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온라인 시대에 살고 있다
심 영 희
중국 우한이 고향이라는 코로나19! 너를 고향으로 되돌려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부랑아. 또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도 안 되는 존재, 말도 못하는 그 조금만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뒤흔들다니 세계대전도 이렇게 치열하거나 많은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은 없었을 것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아침햇살에 사라지는 이슬처럼 지고 마는 고귀한 생명들, 태어날 때보다 더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감해야 하는 운명, 전염병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식도 제대로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되어 일생을 마감하는 코로나 환자들의 희생이 벌써 일년째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무섭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목숨을 희생당한 사람만큼 억울한 사람이 있겠는가.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안타깝지 않은 사연은 없겠지만 처음으로 우리 국민들 마음에 큰 충격을 준 것은 교육현장일 것이다. 코로나 발생 이후 3월에 각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유치원, 초.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온라인 입학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입학식만 못하는가 했더니 건너뛰기로 온라인 수업이다. 새로운 학교 새 학년의 추억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새해 새 학년 얼마나 기대되고 설레는 시간인가, 새 선생님과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코로나바이러스 속에 묻혀버렸다. 그중에 어린 10대의 목숨을 앗아간 사연은 더욱 가슴 아프게 했다.
코로나 확진자도 아닌데 코로나 환자일 것이라는 오판으로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아버지의 차를 타고 입원할 병원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었을 아버지와 아들 끝내 치료도 못 받고 숨진 고등학생은 입원만 했으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닌 단순한 폐렴환자였다니 부모의 애통한 심정을 무엇으로 보상받을까.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학생의 방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교복에 책상이 나 이제 고등학교까지 밖에 못 다녔는데 억울하다고 통곡하는 것 같았다. 아들을 고등학생이 되기까지 정성과 사랑으로 키운 부모의 가슴엔 코로나라는 비수가 꽂혀 엄마아빠는 매일 아프다고 울고 있을 것이다.
벌써 12월도 다 가고 올해도 일주일밖에 안 남았는데 내년 상황은 어떨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이 부실하다고 납부한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외침은 어쩌면 행복한 아우성일지 모른다.
자영업자들의 딱한 사정은 보는 이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세상에 무슨 장사가 되겠는가, 견디다 견디다 더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결정하는 자영업자들 그들 가족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 더욱이 오늘부터 전국적으로 5명 이상이 식당에 갈 수 없다는 행정조치가 내려졌으니 그나마 장사가 되던 식당에도 위기가 올 것 같다.
요즈음은 내가 사는 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확진자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누가 코로나바이러스를 안고 다니는지 모르는 현실에서 사람 만나는 게 꺼려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러니 꼭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식당이나 카페는 안가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이 선다.
대면에서 비 대면을 환호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달업계 종사자들 그들은 목숨을 담보로 거리로 나온다. 남보다 먼저 일거리를 잡으려고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배달 업 종사자들, 오늘 하루 돈 벌면 행운아고 목숨 잃으면 불운아다. 배달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도 하루하루가 힘들지만 식당주인들도 마찬가지다. 배달 사원을 두려면 인건비가 지불되어야 하니 지출을 막고자 직접 배달에 나선 중년의 식당주인 늦은 시간 마지막 배달 길에 나섰던 50대 가장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유명을 달리했다.
음식을 시켜놓고 아무리 기다려도 도착하지 않는 통닭, 화가 난 손님은 인터넷에 비난의 글을 올렸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은 딸이 이 글을 보고 사과문을 보냈다는 뉴스를 보면서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도 서러운데 끝까지 고객에게 신용을 잃지 않고 지키려는 책임감, 또 손님으로부터 아버지를 지키려는 딸의 안쓰러운 마음을 아버지도 저 세상에서 알고 있겠지 아버지란 이름으로 딸의 버팀목이 되어줄 가장의 존재로 코로나를 원망하며 남겨진 가족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일년이란 세월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이지만 코로나사태 속 일년은 엿가락처럼 늘어나 엄청 긴 세월이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그래도 외식을 하고 가끔은 카페도 갔었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누구를 만나기 두렵다. 마트에 가는 일도 시장에 가는 일도 살 물건만 챙겨 재빠르게 집으로 돌아온다.
올해 난생처음 마스크를 써본 나도 이제는 마스크를 안 쓰면 어색할 정도로 중독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올 겨울 아직 감기에 걸리지 않았는데 이것도 마스크덕분이라 생각하며 겨울이 다 가도록 감기에 걸리지 않으면 마스크가 더욱 고마울 것 같다.
워낙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하는 터라 지금까지 2년에 한번 하는 건강검진을 두 번뿐이 안받았고 독감예방접종도 지난해와 재작년 딱 두 번 맞았는데 올해는 코로나가 판을 치는 중이라 일찌감치 맞으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또 변수가 생겼다. 초장부터 독감예방주사를 맞고 사망했다는 뉴스가 터져 나온다. 특히 춘천에서 예방주사를 맞고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길에서 쓰러져 사망했다는 70대 남성 쓰러진 사람 주위로 길가던 사람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난 죽고 싶지 않아” 하는 생각으로 독감예방접종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요즈음 마스크가 백신이란 말을 많이 하는데 마스크가 독감예방 백신도 된다. 마스크를 쓰면 마음이 든든하다. 어떤 바이러스도 침투 못할 것 같은 든든함으로 온라인 시대를 살고 있다. 옆 아파트에 사는 딸네 집에 가보면 손자손녀는 온라인 수업 숙제 하느라 쉴 틈이 없다. 더욱 캐나다로 유학간 손자는 모든 숙제를 영어로 해결 해야 한다. 영어로 숙제를 하는 것을 보면 대견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4월에 코로나에 쫓겨 집으로 왔는데 새해 1월에는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었는데 세계정세가 이렇게 혼란스럽다 보니 3학년 2학기까지 온라인 수업을 하고 대학 입학과 동시에 캐나다로 가기로 결정했는데 지금 상태로는 모든 게 불분명하다. 앞으로 손자의 진로가 어떻게 될지 코로나19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나는 온라인 시대에 살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집에서 글 쓰고 그림을 열심히 그린다. 그림에 몰두하다 보면 코로나사태를 잊어버린다. 오직 나만을 위한 내 시간을 소중하게 찾아 쓰고 있는 중이다.
가입한지 몇 년 안 되는 한국민화협회 전시회는 취소되거나 온라인 전시를 했다. 온라인 전시는 작품을 수시로 볼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정겨움이 없다. 또 실물이 아닌 축소된 작품만 본다는 아쉬움은 크지만 시대 따라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어제는 내 생애 처음으로 온라인 시상식에 참석했다. 복지관에서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를 격려하는 감사행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모일 수 없으니 온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했다. 나는 그동안 복지관 강사로 어르신들을 잘 가르쳐 주었다고 춘천시장 표창패를 받았는데 그것도 하필이면 올해같이 수업을 하지 못한 상황에서 표창을 받게 되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올해는 상반기에 개강하고 1주일 수업 후 코로나로 복지관 휴관, 11월에 일부 과목 임시 개강을 했는데 2주일 수업 후 춘천으로 쳐들어온 코로나 때문에 또 휴관, 내년에도 복지관에 수강생들이 무엇인가 배우러 다닐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문학회 모임에도 서울 행사에 한 번 춘천행사에 한 번 딱 두 번 참여하고 나머지는 모두 불참이고 취소였다. 올해는 될 수 있으면 사람을 만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려면 행사에 불참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것이 온라인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2020년 12월 작)