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싱키(Helsinki) = 핀란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국가는 핀란드이다. 그리고 가장 행복한 도시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다. 이것은 미국의 경제 잡지 포브스지에서 2020년 3월에 발표한 것이다. 북유럽 크루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떠나 헬싱키에 도착했다. 항구는 안개속에 잠겨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나와 아내는 시벨리우스 공원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걸으며 헬싱키를 음미하고 운동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핀란드의 국민작곡가 얀 시벨리우스를 기념해 만든 공원이다. 큰 바위 위에 시벨리우스의 두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옆으로는 “음악의 열정”이라는 이름의 기념물도 세워져 있다.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 한 기념물은 조각가 에일라 힐투넨의 작품이다. 기념물의 무게는 24톤이며 1967년 9월 7일 공개됐다. 시벨리우스는 파이프오르간을 위한 음악은 거의 작곡하지 않았다. 조각가가 600개 이상의 파이프를 사용한 것은 시벨리우스 음악의 웅장함과 비장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들어 본 사람은 그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시벨리우스의 두상과 기념물이 그 모습을 완연히 드러냈다.
시벨리우스가 활동하던 20세기 초에 핀란드는 러시아의 지배 아래 있었다. 이때 시벨리우스가 만든 작품이 바로 제2의 국가로 불리는 “핀란디아”다. 북유럽의 휘몰아치는 바람 같기도 하고 고요하며 장엄하기도 한 이 작품은 전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선율은 가사만 바꿔 찬송가로 쓰이기도 한다. “내 영혼아 늘 평안하여라” 잔잔한 찬송가 선율로 끝을 맺는 핀란디아는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한국인이 애국가를 부르며 눈시울이 뜨거워 지듯 핀란드인들은 핀란디아를 들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시벨리우스는 1865년 태어나 베를린과 비엔나에서 공부한 후 헬싱키 음악원의 교수가 됐다. 그는 국민적 대서사시 킬레빌레, 교향곡 쿨레르보, 수많은 교향시와 음시, 100개가 넘는 가곡, 카렐리아 모음곡, 일곱 개의 교향곡 등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는 작품은 교향곡 제2번 D장조 작품 43,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작품 47, 핀란디아 Op. 26 등이 있다. 1958년 영국의 맨체스터 가디언 지는 다른 작곡가들이 칵테일을 제조하는 동안 시벨리우스는 차갑고 맑은 물을 제공했다는 평을 했다.
헬싱키에는 모두 20개가 넘는 교회들이 산재해 있다. 그 중에서 반드시 방문해야 할 교회는 세 곳이 있다. 그 중 한 곳인 우스펜스키 대성당은 1868년에 완공된 러시아 정교회 주교좌 성당이다. 우스펜스키는 고대 슬라브어로 성모안식을 뜻하는 우스페니에에서 유래했다. 대성당은 러시아의 교회 건축가 알렉세이 고르노스타에프가 설계했으며 건축가 이반 바르네크가 완공시켰다. 건물 벽돌은 크림 전쟁중에 파괴된 보마르순드 요새 벽돌을 사용한 것이다. 벽돌색 건물벽과 초록색 지붕, 금색 첨탑이 매우 인상적인 건축물이다. 대성당 중앙 돔의 높이는 33m에 달한다. 중앙제단에는 러시아의 저명한 예술가 파벨 실트초프가 제작한 성화벽이 세워져 있다. 성화벽은 중앙 위에 예수님이 그려져 있고 양쪽으로 열 두명의 제자를 그려 놓았다.
암석 교회는 화강 암반을 깍아 만든 독특한 모습의 루터교 교회다. 층층이 쌓은 암석과 낮게 퍼진 돔형 외관은 누가 말해주지 않으면 교회로 보여 지지 않는다. 예배당 내부도 독특하다. 수많은 구리선을 연결시켜 만든 천장, 바위 벽에 붙인 파이프 오르간, 길게 놓인 파란색 나무 의자 등 완전 색다른 느낌의 교회다. 천장과 외벽에서 내려쬐는 자연광은 교회를 아주 환하게 밝혀준다. 암석 교회는 수오말라이넨 형제의 설계로 1969년 완공됐다. 교회 좌석은 750석이며 음향적 특성 때문에 수많은 콘서트가 이곳에서 열린다. 매년 백 만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헬싱키 명소 중의 명소다.
핀란드의 첫 수도는 투르쿠(Turku)였다. 핀란드란 말도 투르크 지역을 가르키는 말이었다. 핀란드가 공식적으로 문서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부터였다. 그 무렵 십자군은 핀란드를 로마 교황의 권세 아래 있게 했고 한자동맹도시로 투르크를 끌여들였다. 1323년 뇌테보리 조약 이후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이후 약 500년 동안 핀란드의 역사는 스웨덴의 역사가 됐다. 1809년에는 전쟁에서 이긴 러시아가 핀란드 지역을 점령했다. 이때 러시아의 알렉산더 1세 황제는 핀란드에 대공국 지위와 자치, 정치적 자유를 부여했다. 1812년에는 수도를 헬싱키로 옮기고 수많은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헬싱키는 인구 3,500명의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이때 지은 건축물 중 하나가 지금의 헬싱키 대성당이다. 대성당은 처음에는 성 니콜라이 교회, 1917년에는 위대한 교회, 1959년 부터 헬싱키 대성당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의 대성당 지붕 위에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 등 모두 열 두명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내부에는 두 개의 황금색 샹들리에가 있으며 하얀 벽과 나무의자가 있다. 예배당에 세워진 동상은 마틴 루터, 필립 멜란히톤 그리고 미카엘 아그리콜라다. 아그리콜라는 핀란드의 종교개혁자로 신약성서, 기도서, 찬송가 등을 핀란드어로 번역한 인물이다. 중앙제단에는 칼 티몰레온 폰 네프가 그린 19세기 제단화가 그려져 있다. 제단화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 황제가 기중한 것이다.
대성당을 나오면 작은돌로 깔아 놓은 넓은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헬싱키의 멋진 경관을 돌아 가며관망할 수 있다. 대성당 광장 아래에는 원로원 광장이 있다. 계단을 내려 오면 러시아 황제 알렉산드르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광장 주위에 있는 헬싱키 대학 박물관, 국립도서관, 연방정부 사무소 등의 건축물도 모두 러시아 지배 당시 지어진 건물들이다. 러시아식 이름만 핀란드식 이름으로 바꾸고 그대로 사용한다. 핀란드는 1906년에 자체 의회가 승인되었고 1907년에는 첫 번째 선거를 치루었으며 1917년 12월 6일 독립을 선언했다. 볼셰비키 정부는 25일 후인 12월 31일 핀란드의 독립을 인정했다. 상당 기간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핀란드지만 핀란드인들은 러시아를 증오하지 않는 듯 보였다. 러시아 지배 당시 세웠던 동상이나 건축물도 전혀 파괴하지 않았다. 지금도 핀란드는 러시아에서 많은 양의 상품과 연료 같은 기본 필수품을 수입하고 러시아는 목재 제품과 통신 기술 서비스 등을 대량으로 수입한다. 서로 증오하지 않고 함께 공존하며 살아 나간다.
원로원 광장에서 한 블록 떨어져 있는 곳에 마켓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딸기, 체리 등 과일을 파는 부스, 당근, 감자, 마늘 등 채소를 파는 부스 홈메이드 잼을 파는 부스 등이 있다. 좀 떨어진 곳에는 전통재래시장 느낌이 나는 올드 마켓도 있다. 1889년 부터 오픈했다고 하는 마켓에는 연어 대구 등을 파는 생선가게, 패스트리숍, 커피숍, 말린 생선 전문 가게 등이 있다. 재래시장이지만 내부는 깔끔하고 가격은 저렴하다. 올드 마켓 주차장에서는 벼룩마켓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오래된 카메라, 오래된 그림, 오래된 수저, 각국 우표, 19세기에 제작된 스케이트 등이 눈에 띈다. 크루즈로 돌아 가는 길에 커다란 자전거 바퀴 모양의 회전 관람차가 보인다. 헬싱키판 런던아이라 말할 수 있다. 부둣가에는 바다로 오줌 싸는 소년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브뤼셀의 오줌누는 소년을 연상시켰다. 하지만 이 동상은 임시로 설치한 것이다. 장대한 소년의 오줌 싸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와 너무 잘 어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