월국가 주권을 여러 나라가 비슷하게, 자체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134:5.16 시민들은 정부의 이익을 위하여 태어나지 않았다; 정부는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여 창조되고 고안되었다. 온 인류를 위한 주권 정부가 나타나지 못하면, 정치적 주권의 진화는 그 끝이 없을 수도 있다. 모든 다른 주권은 상대적 가치가 있고, 중간 단계의 의미가 있으며, 그 아래로 종속 지위를 가진다.
134:5.17 과학의 발전과 함께, 전쟁은 갈수록 더 세상을 황폐시키면서 종족들이 거의 자살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사람들이 인류의 정부를 기꺼이 세우고, 영구한 평화의 복을 비로소 누리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세계적 선의―로 얻은 평안 속에서 번성하기까지, 몇 차례나 세계 전쟁을 치러야 하고, 얼마나 많은 국가 연맹이 실패해야 하는가?
6. 법, 자유, 주권
134:6.1 한 사람이 자유―해방―을 몹시 바라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똑같은 자유를 동경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유를 사랑하는 그러한 필사자 집단은 각 사람에게 같은 정도의 자유를 주고, 동시에 모든 동료 인간에게 똑같은 정도의 자유를 보호할 그러한 법ㆍ규칙ㆍ규제에 복종하지 않고는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 한 사람이 절대적 자유를 누리려면 또 한 사람이 절대적 노예가 되어야 한다. 자유는 사회, 경제, 정치 면에서 상대적 성질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자유는 법을 집행함으로 가능하게 된 문명의 선물이다.
134:6.2 종교는 사람이 형제임을 깨닫는 것을 영적으로 가능하게 하지만, 인간의 행복 및 효율성과 같은 목표와 관련하여 사회, 경제, 정치 문제를 규정하기 위하여는 인류의 정부가 요구될 것이다.
134:6.3 세계의 정치적 주권을 한 집단의 민족 국가들이 나누어 가지고 부당하게 차지하는 한, 전쟁이 있고,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다―나라와 나라가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다. 잉글랜, 스코틀랜드, 웨일즈는 각자의 주권을 버리고 연합 왕국에 맡겨둘 때까지 언제나 서로 싸우고 있었다.
134:6.4 또 하나의 세계 전쟁은 이른바 주권 국가들이 일종의 연방을 형성하도록 가르쳐서 작은 전쟁, 약소국 간의 전쟁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정부가 창설되기까지 세계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세계적 주권이 세계 전쟁을 막을 것이다―그 외에 아무것도 이를 막을 수 없다.
134:6.5 미국 48개의 자유 주는 평화롭게 함께 살고 있다. 이 48개 주의 시민들 중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는 유럽 국가에 사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이 있다. 이 미국인들은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와 종파, 종단을 대표하지만, 그럼에도 북미에서는 평화로이 함께 산다. 이러한 평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이 48개 주가 그들의 주권을 포기하고, 자결권에 대한 모든 개념을 버렸기 때문이다.
134:6.6 무장을 하느냐 비무장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군대가 징집이나 자원입대 복무냐 하는 문제도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데 상관이 없다. 모든 형태의 기계적 현대 무기와 모든 종류의 폭발물을 강대국으로부터 빼앗는다 하더라도 국가의 주권이 신성한 권리라는 망상에 달라붙는 한, 주먹과 돌과 몽둥이를 가지고 서로 싸울 것이다.
134:6.7 전쟁은 인간에게 크고 끔직한 질병이 아니다; 전쟁은 증상이요 결과이다. 진짜 병은 국가의 주권이라는 바이러스이다.
134:6.8 유란시아 국가들은 진정한 주권을 소유한 적이 없다; 결코 세계 전쟁의 참화와 황폐를 겪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주권을 가진 적이 없다. 인류의 세계 정부를 만드는 것은 국가들이 주권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진정하고 오래가는 세계 주권을 실제로 만드는 것이며, 그때부터 그들을 온갖 전쟁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 지역 사무는 지역 정부가; 나라의 사무는 국가 정부가; 국제 사무는 세계 정부가 담당하게 될 것이다.
134:6.9 세계의 평화는 조약, 외교, 외교 정책, 동맹, 세력 균형, 그 밖의 임시방편적인 국가주의의 주권으로는 유지될 수 없다. 모든 인류의 주권인 세계 정부에 의해 세계법이 제정되고 집행되어야 한다.
134:6.10 세계 정부 밑에서 개인은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릴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 시민들은 거의 강제로 세금을 물고 규제와 통제를 받는다. 국가의 정부들이 국제 사무에 관한 그들의 주권을 기꺼이 세계 정부의 손에 넘길 때, 현재 이처럼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는 일은 많이 사라질 것이다.
134:6.11 세계 정부 아래에서 국가 집단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부르짖는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고 누릴 진정한 기회를 얻을 것이다. 자결권이라는 허위는 그칠 것이다. 돈과 무역의 세계적 규제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적 평화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곧 세계적 언어가 진화될지 모르고, 적어도 언젠가 세계적 종교, 아니면 세계적 관점을 가진 종교들을 가질 희망이 얼마큼 생길 것이다.
134:6.12 집단의 안전은 그 집단이 온 인류를 포함할 때까지,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을 것이다.
134:6.13 대표로 다스리는 인류 정부의 정치적 주권은 땅에서 오래 가는 평화를 가져오고, 사람의 영적 형제 사랑은 언제까지나 모든 사람 사이에 선의를 보장할 것이다. 땅에서 평화,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선의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은 하나도 없다.
* * * * *
134:6.14 심보이톤이 죽은 후에, 그 아들들은 평화로운 교사진을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닥쳤다. 우르미아 교사진에 들어간 후일의 기독교 선생들이 더 지혜를 보이고 더 관대했더라면, 예수의 가르침의 영향은 훨씬 더 컸을 것이다.
134:6.15 심보이톤의 맏아들은 필라델피아에 있던 아브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브너가 선택한 선생들은 무척 유감스럽게도 완고하고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이 선생들은 그들의 종교가 다른 신앙을 지배하게 만들려고 애썼다. 그들은 바로 예수가, 자주 입에 오르내리던 카라반 지휘자의 강연을 했다는 것을 결코 짐작하지 못했다.
134:6.16 교사진에서 혼란이 커지자 세 형제는 재정 지원을 그만두었고, 5년 뒤에 학교는 문을 닫았다. 나중에 그 학교는 미트라 신전으로서 다시 열렸고, 결국 그들이 난장판으로 벌이던 축제 도중에 불이 나서 모두 타버렸다.
7. 서른하나 되던 해 (서기 25년)
134:7.1 카스피해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예수는 그의 세계 여행이 거의 끝났음을 알았다. 팔레스타인 외곽으로 단 한 번 더 여행했고, 그곳은 시리아였다. 가버나움을 잠깐 방문하고 나서 나사렛으로 가서 며칠 동안 머물렀다. 4월 중순에 나사렛을 떠나서 두로로 향했다. 거기서부터 계속 북쪽으로 여행하고 며칠 동안 시돈에서 묵었지만 목적지는 안티옥이었다.
134:7.2 이 해는 예수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를 통하여 혼자서 돌아다니던 해였다. 여행하던 이해 내내 그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사렛 목수, 가버나움의 조선공, 다마스커스 서기관, 알렉산드리아의 선생이었다.
134:7.3 안티옥에서 사람의 아들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어떻게 환경에 반응하는지를 배우면서, 일하고, 관찰하고, 공부하고, 방문하고, 봉사하면서 두 달 넘게 살았다. 이 기간의 3주 동안 그는 텐트 만드는 사람으로서 일했다. 그는 방문한 어느 다른 곳보다 이번 안티옥 여행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10년 뒤에, 사도 바울이 안티옥에서 전도하면서, 추종자들이 다마스커스 서기관의 교훈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 그는 제자들이 바로 주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을 거의 알지 못했다.
134:7.4 안티옥에서 예수는 남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케자리아로 갔고 거기서 몇 주 동안 묵었으며, 계속해서 바닷가를 따라 요파로 내려갔다. 요파에서 내륙으로 잠니아, 아쉬돗, 가자까지 여행하였다. 가자로부터 내륙의 길을 타고 비엘세바까지 가서, 거기서 한 주 동안 남아 있었다.
134:7.5 그리고 나서 남모르게 혼자서 예수는 마지막 여행을 떠났고, 팔레스타인의 심장부를 거쳐서 남쪽에 비엘세바로부터 북쪽으로 단까지 갔다. 북쪽으로 가는 이 여행에서 헤브론, 베들레헴 (여기서 그가 태어난 곳을 보았다), 예루살렘 (베다니에 들리지 않았다), 비어롯, 레보나, 시카, 세켐, 사마리아, 게바, 엔가님, 엔도르,마돈에서 멈추었다; 막달라와 가버나움을 거쳐서 북쪽으로 줄곧 여행했다; 메롬의 물 동쪽을 지나서, 가라타의 길로 단, 곧 케자리아 빌립비로 갔다.
134:7.6 깃들어 있는 생각 조절자는 이제 예수가 그의 인간 mind를 완전히 정복하는 일을 마치고 땅에서의 남은 생애를 충만히 헌신하도록 사람들의 주거지를 떠나 헤르몬산으로 인도했다.
134:7.7 이것은 유란시아에서 주의 땅의 삶 가운데 특별하고 놀라운 시기였다. 또 다른 아주 비슷한 시기는 세례를 받은 직후, 펠라 근처 산에서 혼자 보냈던 체험이었다. 헤르몬산에서 혼자 있던 이 기간은 순전히 인간 생애의 끝, 즉 그가 필사자로 자신을 수여하는 일이 절차상 종결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후일에 혼자 지낸 것은 자신 수여의 신성한 단계가 더 시작된 것을 표시했다. 예수는 헤르몬산의 비탈에서 6주 동안 하나님과 함께 홀로 생활했다.
8. 헤르몬산에서 머무르다
134:8.1 케자리아 빌립비 근처에서 얼마 동안 지낸 후에, 예수는 식량을 준비하였고, 짐 나르는 짐승과 티글라스 라는 이름의 소년을 데리고, 다마스커스 길을 따라 헤르몬 산기슭에 있는 베이트 젠 이라고 알려진 마을로 들어갔다. 서기 25년 8월 중순 무렵, 그는 이곳에 본부를 세우고, 식량을 티글라스에게 맡기고 나서 외딴 산비탈을 올라갔다. 이 첫날 티글라스는 예수와 동행하여 해발 약 1800m 높이로 올라가 티글라스가 일주일에 두 번 음식을 집어넣을 돌무더기 저장고를 만들었다.
134:8.2 첫째 날에 예수는 티글라스를 떠난 보낸 뒤에, 산을 조금만 올라갔고 기도하려고 멈추었다. 무엇보다도 수호 세라핌을 “티글라스와 함께 있도록”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간구했다. 그는 필사 존재 홀로 그 실체들과 마지막 투쟁까지 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 요청은 받아들여졌다. 그를 안내하고 버티게 할 깃드는 조절자만 함께 하고 그는 큰 시험에 들어갔다.
134:8.3 예수는 산에 있는 동안 음식을 아껴 먹었다; 그는 하루 이틀은 전혀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 산에서 영적으로 싸우며 그를 맞서던 초인간 존재들, 그와 능력으로 대결하고 그가 이긴 존재들은 실재했다; 그들은 사타니아 체계에서 그의 큰 적들이었다; 그들은 현실과 혼란스러운 정신의 환상을 구별할 수 없는, 허약하고 굶주린 필사자의 지적 변덕에서 생긴 상상의 환영이 아니었다.
134:8.4 예수는 8월의 마지막 3주와 9월의 첫 3주를 헤르몬 산에서 보냈다. 이 몇 주 동안, 그는 mind-이해와 personality-통제 성취 회로들의 필사자 과제를 마쳤다. 하늘 아버지와 교제 속에서, 깃드는 조절자도 또한 주어진 임무를 마쳤다. 거기서 그는 이 땅의 생명존재로서 필사자의 목표를 완수했다. 오직 남은 것은 mind와 조절자와의 조율을 이루는 최종 단계뿐이었다.
134:8.5 5주가 넘도록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끊임없이 친교한 후에, 예수는 자신의 본성과 시-공간에서 personality가 발현되는 물질 단계를 확실히 뛰어넘었다는 것을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그의 신성한 본성이 인간의 본성을 지배하는 것을 완전히 믿었으며, 이를 주저 없이 주장하였다.
134:8.6 산에서 체류가 끝날 무렵, 예수는 사람의 아들 요수아 벤 요셉으로서 사타니아의 그의 적들과 회의를 가질 수 있는지 아버지께 요청했다. 이 요청은 허락되었다. 헤르몬 산에서 마지막 주에, 큰 유혹, 즉 우주의 시험이 일어났다. (루시퍼를 대표하는) 사탄, 그리고 반역한 행성 영주 칼리가스티아가 예수와 함께 자리에 있었고 그의 눈에 완전히 보이게 나타났다. 이 “유혹,” 모반한 성격자들의 허위에 직면하여 인간적 충성심을 재는 이 마지막 시련은 먹을 것이나 성전 뾰족탑이나 주제넘은 행위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 세상의 나라들이 아니라 막강하고 영화로운 우주의 통치권과 관련이 있었다. 너희의 기록에 나타나는 상징은 세상이 유치하게 생각하던 뒤떨어진 시대를 위하여 의도한 것이었다. 후일의 세대들은 헤르몬 산에서 그 중대한 날에 사람의 아들이 얼마나 큰 투쟁을 겪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 성경 기록에는 예수를 향한 사탄의 시험이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40일을 금식한 예수에게 ‘돌들을 빵으로 변하게 하라’; 두 번째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천사들이 너를 받아서 다치치 않게 할 것이다’; 세 번째는 ‘나(사탄)에게 절하라,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을 너에게 줄 것이다’ 라고 시험하는 장면이다.
134:8.7 루시퍼의 밀사들이 내민 여러 제안과 반대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만 대답하였다: “나의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반역한 아들아,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이 너를 신성하게 심판할 것이다. 나는 너의 창조자-아버지이다; 너를 도저히 공정히 심판하기 어렵고, 너는 이미 나의 자비를 거절했다. 나는 너를 더 큰 우주의 심판자들에게 맡긴다."
134:8.8 루시퍼가 제시한 모든 타협안과 임시방편, 육신화로 자신을 수여함에 관하여 내놓은 모든 그럴듯한 제안에 대하여,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을 뿐이다, “파라다이스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벅찬 시련이 끝났을 때, 분리된 수호 세라핌이 예수 곁으로 돌아와 그를 섬겼다.
134:8.9 늦여름의 어느 오후, 나무들 사이에 고요한 자연 속에서, 네바돈의 미가엘은 그의 우주의 의심할 여지 없는 주권을 얻었다. 그날에 시-공간의 진화 세계에서 필사 육체의 모습을 입고서 육신화된 생명을 충분히 살라고 창조 아들들에게 주어진 과제를 마쳤다. 이 중요한 업적에 대한 우주 발표는 몇 달 후 세례 받는 날에 이루어졌지만, 그 모든 것은 사실 그날, 산에서 일어났다. 예수가 헤르몬산에서 내려왔을 때, 사타니아의 루시퍼 반란과 유란시아의 칼리가스티아 탈퇴는 사실상 해결되었다. 예수는 그의 주권을 얻기 위해 요구된 마지막 대가를 치렀다. 이 주권은 그 자체로서 모든 반역자의 지위를 규제하고 앞날의 모든 그러한 격변들이 (만약 일어난다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이른바 예수의 “큰 시험”은 그의 세례 직후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134:8.10 이 산에서의 체류가 끝날 무렵, 예수가 산을 내려가는 동안에 먹을 것을 가지고 만날 장소로 올라오는 티글라스를 만났다. 그를 돌려보내며 예수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휴식 기간은 끝났다; 나는 아버지의 일로 돌아가야 한다.” 단으로 돌아가는 동안 그는 말이 없었고, 많이 변화된 사람이었다. 단에서 예수는 소년을 보내고 당나귀를 주었다. 그런 다음 그가 왔던 길을 따라 남쪽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9. 기다리는 시간
134:9.1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다다랐고, 속죄의 날과 초막절이 다가오는 시기였다. 예수는 가버나움에서 안식일 동안 가족 회의를 가졌고, 다음 날 세베대의 아들 요한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출발했다. 그들은 호수 동쪽을 지나 게라사를 거쳐 요단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가는 길에 예수가 동행자와 만나는 동안, 요한은 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을 눈치챘다.
134:9.2 예수와 요한은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과 함께 베다니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들은 거의 3주 동안 도시 안팎에서 지냈는데, 적어도 요한은 그랬다. 여러 날 동안 요한은 혼자 예루살렘으로 들어갔고, 예수는 근처 언덕 위를 걸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영적인 친교를 여러 번 가졌다.
134:9.3 두 사람은 속죄의 날의 엄숙한 예배에 참석했다. 요한은 유대인의 종교의식에서 이날의 의식에 큰 감명을 받았지만, 예수는 사려깊고 조용한 관중으로 있었다. 사람의 아들에게 이 연출은 불쌍하고 보기에 딱했다. 모두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본성과 속성을 잘못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날의 행위들을 신성한 공정과 무한한 자비의 진리에 대한 왜곡으로 여겼다. 예수는 우주에서 아버지의 사랑하는 성품과 자비로운 행동에 대한 참된 진리를 세상에 선언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지만, 충실한 훈계자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다니에서 예수는 요한을 크게 혼란스럽게 하는 많은 말씀을 했다; 요한은 그날 저녁에 예수가 하신 말씀의 참된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134:9.4 예수는 요한과 함께 초막절 주간 내내 머물 계획이었다. 이 축제는 온 팔레스타인의 연례 명절이자 유대인의 휴가 기간이었다. 비록 예수는 그 축제의 즐거움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젊은이와 노인들의 가볍고 즐거운 모습을 바라보면서 기뻐하고 만족해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134:9.5 축제의 그 주가 한창 진행하는 가운데, 행사가 끝나기 전에, 예수는 파라다이스 아버지와 더 잘 교통할 수 있는 산으로 가서 쉬고 싶다고 말하고 요한을 떠났다. 요한도 함께 가고 싶었지만, 예수는 축제가 끝날 때까지 남아 있으라고 고집하며 말했다: “네가 사람의 아들의 짐을 질 필요는 없다; 도시가 평화롭게 자는 동안 파수꾼만 밤새 지키면 된다.”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베다니 근처 산에서 거의 한 주간 혼자 보낸 후에, 가버나움으로 떠났다. 집으로 가는 길에 길보아의 비탈에서 하루 낮과 밤을 혼자 보냈다. 그곳은 사울 왕이 생을 마감한 근처였다; 가버나움에 도착했을 때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요한과 헤어진 때보다 훨씬 더 명랑한 모습이었다.
134:9.6 다음 날 아침 예수는 세베대의 작업장에 남아 있던 개인 물품이 담긴 상자로 가서 앞치마를 두르고 작업을 시작하며 말했다. “내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쁘게 일해야겠다.” 그리고 다음 해 1월까지 몇 달 동안, 동생 야고보와 함께 배 작업장에 일했다. 예수와 함께 일하던 이 기간이 지난 후, 야고보는 예수의 삶을 이해하는 데 어떤 의심이 생겨도, 진정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예수의 사명에 대한 믿음을 결코 다시 포기하지 않았다.
134:9.7 배 작업장에서 일하는 마지막 기간동안, 예수는 몇몇 큰 배의 내부 끝손질을 하느라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모든 수작업에 큰 공을 들였고, 훌륭한 작품을 완성했을때 인간적 성취의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사소한 일에 시간을 거의 허비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일의 본질에 관해서는 성실한 일꾼이었다.
134:9.8 시간이 흐르자, 요단강에서 참회자들에게 세례를 주며 설교하는 요한에 대한 소문이 가버나움에 전해졌다. 요한은 이렇게 설교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세례를 받으라.” 요한이 예루살렘에서 가장 가까운 강기슭에 요단강 골짜기를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예수는 이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다음 해, 서기 26년 1월에 펠라에 가까운 지점까지 요한이 강을 거슬러 올라올 때까지 예수는 배 만드는 일을 계속하였고, 이때 연장을 내려놓고 외쳤다, “나의 때가 왔다.”고 선언한 후, 당장에 세례를 받으려고 요한 앞에 나타났다.
134:9.9 그러나 예수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이 땅을 다니며 방문하고 보살폈던, 그와 친밀하게 지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후 그가 공적인 선생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예전에 그들이 사적인 개인으로서 알고 사랑했던 동일한 사람으로 그를 인식하지 못했다. 초기 수혜자들이 공적이고, 권위 있는 선생의 후기 역할에서 그를 인정하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년 간, 예수의 mind와 정신의 변화가 진행되어 왔고, 그 변화는 헤르몬 산에서의 다사다난한 체류기간 동안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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