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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잠언서 강해(17) /
“겸손의 덕을 쌓는 그리스도인”
+ 본 문 : 잠 언 11장 1절 - 11절 (구약 p.920)
1. 속이는 저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공평한 추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
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3.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악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하게 하느니라.
4.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
5. 완전한 자의 공의는 자기의 길을 곧게 하려니와,
악한 자는 자기의 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리라.
6. 정직한 자의 공의는 자기를 건지려니와,
사악한 자는 자기의 악에 잡히리라.
7. 악인은 죽을 때에 그 소망이 끊어지나니 불의의 소망이 없어지느니라.
8. 의인은 환난에서 구원을 얻으나 악인은 자기의 길로 가느니라.
9. 악인은 입으로 그의 이웃을 망하게 하여도,
의인은 그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10. 의인이 형통하면 성읍이 즐거워하고 악인이 패망하면 기뻐 외치느니라
11. 성읍은 정직한 자의 축복으로 인하여 진흥하고,
악한 자의 입으로 말미암아 무너지느니라. 아멘!
+ 서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
+ 찬양하겠습니다. /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가 ‘겸손의 덕’ 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덕목인 ‘겸손의 덕’ 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2절입니다.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이 말씀 외에도 잠언서에서는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13:10 /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5:33 /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16:5 /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16:18-19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18:12 /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21:4 /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29:23 /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언서 뿐만 아니라, 다른 성경에서도 교만과 겸손에 대한 교훈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미가서 6장 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산상보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실 때에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마음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2절 말씀에서도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 기독교의 윤리면을 취급한 로마서 12장에 제일 먼저 있는 말씀도,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 즉 ”겸손한 생각을 품으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에베소서 3장까지는 교리편이고, 4장부터는 기독교의 윤리에 대한 교훈인데,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라!“ 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같은 권면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말씀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성경이 제일 먼저 가르치는 최고의 덕은 겸손입니다.
옛날부터 동양에서는 세 가지 덕 ‘지, 인, 용 - 지혜롭고, 어질고, 용기’ 를 말합니다.
특히 헬라의 윤리사상을 보면, 여기에다 절제를 더해서 네 가지 덕을 말했습니다.
이처럼 동양이나, 서양의 윤리 사상에서는 겸손을 많이 강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제일 먼저 겸손의 덕을, 가장 귀한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는 손수 겸손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사실 그 자체가 겸손이요.
예수님의 삶 전체가 겸손에 대한 산 교훈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도, 우리 예수님 친히 허리에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면서 겸손의 도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2장 5절 - 8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렇게 겸손의 도를 우리에게 친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자기를 비어 종이 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고 따르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라면, 제일 먼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어거스틴에게,
“우리 기독교에서 가장 큰 세 가지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 보았더니,
어거스틴은 ‘첫째도 겸손. 둘째도 겸손. 셋째도 겸손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겸손하셨으므로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가 왜 겸손해야 합니까?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이 겸손하셨으므로, 당연히 우리도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물리치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6장 16절에 보면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예닐곱 가지“ 중에 하나가 ”곧 교만한 눈“ 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싫어하시고, 미워하십니다. 그리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전에 파사 나라의 재상 하만이 교만해서 유대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인사를,
잘 안한다고 모르드개와 그 가족과, 나아가서는 온 유대인들을 학살하려는 음모를,
세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사실을 기억하시겠지요?
교만한 자의 마지막이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교만해질 대로 교만해져서,
자기 궁전 제일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서 자기궁중을 내려다보며 “내 능력과,
내 지혜로 이 모든 성을 건설하였다.“ 고 호언장담, 교만한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안 되어서 느브갓네살 왕이 정신이 나가서 미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이 들에 나가서 소처럼 풀을 먹고,
그 머리털이 독수리 머리털처럼 되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하나님은 느브갓네살 왕처럼, 교만한 사람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벨사살 왕이 교만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쓰던 거룩한 그릇들에,
술을 부어 마셨습니다. 천 여 명의 신하들을 불러다가 잔치하며 먹고 마셨습니다.
그날 저녁 메데와 파사의 연합군이 쳐들어와 벨사살 왕은 죽고 온 나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기 때문입니다.
전에 프랑스의 황제였던 나폴레옹이 얼마나 교만할 대로 교만하였습니까?
‘내 사전에서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빼라.’ 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대적하시므로 최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만 싫어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서 읽었던 잠언 16장 18절 말씀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말씀하였습니다. 개인도, 나라도 그렇습니다.
사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본입니다. 교만하므로 많은 다른 죄를 짓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망합니다. 시편 101편 5절에 “그 이웃을,
은근히 헐뜯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 하나님은 교만한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교만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이는 자기가 잘 생겼다고 교만합니다.
돈이 많은 어떤 사업가들은 자기가 사업을 잘하여 부자가 되었다고 교만합니다.
어떤 성도는 심지어 예수님 잘 믿는다고, 자기 신앙이 제일 좋다고 교만합니다.
이 신앙의 교만은 영적인 교만으로서, 이 영적인 교만은 정말 무서운 죄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 - 15절 말씀에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위에,
앉으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스올,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떨어지라하 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여기 계명성이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리로다.” 한 말이 다섯 번씩 나옵니다.
심지어 여기서 “내가 하나님 위에 오르리라!” 말합니다. 이것이 영적 교만입니다.
바로 이 계명성은 음악천사로서, 영적 교만병에 걸려 하나님을 대적하다가 쫒겨나,
사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교만은 우주의 모든 죄 가운데 첫 번째 죄입니다.
이런 영적 교만은 하나님의 은혜보다도 자기 자신의 덕을 더 내세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받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의롭게 생각하는 바리새인들의 영적 교만을, 우리 예수님은 물리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있는 것으로 자만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하나님을 잘못 섬기는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그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심지어는 그 교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로 하루의 일과를 삼습니다.
영적인 교만은 물론, 지적인 교만 역시 하나님이 대적하고 물리치십니다.
사도 바울은 “...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고전 8:1-2)
사람이 무엇을 배워서 그 방면에 아는 것이 많아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지식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것보다는 사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정말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뭐 조금 아는 사람이 소리가 대단히 요란합니다.(잠 26:12)
그리고 다른 하나의 교만은 물질적 교만입니다. 돈이 많아지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재물 얻을 능력을 누가 주셨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 고 하십니다.(시편 62:10)
우리의 소유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많은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낮고 깊은 곳에 물이 고이듯이, 겸손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모입니다.
병은 비어 있어야 기름을 넣을 수 있습니다. 그릇은 비어 있어야 음식을 담습니다.
마찬가지로 겸손히 빈 마음이라야, 성령의 기름을 부어 넣을 수가 있습니다.
이사야 57장 15절 말씀입니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시키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얼마나 겸손했습니까.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모든 성도 가운데 극히 작은 자다.“
이와 같은 바울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큰 은혜 받을수록 겸손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소극적으로,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고도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자기 고집을 너무 세우지 아니합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절대로 불평 불만, 원망하지 않습니다.
적극적으로,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어디가나 헌신 봉사합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을 만나든지 범사에 감사합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항상 겸손한 사람은, 항상 주님 안에서 마음이 평안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 앞과 사람 앞에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교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나는 교만합니다.’ 하고 회개하며 고백할 때, 겸손해 질 수가 있습니다.
바울도 처음에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회개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에게 대적하십니다. 주님 앞과 사람 앞에 항상 겸손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풍성하게, 많이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