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읽는 이야기를 동화라 한다.
그래서 동화라는 단어에서는 아이들의 해맑은 모습과 순수한 이미지, 아름답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 이렇게 서정적인 감동을 선사하는 동화는 오래전부터 아이들로부터 멀어져 있다. TV며, 학원이며 아이들을 옥죄는 것들이 아이들의 시간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화를 쓰는 많은 이들은 창작을 하면서도 자신의 글이 아이들에게까지 갈 수 있을까를 회의한다. 혹시라도 TV를 밀쳐낸 어느 아이가 동화를 찾지 않을까 기대하며 매달려 보지만 날로 동화가 외면받는 현실에 가슴은 늘 서늘하다. 그런데 그 동화가 요즘엔 또 다른 문제로 상처를 입고 있다. 소위 말하는 ‘엽기’동화, 즉 ‘잔혹’한 내용의 동화들 때문이다.
극단적 결말에 매달리는 이유
최근들어 10대들에게 무섭게 번지고 있는 잔혹동화-그것은 사실 동화가 아니라, 동화라는 이름을 빌린 폭력의 글이다.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의 집이 탐이 나서 도끼로 일곱 난쟁이들을 토막 내 죽이고, 왕비는 살해한 뒤 사체를 비닐로 싸 유기하고, 라푼젤은 밤마다 남자를 끌어들여 하룻밤 보낸 후 그 다음날에 죽여 버리고, 인어공주는 변태였고, 그레텔은 오빠와 엄마의 다리를 도끼로 싹둑….” 듣기만 해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막무가내식의 스토리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들이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의 결말대신, 잔인하고 파괴적인 극단적 결말에 어린 학생들이 매료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재 네이버나·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잔혹동화를 만들어 올리는 동호회는 수십여 개가 넘고, 창작 게시물도 2000개가 넘는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청소년기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해 버리기엔 도가 지나치다고 걱정을 하지만, 잔혹동화를 즐기는 학생들은 사회가 자기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항변한다.
한 청소년 네티즌은 “현실적인 아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강요하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며 “흥부는 바보같이 맨날 놀부에게 당하고, 콩쥐도 착한 게 아니라 바보”라며 가식으로 뭉쳐져 있는 비현실적인 인물보다는, 때리고 싸우고 복수하는 솔직한 인간상이 더 공감이 간다고 했다.
또 다른 청소년은 ‘우리나라 학생들의 일생’이라는 글을 통해 요즘 아이들은 4살도 되기 전에 학원경쟁의 최전선에 내몰려 ‘친구’를 배우지 못하고, 옆자리 사람이 ‘적’이고 ‘쓰러뜨려야 할 방해물’이며 놀이터에서 노는 대신 수학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교도 부모님도 친구와 사귀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고 오직 공부만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다보니, 점점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져 자신도 모르게 게임이나 만화책 또는 화려한 연예인들에게 집착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잔혹동화’같은 자극적인 글에 빠져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이다.
진짜 동화를 읽자
아이들은 잔혹동화가 재미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올바른 것’ ‘착한 것’만 강요받아왔기 때문에 일탈과 탈선의 유혹이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직접 ‘잔혹동화’를 만들어 봤다는 한 중학생은 “원작을 해치느니 어쩌느니 하는 비난도 있지만, 자극적인 표현으로 글을 고치면서 느껴지는 쾌감이 얼마나 큰 줄 아느냐”며 “학생시절 한 두 번 하고 넘어가는 장난”이므로 어른들이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러나 신경쓰지 않을 일이 아니다. 잠깐의 유희로 돌리기엔 ‘잔혹동화’의 내용들이 너무 잔인하고 충격적이다.
인격이 형성되는 청소년기에 이같은 자극에 노출되다 보면 자칫 성인이 된 후에도 공격적인 성격을 갖게 될 수 있다.
이번 ‘잔혹동화’의 유행을 계기로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으면 좋겠다. 그들의 고뇌를 이해하고 그들이 건전한 문화속에서 젊음과 열정을 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우리의 예쁜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스스로 엽기적인 글을 만들어 위안을 받으려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 진정한 동화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그리고 인생은 희망과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