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미학
한국세탁업 제주특별자치도지회 지회장 임광희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넋을 기리는지 비가 내려 마음 또한 쓸쓸하다.
나는 육군에 입대하여 34개월 3주를 근무하고 80년 7월 만기 전역을 했다.
이때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에서 연락이 왔다.
회원 가입하라고 사무실에 가보니 아버지 같은 어르신들이 앉아 계셨다.
그 어르신의 말씀~
이 놈 잘 키워서 우리 사무장 시켜야 겠네 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아직 20대 중반이고 회사 생활을 해야 하는 까닭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무공수훈자에서 연락이 왔다.
사무실에 한번 방문하라고 하여 며칠 후 사무실에 방문해보니 젊은 사람들이 필요했던 까닭이었다.
나는 나이가 어린 탓에 이때부터 막둥이라는 별명이 붙어졌다.
그분은 그때 40대 였는데 지난해(2018년)에 85세의 일기로 돌아 가셨는데 울음이 나왔다.
나의 어릴 때 꿈은 선생님 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세대 60~70년대는 얼마나 어려운 시절이었던가...
죽을 만큼 힘든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우리 가족은 대가족이라 입이라도 하나 덜어야 된다고 하여 도시로 하나.둘 씩 빠져 나갔다.
그 즘에 나는 공군 부사관 학교에 시험을 봤다.
국비로 학교도 보내주고 직장도 얻고 얼마나 좋은가 ~
그런데 시험에 떨어져 이곳 제주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것이다.
어느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우체국 집배원이 편지를 전달해 주었다.
시원한 커피한잔 드시라며 쉬어 가게 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도중 제주는 배달하기 좋은 곳이라 하며 강원도 산골 집배원 얘기를 한다.
군대생활을 강원도 인제에서 했기 때문에 아니 들을 수가 없다
강원도 래유~강원도 깊은 산골 굽이굽이 돌고 돌아 땀을 흘리며 올라 갔는데
할무니 말씀~아저씨래유`~왜 가방을 메고 힘들게 올라 가는 거래유~
집배원대답~왜유~
할무니 말씀 ~그 가방 우체통에 다 넣어 부래유~
집배원~ㅎㅎ
할무니 께서는 집배원이 힘드니 안쓰런 마음에서 그리 하셨을 것이다.
난 그때 그런 영감을 얻고 무공수훈자회 그 어르신들 내가 성심껏 도와 드려야지 하며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나이 잡수신 그 어르신들 허리가 휘어서 지팡이를 짚고 걸어 가시는 것을 보니
안타까워 행사를 마치면 집에까지 모셔다 드리고 왔다.
항상 그분들은 막둥아 고맙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전 별것 아닙니다 라면서
멀리 돌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가는 길에 했습니다 라고 했다.
행사는 수시로 계속 진행이 됐다. 자원봉사자 심화교육 등이 정부종합청사에서
매월 교육이 있어서 참여 했다.
각 단체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나의 차례가 되어 나는 세탁업을 하고 있는데
우리 협회는 의류수선봉사를 합니다 라고 하니 필요했던 모양이다.
이때부터 중증장애시설인 송죽원과 인연이 되었고 12년째 의류수선봉사를 하고 있다.
첨에는 중증장애우와 거리감이 있어 가깝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손도 잡아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제는 가족 같은 정이 듬뿍 들어 봉사 날 만 기다려진다.
나눔은 처음 시작점이 어렵다.
시작을 하면 아주 쉬운 것이 나눔이다.
주일이 되면 교회를 찾아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뜻하지 않은 집안 일, 단체행사 등으로
예배를 드리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의류수선봉사는 못가면 뭔가 시설의 가족들을 보지 못했다 라는 것에
허전한 마음이 먼저 든다.
나눔과 배려로써 아름답게 동행할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