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삼회사 방문
하문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처음 도착한 곳은 선유현 시내의 어느 시장통 4층 정도 되어 보이는 허름한 상가 건물 입구였다. 큰스님은 이곳 건물 셔터 앞에서 주요 짐을 내리셨다. 셔터는 안으로 잠겨있었는데 초인종을 누른 후 한참 만에 한 할머니가 내려 오셨다. 큰스님은 할머니에게 매우 화를 내셨다. 아마 우릴 마중 나오기로 했던 일에 대한 전달이 제대로 안된 것에 대한 꾸지람이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도 만만치 않았다. 공항에서의 소란이후 또 한 차례 소동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큰스님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곳저곳 가게들을 기웃거리며 한동안 그저 묵묵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큰스님은 대단하신 분이야. 우리 제자들 앞에서 전혀 가식이 없으시다구! 저렇게 맘껏 소리 지르시며 다툼도 하시고!”
등원 스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다툼이 끝나고, 큰스님께서 건물로 올라가시더니 잠시 후 옷차림이 단정하고 젊고 예쁜 모습 아가씨가 한 사람 내려왔다. 이곳 사람 아닌 듯 매우 세련된 모습이었다. 그녀는 우릴 한 번 훑어보며 미소로 인사하더니 우리가 기웃거리고 있는 가게에서 거침없이 여러 가지 종류의 과일들을 사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과일을 한 광주리만큼 먹으라고 사서 주고는 금새 건물 위로 올라갔다. 우린 주로 처음 먹어보는 용안이라는 과일과 귤을 까먹으며 큰스님을 기다렸다.
큰스님께서 내려오시며 우릴 태우고 갈 다마스형 소형 승합차도 왔다. 우릴 마중 나오기로 했던 차라고 한다. 운전하는 이는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이인데 친절하였다. 차는 복잡한 시골거리를 신나게 달렸다. 중간에 오토바이 한 대가 마중 나와 우리 차를 안내하였다. 해는 저물고 벌써 어두워지는데 차는 오토바이를 따라 논두렁길로 달렸다. 오가는 사람들이 꽤 많은 길이다. 우리를 태운 차가 마을을 지나 절 입구에 들어서자 온통 폭음소리로 가득 찼다. 삼회사에 도착한 것이다. 관정 큰스님께서 주지로 계실 때 7일간 선정에 들어가 3,000명 제자가 큰스님께 귀의했다는 삼회사였다. 많은 스님들이 도열하여 폭죽을 터트리며 대단한 환영을 하는 것이다. 많은 스님들이 우리를 지켜보는 가운데 가져온 짐을 차에서 모두 내리고 대웅전의 부처님부터 참배하였다. 절이 매우 크고 역사가 오래돼 보인다. 주지 인창 스님이 우릴 안내하고 대접하느라 바빴다.
우리 모두는 시장한 터에 저녁 공양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수프와 만두, 각종 튀김, 야채 볶음요리 등 음식이 끝없이 나왔다. 우린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이 계속 나오자 우리는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이제 됐어요. 우린 너무 배불러요. 더 이상 못 먹어요!”
참으로 풍성한 환영만찬이었다.
공양 중에 큰스님은 이렇게 쓰셨다.
“采魚沒有刺”
(채소로 만든 고기에는 가시가 없다)
한국에서 제자들과 함께 중국에 온 것이 기쁘셨는지 농담까지 하시는 것이다. 저녁 공양을 마친 뒤 우리는 큰스님과 앞으로 다닐 절과 그곳에서 우리가 가져온 선물을 어떻게 나누어줄 것인지를 설명하였다. 큰스님은 우리가 다닐 절과 각 절 상주식구들 명단을 써 주셨다.
각 절의 대중 수
① 삼회사 등 대개 60명 – 선정에 들었던 곳을 답사한다
② 구선산 22명 · 미륵전 3명
- 극락세계에서 돌아온 곳을 답사한다.
➂ 봉비사 7명
➃ 맥사암사 6명 – 어디서(극락으로) 떠났는지 답사한다
➄ 적수암사 4명
➅ 천마사 4명
➆ 청천암사 8명
모두 7~8곳의 절을 다니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일 일정을 말씀해 주셨다.
내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을 올린다.
8시에 차가 도착하니, 그 때 출발하여, 청천암(사리탑) 보고 점심공양한 뒤 오후 1시에 구선산으로 떠난다.
그리고 노트에 이렇게 쓰셨다.
“保證你們有吃有住寺拜佛”
너희들이 먹는 것, 절에서 자는 것, 예불하는 것은 내가 보증한다(책임진다).
우리는 흔히 ‘보증한다(책임진다)’고 하면 ‘불편없이 잘 해 줄 것이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큰스님의 보증은 ‘완전 현지 중국식’으로 ‘보증’한다는 것이었다. 저녁에 우리들이 취침할 방사가 배정되었다.
등정 스님과 등원 스님은 위패를 모신 제실 옆방이 배정되었고, 우린 비구니와 보살들이 상주하는 방에서 같이 머물게 하였다. 등정 스님은 재실 옆방인지라 무서움이 생긴다고 하시며 그날 밤 잠을 못 잤다고 한다. 나중에 들어보니 비구 스님들이 머문 방은 스님들이 입적할 때 쓰는 열반당 방사였다고 한다. 등정 스님은 예민하셔서 기운을 잘 느끼신 듯하였다
3) 구선산 영취암사 방문
11월 13일 수요일, 새벽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하였다. 주지 인창 스님이 예불을 주재하였고, 큰스님께서는 축원하셨다. 예불할 때 이곳이서는 정토선 염불을 하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전국을 돌아다니시며 정토선 염불을 펴시는데 왜 큰스님이 주석하시는 절에서는 정토선 염불을 하지 않으신지 여쭈어보았다.
큰스님께서는 이렇게 쓰셨다.
“淨土禪密傳以心傳心 可以都看到淨土禪”
(정토선은 이심전심으로 들어내지 않고 전하기 때문에 정토선을 볼 수 없다.)
기억나는 것은 밤중에 방사 앞마당에서 보초 서듯이 사람들이 지켰는데 그들은 아침이 되어서도 마당에서 자릴 뜨지 않았다. 노지에서 이불을 덮고 자면서 밤새도록 우릴 지킨 것이다. 사찰 안이라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외국인인 우리들의 안전을 위한 큰스님의 조치라고 생각되었다.
아침에는 나무로 만든 양동이 같은 물통 여러 개에 물을 따뜻이 덥혀서 수로가 있는 마당 귀퉁이에 내놓았다. 세면과 양치를 도운 배려였지만 많은 이들이 우리들의 동태를 구경하듯 살피는 바람에 약간은 불편하기도 하였다. 큰스님과 더불어 모두는 아침 공양을 마치고 짐을 정리하여 내놓고 순례준비를 하였다. 떠나기 전에 큰스님 안내로 다시 한 번 사찰 경내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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