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아노
피아노는 그대의 두 손을 잡고 운다. 바이올린은 그대의 가슴을 파고들며 운다. 첼로는, 낮은 저음의 첼로는 그대 무릎을 껴안고 운다. 모든 음악은 그대를 휩싸고 돈다. 그대의 머리 위에선 아무 생각도 없는 구름이 일었다 스러지고 그대의 발치엔 다 늙어 도착한 파도가 거칠게 부서진다.
2. 슬픔의 피아니스트
잘 치는 피아노는 눈물나누나. 마치 건반 위로 비가 내리는 듯하구나. 잘 익은 남천 열매는 눈물 나누나. 푸름에서 진홍으로, 우주의 약속처럼 익어가누나. 잘 씌어진 시는 눈물 나누나. 쉽게 씌어진 시는 눈물 나누나. 쉽게 흐르는 눈물은 눈물 나누나. 음악을 듣고도 눈물 흘리고, 시를 읽다가도 눈물 흘리고, 남천을 보다가도 눈물 흘리노라. 내 눈에 흐르는 것이 눈물 뿐이라면 나 차라리 눈을 감으리라. 나는 눈 먼 피아니스트, 보이지 않는 슬픔을 연주하누나.
3.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엿날에 한 병사가 전장에서 오른팔을 잃었다. 그는 원래 피아니스트였다. 그를 본 한 사디스틱한 작곡가가 그의 가장 까다로운 곡 중 하나에 '왼손을 위한 피이노 협주곡'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그에게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한 팔을 잃었고 절반의 가능성을 부정당한 상태였다. 그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왼팔을 뻗었다.
안개 속에 피는 모란꽃은 피자마자 시든 빛을 띄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새롭게 피어난다. 그렇게 모란꽃은 혼자 피었다 시들다를 반복한다. 어떻게 시든 꽃잎이 다시 피어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피아노의 건반 위에 그의 왼손이 놓인다. 왼손은 건반 위에 미동도 없이 멈추어 있다. 그러나 표정만은 풍부한 화음을 꿈꾸고 있다. 안개 속에 숲이 잠겼다가 다시 검은 나무 한 그루가 모습을 드러낸다. 안개 속에서 무언가는 나타나고 무언가는 숨는다. 안개 속에서는 시간이 흐르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그의 피아노는 안개 속에 놓여 있다. 그는 휘어진 시공간 속에서 피아노를 연주한다. 그의 왼손은 증오와 사랑,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든다. 고음부와 저음부를 동시에 연주한다. 누구나 두 손의 연주를 듣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안개 속에서는 한 손이 나타나면 한 손은 숨는다. 한 손이 한 손을 뒤쫓는 애타는 탄주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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