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생각 해, 그냥 같이 가자니까 흐흐흐
나도 변죽이 대단하네, 사회 물을 빨리 먹어서 그런가봐.
같이 가면 좋고, 아니면 가서 접수대에 봉투만 준 다음,
누나 얼굴을 보지않고 그냥 오는 거지 뭐.’
“오빠! 그냥 오빠라고 하는 게 편할 것 같아요.
전도사님이 오빠를 왜 주인공으로 정했냐 하면요,
오빠가 하얀 얼굴이라 조명도 잘 받고 윤곽이 뚜렷해서
감정을 표현하는데 딱 이래요.”
희숙의 집에서 두 번을 더 만나 연습을 하면서부터,
두 사람의 마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서로가 생각해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몇 년을 사귄 사이같이 만나면 스스럼도 없고,
상대방이 믿어지고 대화가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만나서 얼굴을 마주 대하면, 견우와 직녀같이 서로가 행복했다.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니, 헤어지는 그 순간부터 그리워졌다.
언제 지연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었는지 까맣게 잊고
하루를 온통 은숙의 생각으로 보내는 정길이다.
문득 지연의 생각이 나도,
당시에는 죽을 거 같던 그 시절이 언제인가 까마득하게 먼 일 같고,
지연의 얼굴이 곧, 은숙의 모습으로 바뀌어 버리니 이상한 일이었다.
공사가 여기저기 벌어지자,
진혁이 비자금이 달려 몇 번이나 망설이다 할 수없이 정길에게 손을 내민다,
동업자를 한 사람 더 받아들이다보니,
아직 체계가 안 잡힌 회사지만 적은 액수일지라도 두 사람이 동업할 때와 달리,
일일이 청구서를 내밀어야 하고, 사유서를 적어야만 했기에,
판공비 책정을 높이기전까지는 명색이 사장인 진혁이
불편을 느끼는 것이 당연했다.
“정길아 아무래도 통장에서 돈 얼마 빼서 써야 되겠다.
나중에 채워 줄 테니 통장하고 도장 이리 주렴,
아니면 네가 은행에 갔다 올래?”
“안 돼요. 아버지
내년 구정 전에 집에 가기로 하시고, 잊으신 거 아니지요?
가서 집 문제 해결하기로 했잖아요.
어머니도 그렇게 알고 있고,
집이 없어 벌써 몇 년째 남의집살이를 하는지 몰라요.
왜 그러세요! 혹시 삼척 분 때문 이예요?
아니면 회사 판공비 때문입니까?”
‘무조건 안 되지. 그 돈이 어떤 건데요.
내 돈은 아니지만 어떻게 해서 모은 거 아시면서
내 월급도 고스란히 들어 있다고요.
월급날 인부들이 안 찾아가는 동전 한 닢도 쓰지 않고 아끼며 모았어요,
아버지는 모르시겠군요.’
“알았다
다른데서 빌려보지 그래 집 살돈이 되기는 하는 거냐?
그 쪽에 아무리 부동산 값이 없다 해도 힘들 것 같은데,
이번 공사 끝내고 다음에 더 모아서 내 년 가을쯤 사면 안 될까?”
“아니요. 아마 될 거예요.
아버지는 지금 통장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잘 모르셔서 그러시지요,
올해 말에 공사대금 받으시면 주기로 한 것과 합치면 충분해요.”
“그래 얼마나 되는데?
집을 사려면 적어도 백오십만 원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
“네, 내년구정 쯤 이면 그 만큼은 될 거예요.
가계가 두 개 정도 달려있는 집을
엄마에게 천천히 알아보시라고 했으니 가서 같이 보시고,
좀 모자라면 전세 끼고 사면 될 거예요.”
“너 정말 대단하다.
내가 그렇게 만들만큼 준 적이 없는 것 같았는데,
난 그저 이번에는 안 될 거다 다음에 사지, 하고 전세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하 혹시 몰래 빼 돌린 것 아니냐?”
“아버지도 참!
그럴 돈이 있기나 했나요? 모두 확인 할 수 있는 돈 이예요.
날자가 찍혀 있고, 내역도 확인 할 수 있으니까요.”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하하하
정길아 너 참, 대단하다 ,
내가 그동안 살면서 돈을 너무 쓸데없이 헤프게 사용했나보다.”
“아버지가 주신 송탄 집의 생활비 중에 일부만 송탄에 보냈고,
그 외로 주시는 돈과,
내 월급이 거기 모두 들어있어요.”
“그래 어쩐지!
그렇게 된 것이구나. 너도 돈 쓰고 싶었을 텐데, 그렇게 아꼈구나,
그동안 정말 애 많이 썼다.”
“아버지가 주시는 생활비를 다 보낼까 했지만,
그동안 하도 없이 살아서,
조금만 가지고도 충분히 생활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집을 사게 된다면, 어머니는 물론이고 정옥이 하고,
정필이도 정말 좋아 할 거예요.”
“네가 그렇게까지 어른스러운 생각을 할 줄은 정말 몰랐다.
내가 너에게 부끄럽구나.
집이 없는 설음을 내가 너무 잘 알지.
북한에서 피난 나와서 처음에는 학고 방에도
세를 들어 살았었다.”
“이번에 집 없는 설음과,
못사는 한을 우리가족에게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말이다.
아버지가 삼척에서 딴 살림 하는 거, 엄마에게 아직 말 안 했지?”
“그걸 어떻게 말해요. 아버지가 이번에 가서 하세요,
아버지가 하셔야지 전 못해요,
나는 어머니를 보기만 해도 불쌍해 보여 그런 말 절대 못해요.”
“그래 언제고 기회를 봐서 내가 말해야지.
미안하다, 이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엄마와 나의 일이라, 네가 할 말이 아닌 것을 몰랐구나.”
정길이 그동안 자기 용돈은,
부수입 올린 것으로 쓰고 있는 줄 진혁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진혁은 정길이 어느새 저렇게 어른스러워졌는지 대견했다.
여자 문제도 녀석이 자그마치 8년이나 연상인 여자를 녹였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확실히 조상으로부터의 내림인가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써야 할 돈에 대한 말을 꺼냈다가
정길의 말을 듣고 나서는 앞으로 꼭 필요치 않는 지출은 줄여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회사에서 판공비가 오르기까지는 사유서든 청구서든 쓰면 돼.
하고 그냥 없는 대로 견디어 보기로 한다.
아들이 저렇게 절약하는데 모른 채 할 수만 없는 것이다.
확실히 따로 모여 연습을 하니 성극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진도가 빠르다.
이제는 서로서로 호흡이 잘 맞아,
교회에서 전체가 모여 리허설을 할 때, 모두가 놀라는 것을 보고,
더 보람을 느끼는 세 사람이다.
오늘은 희숙이 저녁을 준비한다고 해서
모이는 한 시간을 당겨 일찍 모여 연습을 했다.
“고마워 저녁 먹지 말고 오라고 해서 왜 그러나 했지.
네 생일도 아닌데 잘 먹었어. 주일날 교회에서 만나자.
집사님, 우리들 때문에 저녁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입에 꼭 맞아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아냐, 얘가 다 하고 나는 조금 거들기만 한 걸.
잘들 가,
아까 들어보니까 진짜같이 잘들 하던데,
이번 성극은 은혜 받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집사님 감사합니다.
주일 날 교회에서 뵙겠습니다. 희숙 자매도 주일날 봐요.”
“잠깐만, 은숙아 아무 말도 안 하고, 뒤 돌아 바로 가면 어떡해?
대답을 해 줘야지.”
“오빠가 따라 올걸 알았으니까.
희숙이가 서서보고 있는데, 어떻게 오빠하고 같이 가면서 그 말을 해요.
흠~ 같이 갈게요.
그날 아침 9 시 차예요?
시외버스 여객 대합실에서 기다릴게요.”
“고마워!
은숙이가 안 간다고 했으면 나도 안 가려고 했는데, 하하하하
그 날 저녁에 맛있는 것 사줄게.”
“오빠가 내 뒤를 쫓아오는 것을 희숙이가 봤으니까,
이제는 교회에도 소문이 날거예요.”
“진즉 그럴 걸.
아예 교회계시 판에 써 붙일까?
은숙이는 정길이의 애인이다, 하고, 하하하하.”
“누가? 누구 애인이요?
떡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데, 호호호
오빠 괜히 김칫국 먼저 마시지 마세요.”
“허허 우리는 이미,
하늘에서 점찍어 놓은 사람들이기에
서로가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 것을 그대는 모른단 말이요.
괘씸한 지고. 부정이 곧 긍정이라 했으니,
내가 이번만은 용서해 주겠소이다.”
“깔깔깔 호호호 그만 웃겨요.
그러니까 정말 늙은 할아범 같아 보여요,
오빠는 정말 재미있어.”
위기가 곧 기회라더니 과감하게 방법을 바꿔 공사를 마무리하는 바람에,
회사에는 때 아닌 훈풍이 분다.
공사를 아무리 잘 끝낸다 해도 손해를 예감했는데,
적을지언정 흑자를 봤으니, 간부들 모두의 표정이 밝다.
“이번 연말에 본사에서 감사장을 준다고 합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오히려 호평을받아 본사 회장님도 기분이 좋으신가봅니다.
더구나 이번 공사는 잘되면 본전이요,
안 되면 손해 보는 사업이라 신경이 쓰였을 겁니다,
우리보고 손해를 안으라고 한 것은 우리를 버리려고 한 거지요,
전화위복이라고 이 일을 잘 끝낸 덕에
본사에서 우리 회사를 달리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고 뭐 더 좋은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내 예감이 그런데요.
사장님 아버지 어서 말씀 하세요.’
“이번에 본사에서 쌍용 시멘트 동해공장 건설을 맡았는데,
우리도 끼워 주기로 합의가 이미 됐답니다.
큰 공사라 족히 3~4년은 걸릴 것 같으니,
우리 회사도 이번을 성장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숙달된기술자들이 딴 곳으로 가지 않도록 인사 겸,
경리 담당 부장님께서 잘 처리 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공군기지 공사에서
우리가 인정을 받아서 한 자리 끼워주기로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