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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나라 스키타이 3
우리가 시베리아와 관련이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 넓은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말하는지 파악하기는 힘들다. 시베리아는 넓고, 지역마다 문화가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바이칼 유역의 세로보 문화를, 청동기시대에는 예니세이 강 상류지역의 카라수크 문화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초기 철기시대에는 타가르 문화나 파지릭 문화를 거론하기도 한다. 우리가 스키타이 문화라고 한 것은 사실 헤로도투스가 말한 흑해 북안의 그 스키타이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스키타이 문화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사카 문화, 알타이의 파지릭 문화, 그리고 예니세이 강 유역의 타가르 문화를 말한다. 가깝게는 오로도스 지역의 모경구 문화도 있다.
시베리아에서는 예니세이 중·상류 지역이 가장 발달된 면모의 선사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구석기시대부터 역사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화가 발달했다. 신석기시대 후기부터 초기 철기시대까지는 타스민 문화, 아파나시예보 문화, 오쿠네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카라수크 문화, 타가르 문화가 일부 공존하기도 하면서 차례로 등장했다.시베리아의 구석기시대 유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아마도 예니세이 강과 레나 강 상류 사이에 자리 잡은 말타 유적일 것이다. 이곳에서는 매머드의 상아로 만든 여인상과 새(鳥)상이 발견되기도 했다. 시베리아에는 또한 암각화 유적이 수없이 분포한다. 예니세이 강 유역에는 바야르 암각화와 쉬쉬카 암각화가 있다. 특히 바야르 암각화에는 소도 그려져 있고, 천막도 그려져 있고, 또 솥도 그려져 있다.
예니세이 강 상류 지역의 신석기시대 후기 타스민 문화에는 사람의 형상을 새긴 선돌과 계란 모양의 돌이 있다. 시베리아의 청동기 문화를 연 것은 기원전 3000년 중엽~2000년 초의 아파나시예보 문화다. 이 문화는 미누신스크 분지를 중심으로 하지만 관련 유적들이 동쪽으로 몽골에서까지 확인되었다. 이후 오쿠네보 문화 단계를 거쳐 안드로노보 문화와 카라수크 문화로 넘어간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그 중심 지역이 지금의 카자흐스탄 지역이다. 이 문화 자체는 기원전 17세기에 시작됐지만, 예니세이 강 유역의 안드로노보 문화는 대체로 기원전 14~12세기로 편년된다. 안드로노보 문화는 번개무늬 토기가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묘하게 연해주와 두만강 및 압록강 유역 토기에도 그와 꼭 같은 번개무늬가 새겨져 있다.
기원전 14/13~8세기의 카라수크 문화는 광대한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서쪽으로 멀리 우크라이나 지역까지, 남서쪽으로 카자흐스탄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중국 북방 지역과 동북3성, 한반도 그리고 연해주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쳤다. 이 문화의 석관묘는 한반도 청동기시대 석관묘의 기원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됐다. 청동 단검과 손칼, 멍에 모양의 청동기, 물갈퀴 모양과 연주형의 청동 장신구, 동포 등 수많은 청동기가 제작 사용됐다. 그중에서 산양과 사슴뿔 모양의 손잡이 끝 부분 장식이 있는 단검과 손칼은 몽골과 중국 북방 지역, 그리고 심지어는 은허에서조차 발견됐다. 방울 모양의 손잡이 장식이 있는 단검은 중국 북방 지역에 널리 확인된다.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둥근 고리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손칼이 우리와 깊은 관련이 있을 것이다. 평북 용천 신암리 유적에서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것과 꼭 같은 청동 손칼이 출토되었다. 비파형동검보다 더 이른 시기의 청동 유물로서 한반도에서 가장 이른 청동 유물 중의 하나다. 카라수크의 손칼은 연해주에도 보인다. 이 시기 북방유라시아 대륙은 그야말로 시베리아에서 불어온 카라수크 문화라는 강풍이 휩쓸고 있었고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바로 연해주와 한반도의 청동기문화는 그 시작이 시베리아 예니세이 강 유역의 카라수크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연해주와 한반도의 이른 시기 청동유물은 많은 부분 카라수크 문화와 공통성을 띤다. 앞의 청동 손칼이 그러하고, 청동기시대 전기의 검신이 세장한 삼각형 모양인 마제석검이 그러하다.시베리아의 바람은 이후 초기 철기시대인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에서 더욱 세차게 불었다. 남시베리아 지역에서 발생한 '스키타이' 동물 양식과 같은 문화 요소들이 서쪽로는 카르파트 산맥에까지 이르고, 동쪽으로는 하북성 북부지역까지 도달하여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소위 '스키타이 문화'로 뒤덮었다. 이 시기 고조선은 카라수크 문화에 뒤이어 바로 선흉노-스키타이 세계와 인접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기 고조선을 대표로 하는 '환(環)만주문화권'은 비파형 동검이라는 독특한 청동단검 문화를 창조했지만, 역시 서쪽의 유목민 문화 요소를 전혀 모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를테면 신석기시대부터 뛰어난 문화를 태생시킨 시베리아 대륙은 계속해서 새로운 문명을 태동했으며, 그 영향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는 북방유라시아 대륙을 모두 포괄했다. 한반도와 만주지역 그리고 연해주도 그 시베리아의 바람을 피할 수는 없지 않았는가 싶다.
스키타이와 흉노 , 기마민족은 몽골,돌궐,동이족이 아마 대표격일 것이다. 그들은시베리아 남부를 거점으로 해서 시작하더니 알타이 산맥을 중심으로 해서 움직였다. 그런데 스키타이는 2세기경에 사라졌는데 이때부터 갑자기 흉노가 강성해진다. 스키타이가 또 이동을 하여 흉노와 혼재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서로 향한 흉노는 4세기경에 로마를 무너뜨렸다. 동으로 향한 동이족은 ㅅ고조선이라는 역사적인 발자취를 남기고 한 때 중국을 좌지우지 했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청동기문화다. 석기시대와 청동기문화의 대표적 유물이 바로 고인돌인데 유독 우리나라에 많은 것이 고인돌이다. 세계에 고인돌이 55000여개가 있는데 그중에 80%인 4만여개가 한반도에 있다. 러시아에서 보이는 선돌이 유독 우리나라에 많이 널려있는 것이다.
17000여개가 북한에 있고 전라도에만 2만개가 넘는 고인돌이 있다. 요즘 학계에서는 스키타이와 고조선과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다.스키타이문화의 정수는 뭐니뭐니 해도 거대한 고분문화와 그 부장유물이라 할 수 있다. 땅속에 거대한 목곽을 만들고 그 위를 돌무지와 흙으로 덮은 거대한 무덤, 즉 쿠르간(Kurgan)을 말한다. 여기에는 다양한 청동유물이 부장되어 있는데 전반적인 양상은 군사적, 유목적, 수렵적 전통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초원지대를 중심으로 하여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 및 내몽고에 이르는 지역에 광범위하게 발견되는데 특히 특징적인 동물형 장식물과 단검을 위시한 무기류, 그리고 무덤의 구조와 말의 순장에서 공통성이 두드러진다. 스키타이족의 선주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데, 이란고원설과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설 등이 유력하다.
스키타이의 역사와 문화는 B.C. 6-7세기의 전기와 B.C. 4-5세기의 중기, 그리고 B.C. 2-3세기의 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기는 스키타이족이 흑해 북안의 초원지역으로 전입하여 자신의 문화를 성립시키던 시기이다. 유적유물 전반에서 나타나는 양상으로 보아 유목적, 군사적 성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데, 스키타이문화의 주요한 골격이 이 시기에 모두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무기류나 공구류 전반에서 철제품이 고루 확인되고 있어 초기부터 철기화가 상당히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기는 스키타이족 뿐만 아니라 문화의 전성기로서, 동물형 장식물로 상징되는 특징적인 유물들이 가장 정형화되고 번성하는 시기이다. 쿠르간 역시 이 시기에 대형화, 복잡화되는 경향을 보이며, 다수의 순장인과 순장동물, 그리고 황금제 유물들이 부장되었다.
이 시기에는 그리이스 문화와의 교섭관계도 많이 확인되는데, 전통적인 목곽 대신에 그리스풍의 아치형 무덤방 구조도 등장하게 된다. 이후 그들은 B.C. 3세기경 싸르마트족의 공격으로 쇠락하기 시작하다가 B.C. 2세기경 멸망하게 됨으로써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진다. 스키타이족의 문화는 뒤를 이은 싸르마트족 문화에 상당수 반영되어 지속되는데, 싸르마트족 또한 A.D. 4세기경 흉노족의 공격을 받아 멸망당한다. 스키타이족을 사실상 멸망시키고 흑해 북안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한 싸르마트족의 원류는 B.C. 7-4세기까지 볼가강과 우랄지역의 초원지대에 분포되어 있던 싸브라마트족(Sabramatian)이다. 흉노는 진한제국시절 중국 고대문헌에 기록된 중국 북방에 살던 이민족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니까 진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얼마 전부터 오늘날의 북중국과 내몽고 일대에서 활동하던 유목민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이 하나의 커다란 연맹체를 이루어 중국사의 무대에 대두하는 시기는 전국시대 후기, 즉 기원전 4세기말부터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선우[單于]라 불리었는데 전국시대 후기부터 세력을 북중국으로 확대하니 북중국 일대의 연나라, 조나라, 위나라 등은 장성을 쌓고 서로 대결하게 된다. 이것이 만리장성의 기원이 아니던가. 그들은 기원전 3세기 후반 두만선우 때에 이르러 부족을 통일하고 그 다음의 묵특선우 때는 중앙아시아의 오아시스지대를 포함하여 내몽골과 북중국의 최강자로 등극하게 된다. 우리에게 알려진 흉노족 혹은 흉노문화는 바로 이때부터이며, 흉노가 북흉노와 남흉노로 분열되는 기원후 1세기의 후한 광무제시기를 정점으로 중국문화에 동화되거나(남흉노), 중국과 선비 등 새로이 등장한 북방이민족의 외압과 자체분열로 인해 몽골고원의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고(북흉노) 2세기 후반이후 결국 중앙아시아로 본거지를 옮기면서부터 역사기록에서 또 사라지고 만다.
그런데 스키타이 세계의 공통요소는 이후에도 장구한 시간 유라시아로 퍼져 흉노와 우리에게도 이어졌다. -마구의 세부장식 -남자의 카후탄의 머리장식, 신발류 등 복식품 -음식물을 익히는 청동솥을 비롯한 청동이나 목제용기 -무기류 : 짧은 활, 화살, 화살통, 아키타케스형 단검 등 -미술의 모티프와 장식 : 동물문양 등이 바로 그것들인데 이들 출토품에서 한결같이 보이는 것이 스키타이적 동물의장이다. 앞서 말하였지만 그 중 신라와의 친연성은 아주 독특하고 이례적이다. 이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적석목곽분
-적석목곽분은 경주지역에서 4세기 초에 나타난다. 알타이 지역의 대표적 적석목곽분은 이시크 쿠르칸, 파지리크 고분 등이다. 이 고분이 만들어진 시기는 신라 왕보다 800년이나 앞선다. 적석목곽분의 구조는 통나무집에 관을 넣고 부장품을 넣은 다음 그 위로 자갈돌을 쌓아 덮는 것이다. 이것이 스키타이-알타이의 쿠르간이고 신라의 적석목곽분이다. 바이칼 주변의 알타이 지역에서는 백화나무로 통나무집을 짓는데 그 양식이 죽은 사람의 무덤을 만드는 기본구조이다.
-이들 무덤 속에서 금관, 금허리띠 등 많은 금세공품이 발굴되었다. 그 디자인도 북방 유목문화의 특징을 띠고 있다. 스키타이, 흉노 등 북방유목민은 금세공에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지는 알타이 산맥으로 알타이란 금이란 뜻이다. 경주 천마총 안으로 들어가 보면 무덤의 주인공이 금관, 금팔찌, 가슴장식, 금귀고리, 금허리띠 등 온통 금장식품들을 지니고 있다. 이시크 고분의 금제 유물은 수백점에 이른다. 신라 적석목곽분엔 중국식 물건이 거의 없는 반면 몽골 초원 문화를 이어받은 유물들과 로마지역에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제품이나 공예품들이 많다.
-적석목곽분에는 마구와 무기가 많다. 즉 무덤의 주인공이 기마군단의 지휘자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철기문화의 유물로 생각되고 있는 경주 입실리, 영천 어은동(추정연대:AD1c)의 유물에 약간의 마구 혹은 스키타이계의 영향을 받은 동물형 대금구 등이 있어 상당히 오랜 옛날에 말문화가 전래되었음을 말해준다.
2. 금제모자 (금관) 신라 시대 귀족인 서봉총의 여자주인공이 썼던 금제 모자(금관)는 북연의 풍소불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 모자와 바이칼 지역 샤먼의 무당의 모자와 똑같은 디자인이다. 둥근 형태로 이마 높이로 이마와 뒤통수를 잇는 헝겊이 정수리에서 열 십자로 교차하게 만들었다. 이는 또한 우리나라 여자 아이들이 설빔으로 쓰던 모자인 ‘굴레’와 같은 모양이다.
3. 수목 숭배
알타이 지역 적석목곽분의 나무는 백화나무이다. 백화나무는 서쪽 전시베리아 지역에 자생하는 한랭지대의 나무다. 신라 천마총의 말다래는 흰 백화나무껍질로 제조했고 그 위에 천마도를 그렸다. 그리고 모자까지 만들어 쓰고 다녔다. 일본에서는 신라를 白木이라고 표기하고 시라키라고 읽었다. 유목민이었던 스키타이족도 이승의 집이나 저승의 집을 백화목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4. 새
카자흐스탄의 알마티 동쪽 이시크(Issyk) 고분에서 발견된 기원전 3세기경 사람인 스키타이 여자 戰士(전사)는 금으로 만든 솟대를 모자에 달고 있었는데, 그 모양이 신라 금관과 똑같다. 특히「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은 여자 귀족의 높이 올린 머리장식에서 금으로 만든 새가 여러 마리 달려 있었는데 신라 자비마립간의 여동생인 鳥生夫人(조생부인)은 이름도 새가 낳은 부인이라는 뜻이지만 그 여인의 직업도 의례를 관장하는 祭官(제관)이었다. 신라와 유사한 민족구성과 문화양상을 지닌 弁辰(변진)에서 大家(대가)가 죽으면 대문에 새의 날개를 달았다고 한다(魏志 東夷傳). 죽은 자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인 실물로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청동 조각품에 나무 위에 새들이 앉아 있는 것들은 한둘이 아니고, 경주 瑞鳳塚(서봉총) 금관은 머리 부분에 세 마리의 새가 앉아 있었다. 신라 金氏 왕들의 조상인 김알지가 계림에서 발견되었을 때 온갖 새들이 노래하였다. 일본 古墳時代(고분시대)의 벽화에는 死者(사자)의 영혼을 실어 나르는 작은 배(船)의 항해사로 새들이 앉아 있다. 나라(奈良)의 후지노키 고분에서 발견된 금동관에는 십여 마리의 새들이 앉아 있다. 일본 神祠(신사)의 입구를 지키는 도리(鳥居: 門)도 새들이 앉는 곳이다.
흉노 추장의 모자 꼭대기에 새가 달려 있다. 야쿠티아 박물관에 말과 백화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곳에 여러 개의 솟대들이 전시돼 있다. 어느 솟대에는 까마귀가 한 마리 앉아있고 어느 솟대 위에는 여러 마리의 새가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몸집에 크고 여러 마리의 새는 몸집이 작다. 높은 솟대위에 앉은 까마귀는 왕이고 얕은 솟대 위의 새들은 신하들이다. 소호국의 모든 공경대부가 각종의 새들이었다는 내용을 현대 민속이 설명하고 있다. 소호는 중국 고전인 산해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서방의 신이다. 소호는 황아라는 선녀의 아들이다. 황아는 베를 짜는 여인으로 뗏목을 타고 은하를 저어나가 궁상이라는 뽕나무 밑에서 백제라는 소년을 만나 사귀었다. 이때 그들이 타고 놀던 뗏목의 돛대 위에 옥으로 깎은 비둘기를 달아놓아 방향을 잃지 않게 하였다. 황아와 백제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인물이 바로 소호이다. 뽕나무 아래서 태어났다고 하여 일명 궁상씨(窮桑氏)라고도 한다. 소호는 장성하여 고향을 떠나 동방의 바다 밖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 소호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소호국에서는 모든 공경대부가 각종의 새였다.
알타이 문화권에서는 鳥葬의 풍속이 있다. 글자 그대로 사람의 시신을 새를 통하여 하늘나라로 보내는 엄숙한 의식이다. 까마귀 또는 독수리가 내려와 쪼아 먹는다. 특히 전통적인 햐먼의 주검이나 후대에 휴행하는 라마교 승려의 주검은 철저하게 조장으로 처리되는 전통이 계속되고 있다. 새들을 이용하여 영혼을 고향인 하늘 나라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솟대와 새는 모두가 알타이 문화권의 오랜 전통으로부터 현대 민속으로 계승된 것들이다.
5. 곡옥
파지리크 5호 고분에서 나온 물건 중 통나무집 벽에 걸어 놓았던 모직 담요 펠트(Felt)가 있다. 수놓아 그린 그림에 두 사람이 보인다. 왼쪽 사람은 의자에 앉았는데, 동양인 얼굴에 머리를 박박 깎은 모습이고 푸른색 두루마기를 입고 있다. 오른쪽 사람은 말 위에 앉은 남자 기사인데 튜닉형의 半두루마기를 입고 곱슬머리에 콧수염을 감아 올린 아랍인 型이다. 파지리크의 曲玉은 기사가 탄 말의 가슴에 한 개, 콧잔등에 한 개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곡옥은 굽은 옥으로 커다란 머리와 가는 꼬리로 구성되고 머리 부분에 구멍이 뚫려 끈을 꿰어 매달 수 있는 장신구이다. 대부분 푸른 玉 제품이고 때로는 金製 또는 石製도 있다. 곡옥은 신라 왕족의 금관, 목걸이, 허리띠에 여러 개 달려 있어서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6. 물고기 문양
스키타이인들은 馬面과 말 다래에 물고기 한쌍을 장식하였는데 신라 금제 허리띠에 물고기 장식이 있으며 김해 가락국 수로왕릉의 대문에 새겨져 있는 쌍어문도 같은 사상적 맥락이다. 알타이어족의 한 갈래인 바이칼 에뱅키족의 샤먼 복장의 장식에도 물고기 문양이 들어간다.
7. 백마
러시아 바이칼 지방의 원주민들은 한국사람의 모습과 똑같은 북방계 몽골로이드이다. 브리챠트족과 에벵키족이 주력인구다. 브리야트족은 한국인과 가장 유전인자가 가까운 종족이라고 한다. 이들의 샤먼의 복장은 신라왕족들의 제복의 선형을 설명하고 있는 듯하다. 등과 가슴에 달린 금속장식-새들과 물고기은 신라왕족묘에서 발굴되는 허리띠 장식과 비슷하다. 이르쿠츠크 북쪽에 야쿠티아가 있다. 야쿠트족은 브리야트족의 일파이다. 야쿠티아는 러시아식 이름이고 이 지역 토착주민들은 자신들을 사하족이라고 부른다. 사하라는 말의 뜻은 해 돋는 땅이다. 이곳 박물관에 박제된 백마 한 마리가 있다. 다리가 짧은 몽골마 계통인데 성스러운 장소를 표시하는 금줄을 띄우고 줄에는 색깔 있는 헝겊을 달아놓았다. 백마는 정의로운 통치자가 타는 말이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성한 말이다. 카자흐스탄의 이씩 지방에서 발굴된 스키타이 말기에 고분의 주인공은 흰말을 타고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신라의 박혁거세도 백마가 나정에 놓고 간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다. 신라 천마총에는 백마가 구름을 가르며 힘차게 뛰기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장니가 발견되었다. 이렇게 백마는 정통성을 갖춘 통치자를 상징하는 기마민족들의 善神이다.
8. 각배
각배는 제사용 술잔으로 이스라엘 민족, 스키타이족에서부터 아시아의 기마민족 문화가 퍼진 전 지역에서 유행한 술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가야 지역에서 발견된다.
9. 동복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는 기마민족의 상징적인 유물로 크고 작은 동복이 발견되는데, 이러한 동복은 가야시대 고분인 대성동과 양동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훈족은 동복을 말 잔등에 싣고 다녔다. 1924년 경조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국보 91호인 기마인물상 토기를 보면 말 잔등에 동복을 긷고 있다. 스키타이의 청동제 복은 조리용, 향로용 등 종류가 다양한데 같은 모양의 동복이 한국의 가야고분에서도 출토되어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신기하다 싶은 친연성으로 스키타이나 유라시아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유목민들이 생활하는 초원지대는 정착국가와 같이 경계가 나누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말을 타고 달리며 상당히 먼 거리도 빠른 시간에 이동하며 그들의 생업특성에 의하여 부족끼리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제국을 이루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였을 것이다. 우리 민족 역시 그들처럼 말을 타고 멀리 온 사람들이 아닐까. 스키타이가 사용한 각궁과 말 위에서 활을 쏘는 모습, 흉노의 기마모습이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모습과 거의 일치하는 것, 스키타이의 대표적인 문화인 동물문양의 모티프가 될 수 있는 그림이 알타이지역에서 훨씬 빠른 시기에 이미 등장했으며 사슴을 소재로 한 그림은 부여지역에서도 발견이 되고 있음이 이를 말한다. 중국에 연연한 우리 고대 민족이 아니었음을 이 참 말하고 싶다.
이 한 작품이 주는 역사적 사실, 말등에 얹힌 동복을 보라.
국보 91호 금령총 출토 기마인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