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동북공정 강좌 9
단군신화에 무관심한 시대
마고지나
단군신화? 단군사화?
우리는 단군신화의 형식을 무엇으로 정의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하여 2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의 견해는 “단군신화가 문화적 소산이고,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신화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그것은 장구한 역사를 압축한 하나의 기록이므로” 역사사화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단군신화를 신화로 보든 사화史話로 보든, 단군신화에서 역사만을 찾아내고자 한다면, 신화로 보나 사화로 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중요한 것은 단군신화에서 우리가 역사와 관련하여 무엇을 찾아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러한 과제 때문에 단군신화를 신화로 보지 않고 사화로 보고자 하는 충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단군신화 시리즈물로 인터넷 카페에 올린 “단군신화를 역사로 해석하기 위한 전제”라는 글에 대하여 어느 분이 다음과 같은 반론의 글을 올렸습니다.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 그런 건 모두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논란 자체가 바로 그들(?)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내용이 신화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논쟁을 하더라도 신화냐 아니냐의 논쟁이라야지, 신화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신화임을 인정해놓고 그 해석을 가지고 논쟁을 하기 때문이지요. 나는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 내용을 '단군고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설명하지요. 그려면 '신화의 해석'이라는 논쟁은 없어집니다. 어느 역사적인 기록에도 단군신화라고 하지 않았는데, 왜 단군신화라는 말을 쓰면서 그 해석의 문제로 논쟁을 삼아야 합니까?
많은 학자들이 신화가 아니라고 합니다. 단군신화라는 말 자체가 일본의 금서룡이 처음 붙인 단어이므로 그 용어자체를 부인해버리면 '신화해석'의 논란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 곳에도 신화라는 기록이 없고 그 내용자체가 신화가 아니니까요. 일부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도 전체가 신화는 아니며, 신화라고 해도 단군이 신이 아니니 단군신화는 더욱 아니라는 주장들이 많지요.
나는 신화, 단군신화라는 용어를 쓰는 것 자체를 반대합니다. 그 용어를 쓰면서 신화의 해석방법을 논하는 것은 그들(일본인 등)의 함정에 빠진 형상이니까요. 이는 신화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단군이전 역사만 정립하면 그냥 해결되는 부분이지요.
문제는 그 이전은 원시시대하고 하여 역사에서 취급하지 않고, 고고학이나 인류학에서 취급하는데, 그 이론으로 이 단군고사의 기록을 해석하면 되지요. 고기의 해석이지 신화의 해석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를 '단군신화'라고 전제하고 그 해석을 가지고 논란하는 것은 바로 그런 함정에 빠지는 것으로 보아 이를 반대합니다.
일본과 중국이 단군신화라고 하지만 우리가 단군고기라고 하면 해석의 논쟁에 휘말리지 않는다는 것이 반론의 요지입니다. 신화라고 할 때, 역사로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 반론에 나타나는 우려입니다.
신화의 포괄성
그러나 신화가 갖는 의미의 포괄성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인류는 저들 나름대로 창세신화나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창세신화와 시조신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신화로 표현된 글을 굳이 사화로 고집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신화는 조상이 후손에게 던지는 수수께끼와 같은 것입니다. 단군신화도 우리 조상이 우리 후손에게 던지는 수수께끼입니다. 역사가만이 그 답을 풀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단군신화는 신화의 형태로, 철학가에게, 사상가에게, 신학자에게, 종교가에게, 역사가에게, 신화학자에게, 천문학자에게, 동화작가에게, 소설가에게, 시인에게, 음악가에게, 배우에게, 정치가에게, 어른에게, 어린이에게, 남자에게, 여자에게, 선생님에게, 학생에게, 노동자와 농민에게 고루 던지는 질문입니다.
단군신화에 나오는 서자庶子나 천제天帝라는 어휘는 역사천문학자가 보면 상고시대의 우리 천문학의 고리를 북극오성에서 풀 수 있는 천문학 키워드입니다.
또한 한인 한웅 단군에게 전수되는 천부삼인은 우리 정체성의 상징이자, 종교적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철학자와 신학자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웅녀가 먹은 마늘과 쑥은 농민이나 농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일 수 있습니다.
곰이 여인으로 환생한다는 설화는 우리에게 다양한 상징성을 제시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해석이 없이 역사로 기록이 가능할까요? 이러한 해석은 역사가들만의 몫이 아닙니다.
저는 원래 소설을 쓰던 사람입니다. 제가 역사에 몰두하지 않았던 시절에도 단군신화는 늘 저를 압도하는 화두였습니다. 저는 이미 그때에 단군신화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짧은 단군신화 한 꼭지만으로 책 한 권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학문의 모체 신화
모든 학문이 시작되기 전에 신화가 있었습니다. 서기전 600년경에 철학이 생겨나기 이전에 철학을 태어나게 하는 모체가 되는 신화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신과 나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신화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창세신화가 있었습니다.
신화가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온갖 학문이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마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해혹복본과 천부삼인에서 태어납니다. 그로부터 1만년 후에 태어난 단군신화는 우리의 시조가 누구인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단군신화는 우리의 시조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밝히는 지극히 단순한 줄거리의 신화입니다. 우리가 이 신화를 중요시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시조始祖역사를 밝히고 있고, 교육이념인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군신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기에 이르되, 옛날 환인에게 서자庶子 한웅이 있었는데,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탐하였다. 아버지 한인이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白을 내려다보니 가히 <홍익인간弘益人間> 할만 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3 개를 주어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삼천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 아래로 내려오니 이가 곧 신시神市요 이분을 한웅천왕이라 부른다. 풍백과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을 주관하고, 주명, 주병, 주형, 주선악 등 인간세상의 360여 가지 일을 주관하며 세상에 머무르면서 다스렸다.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곧 단군왕검이요, 당요唐堯가 즉위한지 50년경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조선이라 처음 일컬었다. …
또 다른 신화는 한웅이 곰과 범을 한 굴에 가두고 마늘과 쑥만을 먹게 하며 100일을 견디면 견디는 자를 부인으로 삼겠다고 제안합니다. 3,7일 만에 범은 굴 밖으로 도망치고, 곰은 여자로 환생하여 한웅과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아 조선을 세우게 되었다고 추가하였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야 온전한 단군신화가 됩니다.
단군신화는 우리의 역사 1만년을 그대로 압축해 놓은 신화입니다. 이 신화에는, 한인천제가 한국을 세워 다스린 한인시대, 한웅천왕이 배달나라를 세워 다스린 한웅시대, 단군왕검이 조선을 세워 다스린 조선시대가 신화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이 신화에서 “곰이 여자가 되었다”는 대목이 조선건국역사의 모티브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곰은 여신女神을 의미하는 우리의 고유한 말입니다. 곰의 어원은 마고麻姑에 있습니다. 마고여신이 3,7일이라는 수련기간을 거쳐 신에서 인간으로 화신하여 동이족의 시조가 되었다는 기록입니다. 여신이 인간화하여 한웅과 혼인함으로써 단군왕검이 태어납니다. 단군왕검의 검儉은 여신 곰에서 변화한 남신男神이라는 뜻입니다.
여신이 먼저 태어나고, 이어서 여신에게서 남신이 태어난다는 신화가 <단군신화>입니다. 따라서 <단군신화>는 우리의 시조의 계보는 물론이고, 여신을 숭상했던 종교의 실체와 그 종교의 정체성도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홍익인간>이 교육이념으로 채택이 된지 51주년이 되는 해인 1999년에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동 연구원에서 발행하는 <정신문화연구> 1999/제22권 제 1호 (통권 74호)에 기획논문 <홍익인간 이념 연구> 5편을 실어 이를 기념하였습니다. 5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벌이고 싶었으나, 호응도가 너무나 낮아 행사를 제대로 할 수 없어, 논문 몇 편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교육학계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입니다.
논문 5편의 제목과 작성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홍익인간 이념의 유래와 현대적 의의 정영훈>, <21세기 한국교육과 홍익인간 이념 김인희>, <홍익인간 이념의 교육적 해석 권성하>, <홍익인간 이념의 전개와 그 정치적 합의 정연식>, <비교신화적관점에서 본 홍익인간의 이념 김헌선>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홍익인간>을 교육이념으로 선포한지 50년이나 지난, 해에 겨우 5편의 논문이 정부 산하 기관인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표되었다는 점에 아연실색啞然失色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수많은 역사학자, 신화학자, 국문학자, 교육학자, 이외에 교수와 교사들이 국록을 먹으며 살아가면서, 우리 교육계 반세기를 기념해야 할 때에 무심한 월급쟁이처럼 살아간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정신을 가르치지 않고 기술만 가르는 현장학습과 다를 것이 없는 우리의 교육현실이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봅니다.
정영훈은 <홍익인간 이념의 유래와 현대적 의의>의 머리말에서 우리의 기가 막힌 실정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늘날 우리 학계-일반의 현실을 살피면 <홍익인간> 이념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그 중요성에 비교할 때 그리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아니 관심이 빈약한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와 학계에서는 <홍익인간> 이념을 거부하고 폐기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았던 것 같다. 교육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마치 교육이념이 잘못 설정되어 교육의 파행이 계속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개편주장이 제기 되었다.
<홍익인간> 이념을 폐기처분하자는 이러한 망발이 <홍익인간> 연구 논문에 버젓이 실리게 된 우리의 현실이 개탄의 선을 넘어 경악하다 못해 졸도할 지경이 되게 합니다. 그들의 주장이 위에 인용한 인용문 그대로라면, 그들의 역사관과 국가관과 교육관은 대한민국의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이나 아프리카 사람이 아닌 데도 불구하고, 이건 전혀 한국사람 같지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