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루카 모드리치
세상의 가장 높은 곳이자 인간의 열망이 빚어낸 가장 빛나는 곳, 우리도 한 때 꿈꿨던 그 곳에 오르길 그들은 원했다. 한 달(6/15~7/15)간 지구촌을 히트돔처럼 달궜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루즈니키 스타디움, 상트페테르부르크, 소치 운동장의 뜨거운 열기는 서서히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 그 곳엔 식은 재만 남았다.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슬로건은 ‘한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자’였다. 지난 해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되었던 욜로(YOLO)族을 그대로 쏙 빼 옮겨 놓았다. 개. 폐막식은 그것을 어김없이 보여줬다. 모두 흥겹게 춤을 추고 미친듯 소리 지르며 흔들어댔다.
한 달 내내 23시, 24시, 03시에 치러졌던 16강전, 8강전, 4강전, 결승전을 한 게임도 놓치지 않고 하얗게 밤을 새며 퀭한 눈과 싸우며 보낸 한 달간이었다. 참으로 축구란 게임이 지구를 이토록 흔들어 댈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랍고 신비스럽다. 처음예선에선 우리나라의 게임에 푹 빠져 육신을 괴롭혔다. 16강에 이르러선 붉은 색과 흰색이 교차된 체크무늬 유니폼을 입은 크로아티아매력에 빠져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크로아티아, 인구 416만 명으로 서울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 면적은 남한의 반도 되지 않는다. 작디작은 소국이다. 내전으로 얼룩진 크로아티아다. 유니폼은 피로 얼룩진 내전의 흔적 같았다. 적십자사의 봉사마크가 어지럽게 얽힌 것 같기도 하였다. 그 크로아티아는 거대국가들을 하나씩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마치 작은 목선으로 거대 군함을 침몰시키는 것 같았다.
작은 목선에 현대식 무기가 장착될 리 만무다. 버티기와 끈질김으로 상대를 코너로 몰아갔다. 때로는 울돌목으로 유인했고 어떤 때는 지족해협으로 끌어당겼다. 일방적으로 주먹을 날리던 복싱선수가 맷집 좋은 선수에게 스스로 지쳐 백기를 들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두들겨 맞을수록 힘이 솟는 마법을 지닌 선수다. 밟으면 밟을수록 더 튀어 오르는 용수철을 닮았다. 그들은 인간이 아님을 보여줬다. 몸은 산산이 부서져 뼈와 살이 분리되었지만 그 뼈 속엔 사리로 찬연히 빛나는 정신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산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죽은자는 더욱 아니었다. 신의 얼굴이었다. 마치 마하트마 간디 같았다. 40kg이 채 안 되는 간디의 몸무게는 지구의 무게와 같다고 하지 않았던가. 모드리치가 그랬다. 16강, 8강, 4강, 결승까지 총 7경기에 모두 출전해 694분간을 뛰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순간들이 일그러진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다. 그러나 육체는 하늘을 나는 칼새처럼 허공을 가르며 번쩍였다.
그들이 빚은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그것은 준우승 그 이상이었다.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이며 존귀의 모습이었다. 그 한가운데 루카 모드리치가 있다. 모드리치는 백넘버 10번을 달고 있다. 10번이란 숫자가 그렇게 위대한 숫자로 나의 뇌리에 박힌 건 생애 처음이다. 모드리치, 그가 곧 크로아티아며 크로아티아가 곧 그다. 그는 개인의 위상을 뛰어넘는다. 모드리치, 그는 축구선수치고는 가냘프고 왜소한 체격이다. 172cm키에 몸무게 66kg이다. 그 작은 몸 어디에 그 위대한 정신의 저장고가 있는 것인가. 그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그의 얼굴은 모나리자 얼굴이었다. 웃는 얼굴도 아니요 화난 얼굴도 아니다. 그렇다고 엄숙한 얼굴도 아니다. 잘 웃지 않지만 눈은 웃고 있다. 눈은 울지만 입술꼬리가 웃는다. 묘한 배치다. 웃지만 울고 있고 울지만 웃고 있다. 담대함과 의지가 얼굴에 온통 고기비늘처럼 박혀있다. 이 모두는 그의 유년시절의 고통, 가난, 내전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그러나 오직 축구하나로 그의 뇌는 굳어져있다. 그의 얼굴에서 다른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웃지 않지만 친근해지는 얼굴이다.
그가 8강전에서 실축했을 때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는 오히려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120분 연장혈투에서도 승부를 가르지 못하자 다시 잔인한 페널티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감독이 경기 중 페널티킥 실축을 했기에 기회를 주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는 크로아티아 주장이다. 3번째 키커로 다시 나섰다. 성공을 간절히 바랐다. 공은 정확하게 가운데를 찔렀고 골키퍼는 왼쪽으로 넘어졌다. 킥을 성공하여도 골을 넣어도 그는 골 세리머니도 방방 뛰지도 않는다. 누가 그를 저토록 냉정하고 자기표현을 절제토록 만들었단 말인가. 기쁠 때에도 기쁜 표정 보다는 슬픔이 훨씬 많아 보이는 얼굴, 왜 그 얼굴에 이토록 내 마음이 슬픈 마음으로 기울어져 가는가. 그것은 약자에 대한 동정도 아니요 가련함 같은 비극적 요소는 더더욱 아니다.
한 인간의 내면에 깊이 천착해 있는 맑디맑은 물에 대한 그리움, 아련함 같은 것, 어떤 더러운 것과도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절대적인 것에 대한 한없는 아름다움, 바로 그것이다. 그의 얼굴에선 기쁨이라고는 있을 법 하지 않는 그런 얼굴이다. 지구촌 반란을 일으킨 주동인물 모드리치, 그가 지구촌에 끼치는 긍정에너지, 굽힐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준우승만으로도 대단한 일을 저지른 장본인, 그의 얼굴에서는 어떤 기쁨도 볼 수 없었다. 아, 그것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의 내면 깊이 똬리 틀고 있는 그 무표정의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대통령 콜린다 그라바르 키타로비치가 장대비를 맞으며 일일이 땀에 젖은 선수들을 포옹하며 등을 두드려 줄 때도 모드리치는 무표정하게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의 무표정은 인간세계에 드리우는 또 하나의 엄숙한 계명 같았다.
난 프랑스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며 너무 기쁨에 겨워 방방 뛰지 않기를 속으로 바랐다. 방방 뛰면 뛸수록 모드리치의 얼굴에서는 슬픔이 자꾸 늘어날 것 같아서였다. 모드리치 표정은 월드컵 우승 준우승에 머무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대회가 끝난 아쉬움 같은 것이었다. 더 하고픈 욕망이 묻어있었다. 축구 외에는 어떤 것도 그를 즐겁게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있어 다른 모든 즐거움은 껍데기다. 60여 년 전 펠레부터 마라도나 호날두 메시 같은 천재적인 플레이어를 많이 보아왔지만 그것은 이런 생각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속에서 배태되고 발아하며 안에서 꽃피우고 열매 맺는 그는 무화과를 연상케 한다. 그에게 있어 밖으로의 표현은 아예 차음부터 ‘無’ 그자체인 것이다. 이런 ‘無’가 그런 창조의 틀 위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가공할 ‘無’로 탈바꿈하는 그의 얼굴은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능가한다.
발칸의 요한 크루이프, 그의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다. ‘74년 뮌헨 월드컵 때 네덜란드 대표선수로 뛰었던 불세출의 사나이 요한 크루이프를 닮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내가 보는 시각은 조금 다르다. 모나리자를 훨씬 많이 닮았다. 남자 모나리자, 알 수 있을 듯 없을 듯한 그 희한한 직조의 모나리자를 쏙 빼 닮았다. 신비한 일이다. 그 무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대의 에너지, 지구전체를 거대한 지진 속으로 몰아넣는 지구에너지, 결승전 시청자가 10억 명이라고 한다. 10억의 심장을 난타 공연하듯 칼도마를 후려친다. 마치 한 여름 작달비처럼 가슴으로 하늘로 땅으로 내리 꽂는다. 그 알 수 없는 신비의 힘은 지구촌 전체에 마른 대지를 집어 삼키는 들불처럼 번져 나가게 만들었다. 아, 모드리치, 그의 왜소한 몸과 들소처럼 솟아나는 극 대비를 이루는 힘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
발칸의 동화를 빚어낸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 무대 위에 올려 진 주인공 모드리치의 내면 연기는 냉정, 두려움, 지칠 줄 모르는 용암의 불덩어리 의지, 식을 줄도 그칠 줄도 모르는 세인트헬렌스 화산의 용암덩어리다. 내전과 실업의 상처로 얼룩진 조국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유년시절 난민 생활을 전전하며 영양실조에도 굴하지 않고 주차장에서 공을 차며 냉대와 설움과 거친 들판이 그를 강하게 만들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키우며 자랐다. 서로 으르렁대며 싸웠던 발칸반도 이웃들, 크로아티아 모드리치는 절대 포기 하지 않았다. 유고시절 마지막 축구 대표 팀 사령탑을 맡았던 이비차 오심감독은 ‘이건 우리만의 기질’이라 했다. 맞다. 그건 그들만의 기질이고 DNA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아니 넘볼 수 없는 무적함대 기질이었다. 발칸의 화약 냄새가 발칸의 포성을 먹고 자란 그들만의 기질이며 체질이다.
2018년 7월 15일 0시, 러시아 루즈니키 경기장, 화려한 폐막식에 이어 프랑스와의 결승전이 벌어졌다. 마지막 전투의 진정한 승자는 모든 것을 하얗게 태우고 장렬히 전사한 캡틴 모드리치인 것을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 팀인 발칸의 반란군 크로아티아의 캡틴으로 한계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한궤도탱크처럼 지구인에게 축구의 본질은 물론 축구를 발로만 하는 게 아니라 얼굴표정으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축구 정의를 써 내려간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발칸반도 소국이 써 내려간 동화는 비록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세상을 감동시키기엔 충분했다. 동화의 주인공들은 용감하고 강인하고 헌신적이었다. 토너먼트 세 경기를 모두 연장까지 치르느라 탈진했지만 결승전에서 보여준 그들의 투지는 놀라왔다. 발칸의 반란군중에는 이름에 ‘치’가 들어가는 선수가 많다. ‘치’는 ‘~의 아들이란 뜻‘이란다. 모드리치는 혹 ’체력의 화신의 아들’일까. 모드리치는 희한하게도 모나리자와 생김새 뿐 아니라 이름까지도 50%가 닮았다. 이 우연은 무엇인가. 아니면 전혀 관계없는 억지인가 인위적 조합인가. 아니면 어디엔가 보이지 않는 인연의 고리가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프랑스는 우승컵을 가져갔지만 크로아티아는 세계를 제 편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축구의 순수한 열정과 이상을 그들이 보여줬다. 용기와 모험과 숨 막히는 헌신을 보여줌으로써 세계축구에 새 생명을 불어 넣었다. 그들의 위대한 여정은 그라운드의 영혼을 춤추게 했다. 삶은 실수와 후회로 점철되어 있지만 시간이 다할 때까지 싸우고 견뎌야한다. 그것은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모드리치는 패배가 굳어진 순간까지 뛰고 또 뛰었다. 이 투지는 지상의 어떤 엄숙보다 경건하다. 모드리치의 꿈은 우리 모두의 꿈이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인생이다. 모드리치의 심장은 몇 개인가. 작은 나라 큰 심장, 그것에다 내 심장을 포갠다. 땀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몸이 말라빠진 북어처럼 되어도 고통의 끝을 향해 질주했으니 실제로 챔피언은 모드리치다. 크로아티아다. 그들이 세계의 미래며 꿈이다. 모드리치 장하다. 모드리치 아름답다. 아, 루카모드리치! 비바 모드리치!
2018.7.20.
돌솔 이 응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